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젤렌스키 엑스 캡처·연합]

[헤럴드경제=차민주 기자]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쿠르스크 전장에서 생포한 북한군 2명의 초기 조사 내용이 공개되면서 북한군의 비인도적인 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북한군 2명 중 1명은 “전쟁이 아닌 훈련 이동인 줄 알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국정원은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9일(현지시간) 생포한 북한군 1명의 조사 내용을 설명하며 해당 군인이 “전쟁이 아닌 훈련을 받기 위해 이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러시아 도착 후에 파병 온 것을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앞서 국정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정보위가 진행한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차출 부대 소속 병사를 대상으로 입단속”을 하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번 북한군의 증언으로 파병 당사자가 영문도 모른 채 러시아로 이동한 사실이 확보된 것이다.

아울러 국정원에 따르면 이 북한군은 “지난 11월 러시아에 도착해 일주일간 러시아 측으로부터 군사 훈련을 받은 후 전장으로 이동”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대다수의 북한군이 초단기 훈련만 받은 뒤 무방비 상태로 전장에 투입됐다는 의미다. 북한군의 드론전 등 현대전 준비 부족은 러시아 파병 동향이 파악된 후 가장 크게 우려된 부분 중 하나였다.

실제 이로써 북한군의 대규모 사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조사를 받은 북한군 중 한 명은 “전투 중 상당수 병력 손실이 있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백악관이 지난달 27일 브리핑에서 직전 일주일간 북한군 사상자가 1000명 이상이라는 평가와 부합하는 증언이다.

북한군이 일명 ‘총알받이’로 전락한 비인도적인 상황은 그간 꾸준히 전해져 왔다. 지난 9일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북한군과 교전한 우크라이나군의 증언을 인용해 북한군 병사들이 사실상 ‘인간 지뢰 탐지기’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북한군 생포 사실을 알리며 생포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며 “러시아군과 북한군은 보통 부상한 동료를 처형해 증거를 없애는 방식으로 북한군의 참전 사실을 은폐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생포된 북한군 역시 자신이 낙오돼 4~5일간 헤매다 붙잡혔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에 먼저 발견됐다면 부상 상태로 방치되거나 처형됐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젤렌스키 엑스 캡처·연합]

우크라이나가 북한군인들의 열악한 실상을 알리고 러·북의 국제인도법 위반 실태를 공론화하는 데 주력하는 만큼, 향후 이들의 신병 처리에 이목이 쏠린다.

원칙적으로 이들은 전쟁포로로 분류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포로 교환 대상이 된다. 변수는 북러의 확인 절차다. 북러가 파병 사실을 부인할 목적으로 이들의 소속을 확인해 주지 않으면 포로 지위가 부여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변상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러북 양국이 소속을 확인해 주지 않는 북한군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선적 관할권을 갖게 되므로 정부는 우크라이나와의 협의를 통해 북한군을 한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변 실장은 “북한군이 한국 귀순 의사를 밝히게 되면 ‘제네바 제3협약에 관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주석서’에 따라 포로 송환 의무의 예외를 정당화할 여지가 있다”며 이 같은 경우에도 정부가 ICRC에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쟁포로 지위가 부여된다고 해도 복귀 시 인권침해 위협에 직면한다면 송환 의무 예외 대상으로 간주하는 ICRC 해석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