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장례식장에서 나온 일회용 및 일반쓰레기들. 주소현 기자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제일 큰 쓰레기봉투(75ℓ)로만 200개”
통상 이곳에서 단 ‘하루’ 동안 배출되는 쓰레기 규모다. 거리낌 없이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 있는 곳. 그러면서도 별다른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곳. 바로 장례식장이다.
일상 생활 중에서 일회용품 소비량이 가장 많은 장소 중 하나다. 식탁보부터 접시, 그릇, 컵, 수저, 젓가락 등 모든 게 일회용품이다.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남발하는 문화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실정이다.
다만, 점차 문제 의식과 개선 의지가 확산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최근엔 민간 상급 종합 병원에서도 자발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실제 조문객들의 만족도도 크게 올라갔다는 현장의 분위기다. 널리 확산돼야 할 사례다.
다회용기를 이용해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삼성서울병원 제공] |
24일 삼성서울병원은 올해 7월부터 일부 장례식장에서 일회용기 대신 다회용기를 사용한 결과, 5개월간 일반폐기물 20톤을 줄였다고 밝혔다.
통상 장례식장에서 사용하는 75리터 쓰레기봉투 중량이 7㎏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단 5개월 동안 봉투 3000개에 달하는 분량의 쓰레기가 절감된 셈이다.
다회용기 사용에 따른 비용적 부담도 없는 상황이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다회용기 사용에 대한) 서울시 지원이 이뤄지며 조문객들이나 병원 측에서 별도로 비용을 부담하지 않았다”면서 “경제적인 측면을 떠나서도 ESG 강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라고 설명했다.
장례식장에서 사용되는 다회용기.[삼성서울병원 제공] |
여기다 우려했던 상주와 조문객의 불만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이 다회용기를 사용한 상주와 조문객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용기가 깨끗하고 위생적이다”는 등 긍정적 반응이 확인됐다.
삼성서울병원은 이같은 긍정적 결과에 힘입어, 내년 1월부터는 전체 상가를 대상으로 다회용기 사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경우 쓰레기 절감 효과는 연간 100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시내 한 장례식장에서 나온 일회용 및 일반쓰레기들. 주소현 기자 |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 1100여개 장례식장에서 1년간 소비되는 일회용품 쓰레기는 총 3억700만개에 달한다. 연간 소비되는 일회용품 규모만 2300톤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내 일회용품 유통량의 5분의 1 수준이다.
장례식장은 꾸준히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필요한 장소로 지적됐다. 그러나 고인을 애도하는 공간에 환경 규제를 내세우기 힘들고, 시민들의 인식 변화가 어렵다는 이유로 변화가 늦춰졌다.
하지만 지자체를 중심으로 변화가 시작됐다. 서울시는 2018년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에 다회용기 이용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의료원은 2023년 7월부터 ‘일회용품 없는 장례식장’으로 지정됐다. 그 결과 월평균 약 15톤의 폐기물이 감축됐다.
장례식장 다회용기 모습.[인천시 제공] |
지자체가 나서 다회용기 사용 여건을 마련해주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인천시는 2021년부터 장례식장 10곳과 ‘일회용품 없는 장례문화 조성’ 업무협약을 맺고 다회용기 세트를 배달하고, 수거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청주시는 내년 2월부터 다회용기 공공세척센터를 개설해, 연간 700만개의 다회용기를 세척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청주시는 우선 청주시립장례식장, 청주의료원 장례식장 등에서 나오는 다회용기를 무료로 세척해 주고, 하루 5000개의 다회용기 사용을 권장할 계획이다.
장례식장에서 쓰이는 다회용기 세트.[창원시 제공] |
이 밖에도 창원시, 전주시, 경남 거창군, 강원 춘천시 등에서도 다양한 방안의 다회용기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 내 장례식장을 대상으로 사용 자제 권고를 내리는 등 지침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물론 직접적인 규제가 어려운 ‘민간 장례식장’에서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삼성서울병원이 상급종합병원 최초로 다회용기를 도입했고,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며 향후 민간 차원에서의 변화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아직 일회용품을 경조사 물품으로 지원하는 곳이 많고, 다회용기가 다수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면서도 “기존 장례문화를 바꾸고,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나가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