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주도 화폐 독과점 폐해 지적
‘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 표지.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우리의 금융 시스템과 화폐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다음 날이 미처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는 혁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1903년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를 설립한 헨리 포드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적인 부호가 된 그이지만, 현행 화폐 시스템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의 경제학자 필립 바구스와 금융 컨설턴트 안드레아스 마르크바르트의 신간 ‘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는 현대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화폐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한다. 누구나 부자가 되길 바라면서도 정작 부가 형성되고 이동하는 원리에 대해선 꿰뚫어보지 못하고, 실제로는 돈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하고, 물질주의에 집착하고, 사회적 결속이 약해지는 원인을 화폐 시스템에서 찾는다. 다른 독과점이 그렇듯 화폐 제도 역시 나라에 전적으로 맡긴 결과 여러 폐해가 생겨났다는 분석이다. 국가적 강압 없이 사람들의 자발적인 합의로 경쟁 과정을 거쳐 탄생한 교환 수단이 ‘좋은 화폐(양화)’라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는 국가의 주도 아래 만들어진 교환 수단이자 통화량을 국가가 자의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나쁜 화폐(악화)’라는 게 저자들의 지적이다. 국가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화폐 생산과 공급을 독점했고, 그 과정에서 정치인들과 은행은 특권을 누리게 됐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인 이슈였던 ‘인플레이션’은 ‘부풀리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inflare’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 통화량 확장을 가리키지만 현재는 물가 상승의 의미로 더 널리 사용된다. 국가가 통화량을 인위적으로 확장시킨 결과로 물가 상승이 필연적으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부의 재분배를 초래한다. 새로 만들어진 돈을 먼저 확보하는 사람은 아직 변하지 않은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어 큰 이익을 본다. 반면 뒤늦게 확보한 사람이나 아예 손에 넣을 수 없는 사람은 피해자가 된다. 그들이 추가 수입을 확보할 시점이 되면 재화와 서비스 가격은 이미 오른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최초로 새로운 돈을 손에 넣는 사람들은 국가와 은행, 기업 관련자들이고, 마지막으로 넣는 사람들은 봉급 생활자와 연급 수급자들이다. 저축해서 재산을 마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사회적인 신분 상승도 어려워진다. 결국 사회의 빈부 격차는 더욱 확대된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나쁜 화폐는 필연적으로 부채 경제를 초래했다. 대출 확대를 통해 작위적으로 발생한 호황기 동안 많은 사람이 외부에서 빌린 값싼 돈으로 투자 혹은 투기에 나선다. 하지만 머지않아 거품이 꺼지고 경제가 침체기로 돌아서면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갑작스런 빈곤에 직면하게 된다.
누군가는 끝없이 부를 축적하고, 누군가는 가난을 반복하는 현실 속에서 이 책은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은 당신 탓이 아니다”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열심히 일해도 돈에 허덕였다면 화폐의 본질부터 파악하는 것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필립 바구스·안드레아스 마르크바르트 지음·배진아 옮김/북모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