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100만원, 사라진 내 자리”…고성방가 오간 오페라 ‘투란도트’ 무슨 일?

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 개막
연출자 하차하며 제작 파행 빚더니
6800석→4000석 줄이며 티켓 조정
예매했는데 내 자리 사라져 ‘대혼란’


‘어게인 2024 투란도트’ /고승희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인터파크로 G구역 7열을 예매했는데 현장에 오니 다른 좌석의 티켓을 주더라고요. 심지어 그 티켓을 받고 공연장에 들어가니 해당 좌석은 없었고, 다른 좌석으로 업그레이드 해준다고 해서 줄을 선 채로 기다리는데 공연은 시작하더라고요.”

지난 22일 서울 코엑스 D홀에서 열린 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가 개막 공연을 찾은 한 관람객은 이렇게 말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 관객이 구입한 티켓은 R석으로 30만원 짜리다.

티켓 최고가 100만원에 달하는 대작 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 공연장은 시장통을 방불케했다. 공연 시작 수시간 전부터 티켓 부스에서 D홀로 올라오는 3층 입구까지 수백 명이 긴 줄을 늘어섰고, 관객들은 입장조차 하지 못한 채 항의를 이어갔다.

공연장을 찾은 또 다른 관객은 “유명한 성악가들이 많이 나오는 대작 오페라라고 해서 예매했는데 (내가 구매한) 좌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황당해했다. 어머니와 함께 공연을 찾은 한 남성 관객도 “예매한 좌석이 사라져 주최 측에서 새로운 자리로 업그레이드 해주겠다며 줄을 서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30분 넘게 진척이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날 ‘투란도트’ 개막 현장은 한국 공연사에 길이 남을 ‘총체적 난국’이었다. 티켓 수령과 재발급을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뒤엉켰고, 부족한 현장 인력이 사태 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해 공연은 30분 가량 지연됐다.

‘대혼란’에 가까운 사태가 빚어진 것은 개막을 앞두고 제작사인 투란도트문화산업전문회사 측에서 갑작스럽게 객석수 조정을 하면서다. 주최 측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취소표가 쏟아져 나와 당초 6800석으로 예정했던 기존 객석을 3500~4000석으로 줄였다. 실제로 오페라의 티켓 판매율은 상당히 저조한 상황이다. 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23일 오전 기준 24일 ‘투란도트’ 공연은 1370여석의 좌석이 남아있다.

박현준 ‘어게인 2024 투란도트’ 총예술감독은 “6000여석으로 공연을 시작하면 빈 좌석이 너무 많이 보일 것 같아 줄였다. 해당 좌석의 예매 관객은 더 좋은 좌석으로 업그레이드 해주는 정책을 세웠는데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최 측에서 축소한 자리는 대체로 S석 이하의 좌석이라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 개막 공연에서 티켓 수령과 좌석 조정을 위해 줄을 선 관객들/고승희 기자


문제는 관객들에게 제대로 된 공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한바탕 난리가 생긴 이유다. 제작사는 예매 관객에게 개별 연락을 취하지 않은 것은 물론 홈페이지나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도 변경 사항을 알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투란도트’ 티켓을 판매하는 한 예매 사이트에선 주최 측이 조정한 좌석이 반영지 않은 채 티켓을 판매해 사라진 좌석을 구매한 관객도 나왔다.

다수의 관객은 현장에 와서야 자신이 예매한 좌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관객들은 당연히 어이없고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현장에선 티켓 수령처의 직원 10명 가량이 기존 구매 티켓을 하나씩 확인, 비어있는 좌석으로 안내했으나 공연 시작 시간에 맞춰 모두에게 ‘좌석 업그레이드’를 해주긴 역부족이었다.

공연장 밖에서의 시간 지체로 본 공연 역시 30분이나 지연된 8시경에 막을 올렸다. 사라지지 않은 좌석을 구매한 관객들은 공연장 안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내부에서도 고성방가가 오가며 항의가 빗발쳤다. “동네 연극도 이보다는 낫겠다”는 조롱 섞인 큰소리도 나왔다. 티켓 수령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최 측의 공연 시작 안내를 내보내자, 티켓 수령을 위해 수십여 분을 지체한 관객들은 큰소리로 항의해 공연장 앞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심지어 제작사와 티켓 수령처 사이에서도 불미스러운 고성도 오갔다.

제작사 측 관계자는 “좌석 조정이 되지 않아 환불을 요청한 관객들은 200명 가량 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관객들에게 환불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이날 현장에서 있었던 일의 원인을 분석해 향후 공연에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티켓예매처를 통해 해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투란도트’ 파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전날 새벽엔 오페라를 연출하기로 한 이탈리아 거장 다비데 리버모어는 “서울에서 공연될 ‘어게인 2024 투란도트’ 프로덕션의 예술적 결과물과 완전히 결별한다”며 “프로덕션은 원래의 기획 의도에서 벗어났다.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투란도트’를 내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리버모어 연출가가 밝힌 ‘결별’ 이유로 앞서 2003년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버전의 ‘투란도트’ 동선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번 ‘투란도트’는 지난 2003년 상암 월드컵에서 열린 야외 공연을 기념, ‘어게인’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리버모어 연출가는 “비전문적인 아마추어 수준의 권위적의적 강요”라고 주장하며 “제작진과 연출가 사이의 건설적인 대립은 일반적인 관행이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런 협력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도착 첫날 받기로 했던 개런티도 받지 못했다. 계약상의 지불 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며 ”나의 예술적 수준이 이 공연과 관련되거나 내 이름과 얼굴을 이용해 티켓을 판매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 D홀 앞에서 열린 푸치니 서거 100주년 기념 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 기자간담회에서 박현준 예술총감독, 지휘자 호세 쿠라 및 출연진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공연은 코엑스 D홀에서 오는 22일부터 31일까지 열린다. [연합]


리버모어와 제작사 측의 갈등은 진실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박현준 총감독은 “한국 오페라를 우습게 여겨왔던 이탈리아 오페라 관계자들이 이번 ‘어게인 2024 투란도트’에서 다시 한번 한국을 봉으로 아는 추태를 또 보였다”며 “그동안 여러 차례 2003년 버전을 준비하기를 요구했지만 리버모어 측은 제작진의 의도를 듣지 않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투란도트’를 연출하려 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리버모어는 공연을 앞두고 입국했으나 “연출에 관해 손짓이나 한걸음 걷는 것 등 연출에 대해 한 마디도 도움이 준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박 감독의 반박에 리버모어는 “‘한국을 봉으로 본다’는 발언은 명확한 조작”이라며 “이러한 발언은 세계 최고 극장에서 30년 가까이 활동한 제 개인의 역사를 조작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박 감독이 내가 일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장이머우 같은 위해단 예술가의 모방을 강요하며 우리의 연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내겐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저는 다른 아티스트의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사용하거나 조작하거나 베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막 오른 ‘어게인 2024 투란도트’는 파행을 거듭했으나, 첫 공연은 무사히 마쳤다. 총 제작비로 약 200억원을 투입했다고 밝힌 오페라는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쿠라, 파올로 카리야니 등 세계적 거장들이 지휘자로 참여하며 소프라노 아스믹 그리고리안,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 브라이언 제이드 등이 출연하는 대작이다.

가로 45m, 높이 17m의 무대에 발광다이오드(LED) 화면을 배경으로 활용했고, 두 개의 전광판을 통해 공연 모습을 클로즈업해 보여줬다. 하지만 가로로 긴 무대 위엔 대형 기둥이 곳곳에 자리해, 양쪽 끝 좌석은 완전히 시야가 제한됐다. 자막과 성악가들의 모습을 담는 전광판도 무대 좌우 끝에만 설치,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 전문 공연장이 아닌 탓에 오케스트라 사운드도 풍성하게 울리지 못했고, 마이크를 착용한 성악가들의 소리조차도 커다란 홀을 감싸지 못했다. 단차 없이 줄줄이 늘어선 객석은 모든 좌석이 평등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없음에도, 최고 좌석으로 꼽힐 가장 앞 구역 이후 두세 구역까지 100만원으로 책정해 의아함을 남겼다. 그나마 투란도트 공주를 연기한 아스믹 그리고리안의 압도적인 가창력과 감정선, 류 역할의 줄리아나 그리고리안의 노래와 연기가 무대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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