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비슈머 소비형태로 자존감 ↑
#. 20대 직장인 A씨는 종종 ‘금융치료’(돈을 써 우울감을 해소한다는 신조어)를 한다. 평소 커피값, 간식값을 줄여 가며 하루 1만원 이상 돈을 쓰지 않는 ‘만원 챌린지’를 하고, 각종 스마트폰 앱에서 10원, 1원 단위로 포인트를 제공하는 ‘앱테크’로 패스트푸드 쿠폰·영화관람권을 구매하지만, 백화점에 가 원하던 명품 악세서리·가방을 사는 데는 거리낌이 없다.
금리 인하 기조에도 소비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내수 부진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20대의 백화점·대형마트 고액 소비가 다른 연령대 대비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쓸 때는 쓰고 아낄 땐 아끼는’ 이른바 ‘앰비슈머’(ambisumer·양면성과 소비자의 합성어) 행태가 나타나는 것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기에 태어난 젊은 세대가 불황·취업난을 겪으며 생겨난 불만족감을 선택적 고액소비를 통해 해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백화점 고액 소비 ‘20대만’ 증가세=9일 BC카드가 코로나19 이후 보복소비(펜트업)가 일어났던 2022년 3분기와 고금리 여파로 내수 부진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올해 3분기 고객 소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대의 50만원 이상 고액 소비가 다른 연령대 대비 가장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간 20대의 매출 증가율은 3.0%포인트로, 1~2%포인트대를 보이는 30~60대보다 높았다.
2022년 3분기를 100으로 놓고 분석한 매출 지수를 살펴봐도 20대가 유일하게 129로 소비 증가세가 뚜렷했다. 다른 연령대는 모두 100을 밑돌아 2022년 3분기보다 소비가 줄었다.
20대는 전체 50만원 이상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6%로 20%대인 30~60대보다 작지만, 증가율만 놓고 보면 경기 부진을 의식해 고액 소비를 줄인 다른 연령대와는 달리 소비를 늘렸다.
▶대형마트서도 “중간은 없다”…‘플렉스’ 나선 20대=같은 기간 대형마트에서도 20대의 고액 소비 추구 경향이 나타났다. 20대는 ‘5만원 미만’부터 ‘50만원 이상’까지 11개의 매출 금액 구간 중 ‘50만원 이상’에서 가장 높은 매출 비중 증가세(+0.5%포인트)를 보였다.
‘50만원 이상’에 이어 매출 비중 증가세가 나타난 것은 ‘5만원 미만’이다. 다른 금액대는 모두 매출 비중에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줄었다.
같은 기간 30대~70대의 고액 소비는 주춤했다. 매출 비중 증가율이 0% 또는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80대 이상만 20대와 비슷하게 매출 비중이 0.4%포인트 늘었다.
대형마트의 2022년 3분기 대비 지난해 3분기 매출 지수를 살펴보면 20대는 35만원 이상 40만원 미만, 45만원 이상 50만원 미만 구간을 제외하고 모든 구간에서 지수가 100을 웃돌았다.
특히 ‘50만원 이상’ 매출지수가 123으로, 가장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선 30대와 40대가 각각 85, 96으로 100 아래로 떨어졌고, 나머지 연령대(50대~80대 이상)는 플러스(+)를 기록했지만, 최대 113 수준으로 20대보다는 지수가 낮았다.
이를 두고 경기 부진이 지속될수록 20대의 ‘소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의 경우 취업도 잘되지 않고, 자산도 적기 때문에 만족스럽지 못하게 일상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구도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정말 절약하고 가끔 비싼 물건을 사면서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성세대는 다 같이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를 경험해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할 일이 없었는데, 젊은 세대는 반대로 양극화가 극심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도 있다”며 “현실이 힘들수록 자신을 드러내는 소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