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주가가 무섭습니다. 전기차 수요 둔화 전망과 경쟁 심화에 따른 수익률 하락 우려로 가파르게 하락하더니 또 그만큼 빠르게 올라오네요.
최근 급등을 설명하는 가장 손쉬운 근거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효과일 것입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와 단짝이니 적지 않은 수혜를 받을 것이란 기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치부하면 테슬라가 마치 선거철이면 국내 증시에 등장하는 각종 정치 테마주와 다를 게 없습니다.
오늘은 테슬라의 어떤 점을 주목해야 하는지, 최근 뉴스에서 포인트를 잡아 찬찬히 풀어보겠습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자동차 거인 제너럴모터스(GM)가 크루즈의 로보택시 개발을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미국의 전통 자동차 제조사 빅3 가운데 로보택시 혹은 자율주행에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건 크라이슬러뿐입니다. GM과 포드도 발을 뺀 마당에 셋 중 가장 꼬마인 크라이슬러가 백기를 드는 건 시간 문제일 것 같습니다.
반면 테슬라는 지난 10월 로보택시를 공개했죠. 그리고 2026년부터 대량 생산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공개된 로보택시를 두고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습니다. 특히 좌석이 2개뿐인 택시라고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테슬라의 진짜 핵심은 ‘택시’라는 물리적 장치가 아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완전자율주행’(FSD·Full Self-Driving)입니다. 그걸 보지 못한 채 좌석만 보고 테슬라에 실망하면 한참 잘못 짚은 것입니다.
머스크는 수차례 전기차는 수단일뿐 목표는 소프트웨어, 즉 FSD라고 강조해왔습니다.
[로이터] |
테슬라는 최근 FSD supervised 13.2버전을 공개했습니다. 유튜브에 시험 주행 영상이 적지 않으니 한번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진짜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FSD 개발에 매달리고 있고 또 적지 않게 실패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GM은 물론 그 앞서 애플도 자율주행차에서 손을 떼었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테슬라의 FSD 기술은 다른 기업에 비해 조금 앞서거나, 조금 더 경쟁력이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완전히 차원이 다른 기술이라고 합니다.
다른 업체들이 미리 도로를 지도화해 입력하면 그 길을 따라 주행을 하게 하거나 센서를 통해 상황에 대처하며 자율주행을 하려 했다면, 테슬라는 자동차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AI 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막대한 데이터와 이를 통해 학습을 이어온 AI는 마치 인간 신경망처럼 작동해 진짜 인간이 모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자율주행을 완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FSD 14버전이 나오면 또 어떻게 될까요. 정말 궁금해집니다.
테슬라의 FSD 기술 예찬은 여기까지 하고, 그런데 그게 왜 주가를 그렇게까지 끌어올리는 동력이 될지 생각해 볼까요.
그 전에 잠깐 테슬라 주가를 살피고 가겠습니다. 테슬라의 현재 시총은 1조3000억달러입니다. 자동차 종목 가운데 독보적인 1위 입니다. 2위 도요타 시총이 2300억달러니까요. 현대차는 300억달러 중반쯤 됩니다.
테슬라가 자동차 제조사인 것은 분명합니다. 현재 시점에서는요. 전체 매출의 80% 가량이 전기차에서 나오기 때문이죠.
6개월 뒤 혹은 1년 뒤 주가를 가늠하면서 투자 판단을 하려면 전기차 시장이 확장되고 있는지, 테슬라가 그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는지 봐야겠죠. 바로 이 포인트에서 의문이 제기되면서 테슬라 주가가 올해 들어 다소 부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글로벌 완성차 판매 규모를 보면 테슬라는 10위권 밖입니다. ‘자동차 제조사’로서 테슬라 주가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전기차 시장 확대 가능성과 그 시장에서 테슬라의 압도적 점유율 기대를 더한다고 하더라도 100배가 넘는 주가수익비율(PER)을 정당화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더군다나 전기차 시장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일단 테슬라의 강점은 원가 절감 능력입니다. 자동차 부문의 매출총이익률이 감소하고 있지만 그래도 기존 완성차에 비하면 월등히 높습니다. 이 점은 치열한 전기차 시장에서 분명 테슬라의 큰 무기입니다.
테슬라는 자율주행 택시를 3만달러 아래로 공급할 수 있다고 공언했습니다. 현재 미국의 유일한 유료 자율주행 택시인 구글 웨이모가 10만달러라는 걸 생각하면 테슬라의 원가 절감 능력은 두드러집니다.
또 하나 재무적으로 테슬라가 가진 강력한 이익원천이 있습니다. 장부에는 ‘Automotive regulatory credits’로 명시됩니다. 테슬라는 전기차를 생산하기 때문에 탄소를 감축하는 기업입니다. 그래서 탄소배출권을 정부로부터 부여 받습니다.
만약 어떤 기업이 정해진 탄소배출량보다 많이 탄소를 배출하면 배출권을 사와야 합니다. 테슬라는 그런 기업들에게 탄소배출권을 팔아서 돈을 법니다.
물론 전체 매출 가운데 탄소배출권 매출은 소소합니다. 하지만 원가가 전혀 없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출이 곧 이익으로 직결되니, 수익성 측면에선 최고입니다. 더군다나 전 세계적으로 탄소 절감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죠. 테슬라 입장에선 거저 먹을 수 있는 돈이 점점 많아지는 셈입니다.
테슬라 ‘탄소배출권’ 관련 매출 [테슬라 2023회계연도 공시] |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FSD가 재무적으로 테슬라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일단 현 시점만 놓고 보면 매출 기여도는 미미합니다. 테슬라의 2023회계연도 사업보고서를 한번 보시죠. FSD 관련 매출이 얼마인지 정확히 떼어내서 공시를 하진 않았습니다. 대략 추정만 해야 합니다.
주석(Note)에 보면 ‘Deferred revenue’가 나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이연수익’이라고 합니다. 이연수익을 이해하려면 먼저 ‘수익(매출)’의 개념부터 알아야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기업이 물건을 제대로 잘 만들어서 거래 상대방에게 문제 없이 넘겼고, 받을 금액이 확실시 되면 수익(매출)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돈은 받았지만 앞으로 1년, 2년, 3년 혹은 그 이후까지 계속해서 서비스를 해줘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화방에 100만원을 한꺼번에 주고 매년 10번씩 5년 간 다니기로 했다고 해보죠. 이 100만원을 만화방 주인 입장 어떻게 회계 처리해야 할까요. 현금 100만원은 들어왔으니 장부에 적을 금액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손님이 올 때마다 만화책을 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때문에 매출로 잡을 수 없습니다.
이 경우 일단 재무상태표 자산에 현금 100만원을 인식하는 동시에 부채에 이연수익 100만원을 같이 잡습니다. 손익계산서에는 아무 영향이 없고요. (자세한 회계 원리는 앞서 쓴 ‘[투자뉴스 뒤풀이] 돈 벌었는데 빚이라고?…‘선수수익’으로 이해하는 회계 기본’을 참조해주세요)
FSD 서비스가 테슬라의 이연수익의 대표적인 항목입니다.
공시 내용을 보면 이연 수익에 대해 FSD와 관련이 있다고 언급을 해놨습니다. 자동차를 팔면서 FSD 관련 비용까지 받았지만 앞으로 해당 서비스를 유지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등의 서비스를 계속한다는 내용입니다.
테슬라 Deferred revenue [테슬라 2023회계연도 공시] |
Deferred revenue가 계속해서 늘고 있는 것을 공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FSD가 꾸준히 확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연수익은 실제 FSD 서비스가 제공되면 비로소 손익계산서 매출로 인식돼 이익으로 이어집니다. 임영은 삼성증권 연구원님의 보고서에 따르면 테슬라는 FSD 기술에 유의미한 진전이 있으면 이연 수익을 실적에 반영왔습니다.
FSD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소프트웨어는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과 달리 생산에 따른 추가 비용(incremental cost)이 거의 없습니다. 이미 FSD를 개발하면서 쓴 돈은 비용으로 회계 처리를 했기 때문에 매출이 잡히면 거의 그대로 이익으로 직행합니다.
기업의 재무 구조를 생각할 때 매출도 중요하지만 비용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나가는 돈이 그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거나 오히려 더 많으면 속 빈 강정입니다.
테슬라는 탄소배출권 수익으로 누워서 떡을 먹고 있는데다,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FSD까지 더해지니 재무적으로 아주 좋은 수익처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임은영 연구원님은 FSD의 매출총이익률이 70%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20%대인 전기차 판매 매출총이익을 크게 뛰어넘습니다. 70% 이익률은 제조업에선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은 현재 시점에서 FSD입니다. 제아무리 수익성이 좋아도 FSD가 전체 테슬라 매출에 차지하는 비중은 1% 남짓으로 추정됩니다. 이 정도라면 호들갑을 떨 정도는 분명 아닙니다.
중요한 건 테슬라의 FSD가 전체 자동차 시장을 집어 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GM의 로보택시 포기는 자율주행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보여줍니다. 바이두 같은 중국업체들의 기술 수준도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 글로벌 판세에서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중국 기술을 채택하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선택지는 테슬라뿐입니다. 인류의 발전 방향이 자율주행 자동차를 향하는 것이 맞다면 말입니다.
테슬라는 월등한 성능의 FSD를 앞세워 자신들의 전기차를 내다 팔 것입니다. 자율주행이 상용화된 세상에서 자동차 구입 기준은 자동차라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얼마나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FSD가 장착돼 있는지가 될 것입니다. 목숨이 달린 문제니까요.
그렇게 되면 다른 여러 자동차 회사들은 앞다퉈 테슬라 FSD를 사려고 줄을 설 것입니다. 자동차 브랜드는 달라도 그 차를 움직이게 하는 건 테슬라인 것입니다. 마치 컴퓨터 제조사는 제각각이어도 모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를 쓰던 것과 비슷하지 않나요?
게다가 FSD는 꾸준히 업그레이드를 시켜줘야 합니다. 업그레이드를 할 때마다 돈을 받겠죠. FSD를 구독하는 것과 같습니다.
종합하면 테슬라는 자동차(전기차)+소프트웨어(FSD)+구독서비스가 결합된 기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도요타, MS, 넷플릭스가 하나로 뭉친 것 같네요.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님은 SNS를 통해 “아마도 미국의 빅3는 이 변화의 시기에 생존을 위해선 결국 테슬라 FSD를 구매해 사용해야 할 것”이라며 “오래 전부터 예상해온 FSD의 라이선스 비즈니스가 가시권에 들어오는 것일까?”라고 밝혔습니다.
이쯤에서 공격적인 질문이 가능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윈도우 생태계도 철옹성 같아 보였지만 결국 경쟁사의 등장으로 무너진 것처럼, 테슬라의 FSD 생태계도 결국 경쟁자가 등장하면 와해될 것이라고 말이죠.
물론 어떤 기업이라도 영원할 순 없고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또 그런 세상이 소비자에겐 더 좋죠.
그렇지만 테슬라가 이룩한 현재까지의 FSD 기술 수준과 앞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기 위한 체력을 고려하면 근시일내 경쟁자가 등장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애플도 두 손 든 게 자율주행차입니다.
무엇보다 FSD 개발을 위해선 과거 윈도우 같은 컴퓨터 운영체계 개발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막대한 연구개발 지출이 필요합니다. 당장 큰 돈을 벌진 못하는데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고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입니다. 웬만큼 큰 기업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합니다.
바클레이스는 로보택시 ‘웨이모’를 운영하는 구글도 매년 수십억 달러를 까먹고 있다면서 구글 정도니깐 그 정도를 감내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상당한 경제적 장벽이 있는 셈입니다.
그럼 테슬라는 어느 정도일까요. 연구개발에 돈을 퍼부을 만큼 재무 체력이 튼튼한가 보죠.
테슬라가 2023회계연도에 연구개발(R&D)에 썼다고 공시한 금액은 40억달러 정도 됩니다. 전년 대비 29% 늘었습니다. 매출액 대비 4~5%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돈을 버는 만큼 연구개발에 계속해서 투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출 대비 4~5%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닙니다.
테슬라 연구개발 비용 [2023회계연도 공시] |
게다가 테슬라는 자동차 생산 등을 위해 공장설비 등 막대한 유형자산 투자가 필요합니다. 테슬라 현금흐름표에 보면 얼마나 유형자산 투자를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투자활동 현금흐름(Cash Flows from Investing Activities)을 보면 2023회계연도에 89억달러 가량을 유형자산(PPE)에 썼네요. 같은 해 영업활동 현금흐름(Cash Flows from Operating Activities)를 보면 영업으로 모두 132억달러를 벌었다고 나옵니다.
즉, 132억달러 벌어서 89억달러를 투자했으니 43억달러 가량의 Free Cash Flow가 남습니다.
요약하면 미래 먹을거리를 위한 투자와 연구개발을 계속하면서도 돈을 벌어 남기면서 계속해서 성장동력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재무구조상으로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한 것이지요.
물론 지금까지 말씀드린 건 어디까지나 적지 않은 추정과 가정이 들어간 것입니다. 또 앞으로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도 알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글은 테슬라 주가가 앞으로 얼마나 더 갈 것인지를 예측한 것은 아닙니다. 그럴 능력도 되지 않을 뿐더러 주제에 벗어난 이야기입니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그 정보들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나름의 생각을 전개해 봤습니다. 모쪼록 테슬라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셨길 바라겠습니다.
김우영 기자/CFA
#헤럴드경제 기자입니다.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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