대형마트, 집회장소 인근 피해…안전 강화
여행·관광업, 문의 빗발 “빨리 정상화해야”
서울 서초구의 농협 하나로마트를 찾은 시민이 호박을 고르고 있다. [연합] |
탄핵 정국이 장기화하는 분위기에 유통업계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 연말 특수를 누려야 하는 시기에 소비 심리 침체와 고환율 등 악재가 겹치면서 매출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유통업계에서는 계엄 이후 정치 리스크가 높아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통업계에 연말은 이른바 ‘대목’으로 통한다. 성탄절이나 연말 선물용 상품을 비롯해 내년 1월 예정된 설 선물 세트 예약 등 다양한 수요가 몰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엄 이후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면 소비 심리가 위축된 데다, 유통사들이 적극적으로 연말 마케팅을 전개하지 못해 매출에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2004년, 2016년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도 소비심리가 침체되면서 유통업계는 전반적으로 매출에 피해를 봤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 직후 2분기 소비자심리지수는 89였다. 직전 분기(95)보다 6.3% 떨어졌다. 같은 해 4분기에는 85까지 하락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2016년 1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두 달 전보다 10% 가까이 떨어졌다.
주요 백화점들은 단기적인 피해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상황이 장기화했을 때 소비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지난 주말 날씨가 급격히 추워진 영향으로 전체 매출은 오히려 일주일 전보다 8.8% 올랐다”면서도 “상황이 장기화하면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시위가 열리는 서울 시청광장 주변 롯데·신세계 매장의 경우 안전관리를 강화했다. 주차관리와 보안 인력을 추가 투입하거나, 경찰서와 긴밀히 소통하는 식이다. 다만 집회에 따른 물리적 피해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 당시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들은 집회 장소 인접 소수 매장을 제외하고는 영업에 물리적인 지장은 없었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주요 대형마트 업체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국토교통부의 ‘다중이용시설 밀집사고’ 대응 매뉴얼을 바탕으로 일부 시위 장소 인근 매장에 주차 관리 인력을 추가 배치하고 있다.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계도 마찬가지다. 관련 집회·시위로 일부 택배기사의 이탈이 많아지면 배송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서다. 이와 관련 이커머스 업체들은 배송 물류에 차질이 없도록 정상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편의점 업계도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의 도심에서 집회·시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관련 상권 점포의 안전 대책 매뉴얼을 수립했다. 동시에 생수와 즉석조리식품, 방한용품 등 늘어날 수요에 맞춰 대응 방안도 세우고 있다.
널뛰는 환율 또한 유통업계에는 주요 악재다. 비상계엄 사태 직후 환율은 1430원에 육박하며 2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지난 일주일간 환율은 24.5원(1.8%) 뛰며 1400원대가 굳어지고 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 기업은 원자재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환율 불확실성이 커지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 K-푸드(음식) 열풍으로 호실적을 이어온 식품업계로서는 이번 사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1~11월 농식품 수출액은 90억5000만달러(약 12조6935억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면세 업계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특히 원화 약세(고환율)는 면세업계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주요 요인이다. 면세점은 특성상 달러를 기준으로 면세품을 판매한다. 환율 변화가 실시간으로 가격에 반영된다. 따라서 환율이 오르면 상품 매입 부담이 커지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면세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면세품이 백화점 할인 상품보다 비싸지는 현상도 종종 발생한다.
여행·관광업계는 이미 직격탄을 맞았다. 호텔 관계자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의 안전 관련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예약을 취소한 사례도 여러 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말 각종 행사·연회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면 매출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탄핵 정국이 장기화하면 내수도 위축되고, 후진국 이미지가 되면서 외국인 방한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상황을 빠르면 빠르게 정상화할수록 피해가 최소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벼리·김희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