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못 들어가는 편의점…대법 “국가, 10만원 배상”

300㎡ 이상 편의시설에만 설치 의무
편의점 99%는 해당 안 돼
1심·2심 “국가 책임 아니다”
대법 전원합의체 뒤집고 배상 판결


지난 10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 사건 관련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뉴시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편의점에 들어갈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일까. 대법원은 ‘그렇다’고 답했다.

국가가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 설치 기준을 지나치게 좁게 잡아 사실상 장애인들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면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최초로 ‘장애인 접근권’을 헌법적 기본권으로 인정했다.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조희대·주심 대법관 이숙연)는 장애인 2명과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편의점 가맹본부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차별구제청구 소송에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각 1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건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고들은 1998년 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의 시행령이 편의점, 슈퍼마켓 등 소매점의 ‘편의시설’ 의무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설정한 것이 장애인 차별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시행령에 따르면 바닥면적 합계가 300㎡ 이하인 소매점은 휠체어 경사로 등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면제된다. 300㎡는 약 90평이다. 문제는 ‘소매점’의 상당수가 300㎡ 이하라는 점이다. 2019년 기준 전국 편의점 4만3975개 중 의무 설치 대상에 해당하는 편의점은 115개, 약 1.4%에 불과했다.

1998년 관련 법이 제정된 이후 24년이 넘도록 적절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정부의 ‘입법 부작위’에 해당한다며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원고들은 주장했다. 정부가 제대로 법을 만들지 않아 장애인과 임산부 등의 권리가 침해됐다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2022년 시행령을 개정해 의무 면제 대상을 바닥면적 50㎡ 이하로 바꿨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9년 기준 50㎡ 이하의 편의점 비율은 22.5%였다. 시행령이 개정돼도 10곳 중 2곳은 장애인 편의시설을 만들 의무가 없는 셈이다. 원고들은 ‘바닥면적’ 기준을 없애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1심과 2심에서는 편의점 가맹본부가 2009년 4월 이후 신축·증축·개축한 시설물에 대해 출입문과 구매보조서비스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출입 경사로 대신 ‘보충적인 수단’을 제시한 것이다. 편의점 가맹본부와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뒤집고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장애인 접근권’ 또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장애인 접근권은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데 필수적인 전제가 되는 권리다.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지위를 갖는다”며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시설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면 행정청은 장애인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1998년 장애인등편의증진법이 제정되고,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는데도 해당 시행령은 개선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대법원은 “최소한 2008년에는 장애인의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이용·접근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며 “(2008년부터) 14년이 넘도록 행정입법 의무를 불이행해 입법 취지와 내용이 장기간 실현되지 못했다. 지체장애인의 접근권이 유명무실해져 위법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에 비해 정부가 부적절하게 대응했다고도 지적했다. 대법원은 “장애인 단체들도 개정을 지속해서 요구했고 UN장애인권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도 지적했다”며 “공무원들은 쟁점규정 장기간 방치가 장애인 접근권 보장 의무를 불이행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부의 무대응이 장애인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끼쳤다는 점도 인정했다. 대법원은 “쟁점규정은 95% 넘는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면제했다. 24년 넘게 개정되지 않아 장애인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일상적으로 침해받는 상황을 감내해 왔다”며 “장애인의 고통에 위자료를 지급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국가에 적절한 행정입법 의무 이행과 적극적인 정책 시행을 촉구하는 수단으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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