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구성, MBK-영풍 측 선임 필요성 ‘한목소리’
과거 정관 변경안 ‘부결’ 이력 눈길
[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사이에서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 의안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 최윤범 회장은 경영권을 두고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만큼 주주의 한 표가 간절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양측 분쟁의 단초가 됐던 지난해 정기 주주총회의 정관 변경 안건에 기관 주주가 반대표를 행사한 이력이 눈길을 끌고 있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 지분 약 13%는 기관과 외국인 주주에 분산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핵심 기관인 국민연금이 4.5%를 소유 중이다.
1대주주인 MBK-영풍은 40.97%, 2대주주 최 회장이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이 17.5%다. 여기에 한화(8%)와 LG(2%) 등 전략적 파트너를 합산하면 약 30%대로 예상된다. 주요 주주로 현대차(5%)도 있으나 현대차 소속 고려아연 이사의 경우 MBK 측과의 분쟁 이후 모든 이사회에 불참하면서 표심이 예상되지 않고 있다.
현재로선 기관과 외국인 주주가 행사할 약 13%의 향방에 시장 관심도가 높다. 오는 23일 열리는 임시 주총에 부의된 여러 안건 가운데 핵심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이다. 이는 최 회장의 가족 회사 유미개발이 제안했다. 일반적으로 소액주주의 권리 보호를 위한 장치지만 최 회장이 1대주주인 MBK-영풍 측의 이사회 장악을 막기 위해 고안한 묘책이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소수주주는 특정 이사 선임을 위해 의결권을 몰아줄 수 있다. 해당 정관 변경 안건에는 상법상 대주주의 의결권을 최대 3%로 제한하는 ‘3%룰’이 적용된다. 따라서 MBK 측은 자체 의결권으로 도입을 저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MBK 대비 주주권이 열세해도 집중투표제를 통해 이사회에서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최 회장 역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려면 기관 표심은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기관 표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의결권 자문사의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이사회 구성원의 다변화 필요성에 대체로 공감하지만 집중투표제의 실효성은 상반된 관점이 드러난다. 14일 기준 고려아연 임시 주총 의안에 대한 분석을 마친 곳은 글로벌 양대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 국내 메이저 3사에 꼽히는 서스틴베스트, 비교적 신생 업체인 한국ESG평가원 등이 있다.
이들 4곳 중 ISS만 유일하게 집중투표제에 반대를 권고하고 있다.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고 MBK-영풍이 추진하는 이사회 개편의 동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나섰다.
집중투표제의 경우 고려아연 이사회 안에서도 반대 목소리는 나왔다. 권순범 사외이사는 집중투표제 도입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법률 전문가인 권 이사는 반대 이유로 논란 가능성을 언급했다.
반면 글래스루이스, 서스틴베스트, 한국ESG평가원 등은 집중투표제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소수주주 권익보호가 기대되는 것은 물론 기존 경영인인 최 회장의 리더십도 양호하다고 평가한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장기화는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진다. 1대주주인 MBK-영풍 측이 이사회에서 주도권을 갖기 어려워지는 만큼 현재처럼 소송을 동원하는 식으로 분쟁이 외부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고려아연 정기 주총 당시 경영권 분쟁의 단초가 됐던 정관 변경 사례에 재차 주목하는 분위기다. 당시 최 회장은 신주 발행을 배정할 수 있는 대상을 확장하는 내용을 담은 정관 변경을 추진했으나 주총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특정 주주에만 유리할 수 있는 의안에 대해 기관이 반대 목소리를 낸 점이 주효했다.
고려아연은 신주 발행 대상을 ‘경영상 필요한 외국의 합작법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신기술의 도입, 재무구조의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특정한 자’로 바꾸길 원했다. 다만 이미 1대주주인 영풍 측의 동의 없이 한화, 현대차 등을 상대로 신주를 발행해 지배주주 지분 희석을 유도한다고 지적을 받던 만큼 논란의 소지가 있었다.
당시 해당 의안을 두고 국민연금은 찬성했으나 사학연금,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 등 다양한 기관이 반대표를 던졌다. 삼성자산운용의 경우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대부분 영풍그룹의 독특한 지배구조를 고려했을 때 기존 주주의 신주우선인수권을 약화시키고 일반주주의 이익과 무관하게 ‘경영권 보호’ 목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기주총 시즌 때 보유 종목별로 분석할 의안이 많을 때는 기관 주주 역시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라며 “다만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들은 자문사 권고안은 참고용으로 활용하고 자체적으로 의결권 방향성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