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회동’서 ‘장관님 지시’ 강제적 수행 논의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사 요원을 투입한 혐의 등을 받는 문상호 정보사령관을 체포한 가운데 18일 오후 차량이 경기도 과천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국군정보사령부가 12·3 비상계엄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하면서 선관위 직원들을 케이블타이 등으로 묶어 강제로 제압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모 정보사 대령의 법률 자문을 맡은 김경호 변호사는 20일 정 대령의 진술을 토대로 한 대국민 사과와 법률 의견서를 공개했다.
정 대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틀 전인 지난 1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문상호 정보사령관, 김모 대령 등과 함께 경기도 안산의 한 햄버거 패스트푸드점에서 계엄을 사전 모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 대령은 이들과 선관위 명단 확보, 실무적인 인원 편성, 출근 직원 통제 방법 등 내란 실행 준비 단계에 해당하는 구체적 행동계획을 협의하고 준비했다고 진술했다.
단순히 상급자의 명령을 수동적으로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명단 정리와 2인 1조 인원 배치 및 차량 편성, 강압적 수단까지 포함한 출근하는 선관위 직원 이동 등을 논의하고 실천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폭동 실행을 위한 사전준비행위로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정 대령은 케이블타이나 마스크, 두건 등을 활용해 선관위 직원들의 자유를 사실상 박탈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비상계엄 선포나 비상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장관님 지시’에 따른 강제적 임무 수행을 기정사실화한 대화가 있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정 대령이 처음에는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으나 선관위 대상 강제적 조치 등을 준비하면서 ‘아, 계엄일 수 있겠다’는 인식을 했다”며 “선관위 전산서버 확인, 인원 통제 등 임무가 헌정질서 전복과 관련될 수 있음을 상당히 짐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헌법기관이자 선거사무관리기관인 선관위를 강제로 장악하거나 기능 마비를 초래하는 것은 선거제도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민주적 정당성을 파괴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김 변호사는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나 명백한 위법명령, 특히 헌정질서 파괴 목적의 내란적 복종의무가 배제된다”며 “정 대령은 상황을 인지하고도 중지하지 않고 오히려 계획 수행에 협조했으므로 ‘명령에 따른 행위’로 면책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정 대령은 형법 제87조 내란죄의 실행 행위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내란 예비·음모죄 성립이 가능하다”며 “만약 계엄 발동과 병력 투입으로 내란 실행이 개시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면 내란죄의 공동정범 또는 방조범으로 책임을 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만 “정 대령은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정보사 지휘관 중 최초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고 특히 이번 사태에 동원된 유능한 부하 장병들에게 더 이상 책임이 전가되지 않도록 바라고 있다”면서 “잘못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지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정 대령은 김 변호사를 통해 공개한 ‘대국민 사과’에서 “국민의 군대 지휘관으로서 잘못된 판단과 행동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드리고자 한다”며 “위헌·위법한 상황을 초래하고 명령한 현직 정보사령관뿐 아니라 더욱 심각한 역할을 한 전직 정보사령관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수사기관에 진술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