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지 당선 파란 일으킨 ‘도낳스’ 김재섭… 수난, 이유는?[취재메타]

김재섭 사무실에 화환 테러… “탄핵 부역자”
총선 상대 안귀령 계엄군 총 막는 영상 화제
윤상현, 김재섭에 ‘1년 지나면 다 잊어’ 조언


취재부터 뉴스까지, 그 사이(메타·μετa) 행간을 다시 씁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왼쪽)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의 국회 본회의 부결(정족수미달) 후폭풍이 거세다. 본회의 투표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비토’ 여론이 상당한데, 그 가운데서도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지역민들의 반발이 두드러진다. 여기엔 ▷윤상현 의원의 폭로 ▷총선 상대 안귀령의 계엄 활약 ▷‘합리적 보수’ 이미지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만년 민주당 텃밭에서 국민의힘 의원을 당선 시켜줬는데 또 이러느냐는 지역민들의 배신감도 상당하다.

김 의원의 도봉구 사무실은 난리가 났다. 지난 7일 오후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으로 윤 대통령 탄핵안이 부결된 이후였다. 김 의원의 자택 앞에선 커터칼이 발견돼 경찰이 김 의원에 대한 신변 보호에 나섰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자택 주소를 아는 사람이 두고 간 것 아니겠느냐”라며 “어린 자녀를 포함해 가족에 대한 강도 높은 협박성 문자도 쏟아져 매우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김 의원의 사무실에는 ‘내란에 동조했다’, ‘탄핵안을 부결시켰다’, 도봉의 수치 김재섭 나가’를 써붙인 글귀들이 나붙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 당시 본회의장을 떠난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의 도봉구 사무실 앞. [온라인 갈무리]


윤상현 김재섭에게 “‘1년 후에는 다 찍어준다’ 조언” 폭로


가뜩이나 화난 도봉구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은 김 의원의 선배 윤상현 의원이 김 의원에게 했던 조언을 폭로하면서다. 윤 의원은 지난 8일 한 유튜브 방송에서 “김재섭 의원이 ‘(표결 불참으로) 형, 나 지역에서 엄청나게 욕먹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김 의원에게 “지금은 그럴 수 있지만, 1년 후에 국민은 또 달라진다”라며 “나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했다. 그때 나 욕 많이 먹었는데 1년 후에는 다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 (그런 소리를 하며) 그다음에 무소속 가도 다 찍어줬다”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발언은 윤 의원이 했지만 타격은 김 의원이 더 많이 입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윤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등을 거치면서도 무소속으로 당선돼 돌아온 5선의 노회한 정치인이다. 윤 의원은 지역구가 탄탄하기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김 의원은 도봉갑이란 험지에 출마해 올해 4월 총선에서 가까스로 신승을 거둔 초선 국회의원 신분이다. 윤 의원이 ‘국민들은 잊어버린다’는 취지의 조언 탓에 윤 의원 보다 김 의원이 더 큰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의원의 지역구는 험지로 유명하다. 한 때 동료였던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도 김 의원에게 자주 ‘지역구를 바꾸라’고 조언해왔다. 1992년 이후 국민의힘 계열 정당 후보는 도봉갑에서 당선된 적이 한번도 없다. 그러나 김 의원은 ‘3대째 도봉구 주민’ 등을 타이틀로 내걸고, ‘도낳스(도봉구가 낳은 스타)’라는 별명으로 친근감을 더하며, ‘떡볶이 번개’, ‘헬스장 인증’ 등을 통해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끌어들였다. 김 의원은 진보 매체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도 장기간 패널로 출연했다. 국민의힘 입장을 차분하고 논리적인 어조로 설명,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 포섭에도 성공했다.

그랬던 김 의원이 정작 윤 대통령 탄핵안이 본회의 처리 될 때엔 당론인 ‘탄핵 반대’를 위해 본 회의장을 떠나는 모습은 지역민들의 감정선을 자극했다. 일부 지역민들은“내란수괴 비호하는 김재섭을 규탄한다”, “김재섭을 뽑은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라거나, “다음 선거에서 보자”는 등의 발언으로 김 의원을 압박 하고 있다.

한편 김재섭 의원은 윤 의원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자 입장문을 내고 “내 이름이 언급되고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 나간 것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의원총회에서 윤 의원에게 악화한 민심을 전하고 당의 대응을 촉구한 게 전부”라고 밝혔다.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지난 3일 국회에 진입한 계엄군의 총을 붙잡고 ‘부끄럽지도 않냐’고 발언하는 장면 [온라인 캡처]


김재섭 상대 안귀령, 3일 계엄군 총 막아서


김 의원에 대한 지역구민들의 비판이 다른 국민의힘 의원들에 비해 더 거센 것은 총선 상대였던 안귀령 대변인이 계엄군에 맞서는 상황이 이슈가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4월 총선에서 김 의원의 상대는 안 대변인이었다. 총선 결과는 김재섭 후보 49.0%, 안귀령 후보 47.8%였다. 당초 출구 조사에서는 안 후보가 김 후보를 앞 서는 것으로 나왔으나, 개표 결과 김 의원이 1.2%포인트 차로 신승을 거뒀다. 안 후보는 총선 당시 불법 선거 운동 논란을 겪었고, ‘차은우 보다 이재명’이라는 발언으로 과도하게 당대표에 충성한다는 논란도 겪었다.

그러나 안 후보는 지난 3일~4일 사이 벌어진 ‘계엄 사태’ 당시 계엄군의 총을 몸으로 막아서며 “부끄럽지도 않냐”고 외치는 영상이 방송을 타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명해졌다. 영국 이코노미타임스는 ‘계엄군에게 맞선 용감한 한국 운동가를 만나보자’는 제목의 기사로 “안 대변인의 행동은 순식간에 화제가 됐고, 그가 낸 용기는 찬사를 받았다”고 전했다. BBC도 안 대변인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꼽기도 했다. 안 대변인은 BBC에 “그냥 ‘일단 막아야 된다, 이걸 막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라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당시 심경을 말했다.

‘계엄 사태’를 대하는 두 30대 정치인들의 태도가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김 의원에 대한 비판 강도도 더 거세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안 대변인은 지난 9일 김재섭 의원의 지역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재섭 의원은 윤석열씨의 내란 행위에 대해 공범이 되길 자처했다”며 탄핵안 가결을 촉구했다. 안 대변인은 또 “김재섭 의원에게 ‘새로운 보수’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역 주민 앞에 사죄하고, 탄핵안 표결에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라며 서명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지난 9일 김재섭 국민의힘 도봉갑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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