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면 그밤 ‘부당한 명령’에 복종했을까

인류사 비극사건 가해자 인터뷰·실험 통해

“명령에 따랐다는 책임회피성 변명” 지적

“복종의 심리적 기제 알아야 비극 예방” 역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5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관저에서 경찰병력이 2차 저지선을 넘어 진입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명령에 따랐을 뿐!? 에밀리 A. 캐스파 지음 이성민 옮김 동아시아

#1. “맞고 틀리고를 떠나 위기 상황에 군인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한다.” 계엄의 주요 지휘관이었던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선포할 당시 방첩사 활동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윗선에서 내려온 명령을 ‘맞나 틀리나’ 따지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2. “이 회의가 혹시 계엄과 관련한 회의입니까? 그렇다면 계엄과 관련한 불법적인 명령과 지시는 따를 수 없습니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소집한 회의가 계엄 관련임을 깨닫고 회의실을 박차고 나와 사표를 냈다. 그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출발 자체가 위법한 명령이라면, 그 뒷부분이 통상적인 공무원 업무라도 그것을 따르는 것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의 간수와 같은 입장이 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3. 윤 대통령이 체포된 지난 15일 새벽까지도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은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해야 한다고 직원들을 다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장급 이하 중간 간부들과 경호관 다수는 지휘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 경호관들 대부분은 관저 내 대기동에 머물거나 휴가를 쓰는 방식으로 소극적 항명을 했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였던 12·3 비상계엄의 중심에는 이처럼 부당한 명령에 대한 복종과 저항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간이 인간을 수천, 수백만 명씩 대량 학살하거나 국가적 폭력에 가담한 인류사 비극 속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변명, 즉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말이 여기서도 일부에서 되풀이됐다. 이는 서로 다른 국가, 대륙, 문화권에서 벌어지는 역사의 가장 어두운 장면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책임 회피성’ 진술이다.

복종하는 뇌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인지신경과학자인 에밀리 A. 캐스파는 신간 ‘명령에 따랐을 뿐!?’에서 인간이 명령에 복종할 때 뇌에서 벌어지는 근본적인 신경 메커니즘에 대한 규명을 시도한다. 2016년부터 관련 연구를 지속해 온 저자는 르완다와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 가해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여러 실험 연구를 검토한다.

놀랍게도 단순히 ‘나쁜 정부’의 명령을 따랐다는 주장은 실제로 저자가 인터뷰했을 때 가해자 대다수가 말한 흔한 변명이었다. 저자는 벨기에에서 온갖 실험 환경을 조성해도 3.66%에 불과한 친사회적 불복종 비율을 높일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저자는 실험 참가자의 65%가 명령에 따라 다른 이에게 전기 충격 강도를 최대치로 가하며 고통을 주는 밀그램 실험에서 더 나아간다. 그는 구슬이 충돌하지 않도록 키를 누르는 실험에서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참가자와 함께 있을 때 피드백 관련 뇌의 부정성(FRN) 진폭이 감소한 연구 결과에 주목했다.

이는 점수 손실과 같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 단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뇌의 처리 능력이 낮아지고 주체 의식까지 줄어든다는 의미다. 책임을 위계 사슬의 서로 다른 계층의 개인들에게 전가하면 책임감이 약화돼 타인에게 주는 고통을 공감하지 않기가 더 쉬워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복종하는 사람의 뇌에서는 이처럼 책임감을 비롯해 공감 능력, 죄책감 등 주체 의식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과 회로에서 활성화 정도가 모두 떨어졌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실험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때보다 명령을 따를 때 다른 이에게 전기 충격을 더 세게 가했고, 인종이나 문화, 종교, 정치적 차이에 따라 외집단의 구성원이라고 인식되면 관찰자의 신경적 공감 반응은 약해졌다.

흥미로운 지점은 누군가를 해치는 명령을 직접 한 사람보다 중간자 위치에 있는 이가 명령에 복종할 확률이 더 높았다는 점이다. 실험 참가자들이 직접 전기 충격 버튼을 누르지 않고 다른 참가자의 말에 따라 중간자 입장에서 스위치를 당기는 일만 할 경우, 더 잘 명령에 따랐다. 나치 친위대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1년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는 동안 “사실 나는 독일 제국의 지시를 수행하는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했다”고 주장한 맥락을 짚어주는 실험이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전쟁, 집단학살, 노예제도 같은 가장 끔찍한 일들은 불복종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복종 때문에 일어났다”는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말을 전하며 더 광범위한 학제 간 접근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집단학살을 저지르는 데 이바지하는 무의식적 신경 활동 같은 복잡한 역학을 이해해야 공감, 도덕적 용기, 독립적 사고를 촉진하는 개입 방안을 개발할 수 있어서다. 이는 여전히 무조건적인 명령과 복종이 당연시되는 오늘날의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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