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혼란 지속되면 영화계 영향 불가피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폭풍으로 대통령 탄핵 추진이 이어지는 등 정국 불안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주요 멀티플렉스와 투자배급사가 남몰래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전통적인 극장가 성수기인 연말을 앞두고, 정치권의 혼란이 영화관으로 향하는 발길에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장 12월에만 ‘1승’과 ‘소방관’(개봉일 4일), ‘대가족’(11일), ‘하얼빈’(24일),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31일) 등 한국 영화 5편이 출격한다. ‘글래디에이터2’, ‘위키드’, ‘모아나2’ 등 외국 대작 영화 3편이 장악한 11월을 피한 겨울 성수기에 유난히 몰린 것. 정치적 혼란이 야기되기 전만 해도 침체된 극장가 분위기를 반전시킬 ‘한 방’ 극장 영화가 탄생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 차였다.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및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손팻말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연합] |
이 중 신연식 감독과 송강호·박정민 배우가 호흡을 맞춘 ‘1승’, 곽경택 감독이 연출하고 주원·곽도원 배우가 출연한 ‘소방관’ 등 두 편의 영화는 격양된 여론이 들끓었던 지난 4일 개봉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지난 3일 바로 다음날이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속상한 마음에 속이 쓰렸다”고 짧게 전했다.
특히 두 영화 모두 오랜 노력 끝에 뒤늦게 관객을 만났던 만큼 제작진들을 맘고생 시킨 작품이다. ‘1승’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과 겹치면서 개봉이 무기한 연기된 이른바 ‘창고 영화’였다. 또 ‘소방관’은 주연배우인 곽도원의 음주운전 사건 여파로 촬영 종료 4년 만에 가까스로 공개된 작품으로, 당초 내년 1월에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공개 시점을 한 달가량 앞당긴 상황이었다. 오는 26일 선보이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2’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대가족’이 오는 11일 개봉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 ‘1승’ 스틸컷 [키다리스튜디오·아티스트유나이티드] |
당장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봉하는 영화 투자배급사 CJ ENM의 ‘하얼빈’은 3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이다. 지난해 흥행 참패로 쓴맛을 맛본 CJ ENM이 절치부심해 내놓는 작품이다.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인 고민들을 그려낸 시대극으로 영화 ‘내부자들’(2015) 우민호 감독이 연출을 맡고 배우 현빈·박정민·조우진이 출연한다. CJ ENM은 9일 오전 영화 개봉일을 당초 발표한 오는 25일에서 24일로 한 차례 더 바꿨을 만큼, 배급 전략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영화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정치적 혼란이 장기화하는 것이다. 그간 주요 멀티플렉스와 투자배급사는 올해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돌입할 만큼 사정이 매우 안좋았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업계에 있어 올 연말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즌이다. 이달 들어 CGV가 ‘인터스텔라’, 롯데시네마가 ‘이터널 션샤인’, 메가박스가 ‘러브레터’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 재개봉 영화 상영을 잇따라 공개하고 특수 상영관을 확장하며 관객 모으기에 나섰던 이유다.
7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되자 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집단 퇴장했다. 사진은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에 나선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여당 의원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표결 참여를 호소하는 모습. 이상섭 기자 |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촛불집회에 인파가 몰리면서 영화 소비가 위축돼 영화관도 일시적으로 한산해지는 영향을 받았다”며 “당장은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하지만, 이 상황이 계속되면 영화 개봉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8일 박찬욱, 봉준호 등 감독을 비롯해 영화인 3007명은 윤 대통령 파면과 구속을 요구하는 1차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을 ‘내란죄 현행범’으로 규정하고 “작금의 혼란한 상황을 극복하고, 추락한 대한민국의 위상을 극복할 수 있는 제1의 전제조건은 윤 대통령 직무수행을 정지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투표에 참여한 의원수가 모자라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개표조차 무산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를 ‘될 때까지’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두 번째 추진하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오는 12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하고 14일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가결될 때까지 매주 토요일 탄핵소추 표결을 추진하면서 ‘무기한 탄핵정국’을 주도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