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타이틀 롤인 사극 ‘원경’은 어떤 기대감을 주고있나[서병기 연예톡톡]

원경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오는 1월 6일이면 tvN X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원경’이 공개된다. 원경은 기존 사극에서 조선 개국기를 다루거나 태종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보여지는 인물이지만 ‘타이틀 롤’로서의 원경이라는 인물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새로워진다.

원경은 태종을 도와 왕을 만들어내고, 나중에는 남편에 의해 자신의 친정이 쑥대밭이 되는 ‘비운의 인물’이다.

하지만 원경이 남편을 도운 것이 ‘단순 어시스트’가 아니라, 주체적인 성격에서 나왔다면 과정과 해석이 또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또, 원경을 세종대왕의 어머니라고 보면 또 다른 관점이 나타날 수 있다.

사극의 주인공은 대다수가 남자다. 여성은 보조적이었다. 과거 이병훈 감독이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인 여장부 ‘소서노’를 사극으로 만들려고 구상하다가 ‘주몽’이 나오면서 제작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소헌왕후’ ‘문정왕후’ 등 여성들을 제목으로 내세운 사극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초선 창업을 얘기할때, 이성계와 그의 아들 이방원, 그리고 이방원의 정비인 원경은 빠지지 않고 등장해야 하는 인물이다.

원경은 이방원이 조선 3대 왕(태종)이 되고난 뒤나, 또는 왕세자 시절 간택이 되어 자동적으로 왕후 자리를 꿰찬 게 아니다.

오히려 방원의 집안이 원경보다 훨씬 초라하다. 고려 재상지종(宰相之宗) 15개 가문 중 하나로 고려말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여흥민씨의 최고 어른인 민제가 원경의 아버지다. 반면, 고려말 이성계는 동북면 국경지대에서 병사들을 모아놓고 대장 노릇을 하던 무사다.

두 사람이 결혼한 시기는 고려 우왕 8년(1382년)이다. 민씨는 18세의 나이로 두살 연하남 방원과 혼례를 올렸다. 이 해는 방원이 과거를 통과해 성균관 유생이 된 해다. 방원은 이성계의 수많은 자식중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한 케이스다.

이성계는 후궁을 제외하고 조강지처이자 정비인 신의황후 한씨와 계비인 신덕황후 강씨와의 사이에 낳은 11명의 자식(아들 8명, 딸 3명)중 과거에 급제한 건 방원 뿐이다.

장인인 민제는 집안은 볼 것 없지만, 자신의 제자이기도 한 사위의 머리 하나만 보고 딸을 결혼시킨 것으로 보인다.

대장부 기질을 타고난 원경도 2차례의 왕자의 난을 통해 남편을 적극적으로 도와 ‘킹 메이커’ 역할을 한다. 그러니 태종 이방원이 누린 자리는 원경왕후의 지분도 꽤 되는 셈이다.

하지만 권력은 나누기를 거부한다. 또 한 곳으로 집중될수록 부패한다. 1인 체제 권력 독점욕이 강했던 방원은 일단 권력을 완전히 잡은 후에는 처가 식구들이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다. 1차 왕자의 난때 자신을 도운 민무구, 민무질 등을 포함해 처남 4명을 죽여버린다. 민제의 입장에서는 죽고나자 아들 4명이 모두 사위 손에 죽는 참극이 벌어졌다.

원경은 이 모든 걸 살아서 경험했다. 자신의 가문이 무너지는 걸 목도해야 했다. 마음이 섞어문들어졌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원경’(연출 김상호 극본 이영미) 제작진은 남편 태종 이방원(이현욱)과 함께 권력을 쟁취한 원경왕후(차주영)를 중심으로, 왕과 왕비, 남편과 아내, 그 사이에 감춰진 뜨거운 이야기를 그리면서, 원경의 관점에서 새롭게 창조하고 해석한다고 밝혔다.

정치적 동반자로 알려진 이들 부부가 조선의 왕과 왕비가 되기까지의 과정부터, 그 이후 시작된 정치적 균열과 부부이기 때문에 야기되는 내밀한 감정적 갈등까지 들여다보며, 차별화된 서사를 선보인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검을 든 원경이 “조선의 여인이란 대체 무엇입니까?”라는 비장한 의문을 던지며 시작된다. 여흥 민씨 민제의 딸로 태어나 총명하고 자존감이 강했던 원경은 주체적인 의식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래서 사랑과 꿈을 스스로 선택했고, 그 선택을 끝까지 책임진다.

왕자의 난때 어린 동생들을 죽여 내적 갈등과 압박에 시달렸고, 급기야 아버지 이성계(이성민)에게도 내쳐진 남편 이방원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오늘 밤 역사는 분명 우리의 편입니다”라고 감싸 안으며, 그가 용상에 오르기까지 그 곁을 끝까지 지켰던 이도 원경이었다.

그러나 이방원이 조선의 3대 국왕이 된 이후 부부 사이의 균열이 시작된다. 함께 이뤄낸 왕권이었지만, 이방원은 “중전은 지금 넘치는 일을 하고 있소”라며 아내를 견제하고, 합궁도 거부하는 듯한다.

방원은 아들들을 낳아준 정비를 거부하고 후궁들과 놀아나며, 심지어 원경을 중궁전에 가두기까지 했다. 투기유발책일 수도 있겠다.

이에 원경은 “권력을 차지하고 나니 변하신 겁니까”라며 변한 남편에게 느낀 배신감을 토로한다. 아직은 최명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들린다. 사극 경험이 없는 젊은 배우 차주영이 이를 색다르게 연기할 것으로 기대된다.

왕과 왕비 이전에 뜨겁게 사랑했던 이들 부부 사이에 흐르는 애증의 감정이 얽힌 이 서사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내밀한 관계까지 들여다보는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방원은 많은 피를 흘리게 해놓고 권력을 잡았다. 장자상속제 원칙을 깨고 세째 아들인 충녕에게 왕위를 잇게했다. 이미 세자가 돼있던 첫째 아들 양녕을 폐위시키고 한 일이다. 원경은 정치적 희생물로 제거 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사랑하는 맏아들’ 양녕을 눈물을 머금고 궁밖의 사가(私家)로 내보내야 했다.

방원은 왕자의 난 등 혁명의 시기에 양녕과 효령대군, 특히 양녕은 어린 시절내내 외가집에서 자라 ‘처가의 사람’으로 생각해 권력을 넘겨주기가 더욱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방원과 원경이 요즘 살았다면 100% 이혼감이다. 하지만 그들의 아들 세종대왕은 부모의 무덤을 함께 썼다. 필자가 70년대초반 중학생이었을때 소풍을 가곤했던 강남구 ‘헌인릉’이다.

그중에서 헌릉(獻陵)은 태종과 원경왕후가 함께 잠든 좌우 쌍릉(雙陵) 형태다. 죽고나서는 싸우지 말라는 자식의 효심이 담겨있다고나 할까. 그들 아들인 세종대왕 자신도 죽고나면 부모님 곁에 가고싶다고 해 세종과 세종비인 소헌왕후 능인 영릉(英陵)은 헌릉 주위에 있었다. 세종대왕릉이 처음부터 여주에 자리잡은 게 아니다.

하지만 예종의 아버지인 세조 시절, 세조의 맏아들이자 예종의 형인 의경세자가 20살을 넘기기 못하고 사망하는 등 안좋은 일들이 겹치면서 예종 1년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여주로 영릉(합장릉)을 천장하게 됐다.

그런가 하면 ‘원경’에는 조선을 건국한 이방원의 아버지 ‘이성계’ 역을 맡은 이성민의 압도적 연기가 최초 공개됐다. 이성민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이성민이 ‘재벌집 막내 아들’에서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을 연기할 때, 실제 이병철 회장처럼 연기했다면 별로 재미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성민은 약간의 과장과 능청과 포인트를 집어내는 특유의 연기로 시청자를 끌어당겼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는 10.26 사태 이후 계엄사령관이었다가 부하인 보안사령관 겸 합수부장인 전두환에게 납치당하는 수모를 겪은데다, 정승화 장군을 연상시키는 정상호 참모총장 역할이 연기를 주관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지 않고 분량도 적었다.

하지만 ‘원경’에서 이성계를 연기하는 이성민은 또 한번 재해석과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성민(이성계)은 왕자의 난을 일으킨 아들 이방원과 대척점에 선 그는 “내 그 용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줄 것이야!”라고 온몸에 핏줄이 설 정도로 피 끓는 사자후를 토해낸다. 영상 후반부를 장악한 그의 강렬한 존재감은 첫 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더더욱 증폭시킨다.

짧은 영상만으로도 극도의 흡입력을 선사한 배우들은 대사 하나, 장면 하나에 의미를 더하며 가슴 뛰는 긴장감을 높이고 있는 가운데, 제작진은 “이번 영상은 극을 관통하는 원경과 방원의 운명이 바뀌던 순간부터, 왕과 왕비이기 이전에 남편과 아내였던 두 사람의 감춰진 이야기까지, 권력과 사랑, 희생과 갈등을 휘몰아치는 전개 속에 담았다. 다뤄지지 않았던 차별화된 이야기와 영상이 고스란히 담긴 웰메이드 사극으로 새해 안방극장을 찾아가겠다. 기대해달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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