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닛산 통합 속도…한국 완성차 ‘글로벌 전략’ 고심

혼다·닛산 경영 통합, 글로벌 판매 3위 올라

하이브리드·전기차라인업, 단번에 확대 가능

“위기에 살기위한 통합, 시너지 적다” 지적도

 

혼다와 닛산이 23일(현지시간)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본격적인 세부 협의에 들어가면서 글로벌 완성차업계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해 세계 판매량은 혼다 398만대, 닛산 337만대, 미쓰비시(닛산 자회사)가 78만대다. 3사의 판매량을 합하면 813만대로, 세계 1위인 토요타 그룹(1123만대), 독일 폭스바겐 그룹(923만대)에 이어 글로벌 3위에 달하게 된다. 한국 완성차업계를 대표하는 현대자동차그룹(744만대·현재 3위)보다도 많다.

3사가 통합으로 시너지를 내게 될 경우, 북미와 유럽 등 주요시장·인도와 동남아 등 신흥국 시장 모두에서 보폭을 확장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에도 큰 경쟁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로 유명한 닛산은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량 부진을 겪어 왔다. 닛산의 ‘사쿠라’를 포함한 전동화 모델이 일본 시장 1위에 오르는 등 인기를 구가했지만, 글로벌 핵심 시장인 북미와 중국 지역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사이 중간고리 역할을 담당할 하이브리드(HEV) 라인업에서 경쟁사에 밀린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신흥국 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달가운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북미 시장에서도 현대차와 경쟁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혼다가 닛산의 전동화 기술력을 전수받는다는 점은 껄끄러운 대목이다.

다만 단기적으로 우리 업계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앞서 스텔란티스그룹이 출범할 당시 상황이 현재와 유사하다는 점에서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7월에 크라이슬러와 PSA가 합병하며 탄생한 스텔란티스는 합병전 글로벌 판매 800만대에 달했지만, 합병 후 2023년 글로벌 판매량은 610만대로 23% 감소했다. 미국 시장에서의 점유율 역시 2019년 13%에서 올해 현재 8% 수준으로 급감했다.

합병 과정에서 양사가 구조조정과 내실다지기를 반복하면서, 사업부 축소와 마케팅 부진을 겪는 바람에 다른 회사에 뒤쳐진 것이다. 그 사이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서며 시장점유율이 8%에서 올해 누계기준 11%로 성장했다. 혼다와 닛산의 합병도 비슷한 양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혼다와 닛산의 통합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경우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 회사가 탄생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닛산 입장에서 혼다와의 협업은 북미에서 ‘HEV 경쟁력 강화’와 ‘영업망 확보’라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혼다는 세계적인 엔진 기술력을 자랑하는 회사로, 높은 엔진내구성과 연비로 호응을 받아온 브랜드다. 엔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HEV 시장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여기에 오랜시간 미국시장에서 활동하며 CR-V, 어코드 등의 모델을 스테디셀러로 각인시킨 영업력도 탁월한 수준이다.

아울러 혼다가 ‘아큐라’라는 프리미엄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점을 감안했을 때, 닛산이 한동안 포기했던 고급형 세단 시장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사업에서 철수하며 부진했던 닛산과는 다르게 혼다는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 차량을 판매해온 영업망을 갖추고 있다”면서 “혼다와의 맞손으로 닛산의 차량 경쟁력이 크게 상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혼다는 주로 이륜차 부문이 실적을 견인하면서,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차를 갖춘 포트폴리오 형태를 갖추고 있다. 어코드와 CR-V, 캠리 등 일부 모델에 한정됐던 혼다의 하이브리드 기술력이 닛산의 다양한 차량들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국내 업계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닛산이 갖춘 인도와 아세안 등 신흥시장 사업 노하우 역시 혼다에게 도움이 될 전망이다. 혼다는 태국 아유타야와 쁘라찐부리주에 공장을 두고 있었지만, 판매량 감소 등의 영향으로 지난 7월 태국 아유타야주 공장을 정리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닛산·미쓰비시가 가진 소형차 경쟁력과 영업능력으로 현지 시장에 재도전이 가능하다.

이번 통합이 마무리 될 경우 글로벌 완성차업계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최근 완성차 업계는 오랜 경쟁관계였던 브랜드들의 ‘합종연횡’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신흥 완성차 브랜드와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전통의 강자들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업체들은 각자가 가진 고유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협업을 추진하면서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9월 글로벌 완성차 5위 GM을 이끄는 메리 바라 회장과 만나 포괄적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양사는 내연기관차부터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수소 분야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서 협력을 모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공동으로 차량을 개발하거나 생산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근 정 회장은 일본의 토요타 아키오 회장과도 만남을 갖고 수소와 레이싱 분야에서 협력을 논의한 바 있다.

글로벌 1위 토요타 역시 BMW와 2013년부터 연료전지 구동 시스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의 제휴 관계도 맺었다.

토요타는 수소탱크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BMW는 수년 내 수소 양산차를 내놓는 것이 골자다. 글로벌 2위 폭스바겐그룹은 미국 전기차 업체 리비안에 58억 달러를 투자해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전환사채 형태로 10억달러 규모를 투자한 상태다.

국내 완성차 업계 고위 관계자는 “소프트웨어나 전장사업에 있어서는 제조업 기반인 기존 업체들의 수준이 신흥업체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새플레이어의 등장으로 점차 격화하고 있는 경쟁 속에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업체간 통합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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