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매체나 온라인 사이트 등에서 선정한 2024년 10대 뉴스 키워드를 보면 꼭 ‘하이브’ 혹은 ‘민희진’이 등장합니다.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하이브 간 다툼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파장이 컸고 현재도 진행 중이죠.
화목해보이기만 하던 회사가 한 순간에 서로 다툼을 벌이는 일은 비단 하이브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닙니다. 가족끼리도, 동업을 하던 친구끼리도 어느 순간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곤 하죠.
그런데 하이브 재무제표를 보다가 경쟁사인 JYP와 너무나 다른 점을 발견했습니다. 성장을 해온 것은 두 회사 모두 마찬가지인데 그 방법이 너무나 다른 것이죠.
그래서 이번 ‘투자뉴스 뒤풀이’에서는 기업이 성장을 하는 서로 다른 방법이 어떻게 사업보고서로 나타나는지, 그에 따른 장단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통해 관심 있는 기업이 어떤 성장 방식을 택했는지 알 수 있으며, 그 방법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도 가늠해 현명한 투자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보면, 하이브는 2023년말 기준 6.6%에 불과합니다. JYP는 30%에 달합니다. 순이익을 보면 하이브는 1835억원, JYP는 1055억원으로 하이브가 좀더 많습니다.
순이익이 하이브가 좀더 많은데 ROE가 크게 떨어지는 건 분모(Equity)가 하이브가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ROE = 순이익 / 자본)
재무상태표를 보면 전반적으로 하이브가 JYP보다 덩치가 큽니다. 하이브는 ‘조’ 단위이고 JYP는 ‘천억’ 단위입니다. 기업의 핵심인 자산(Asset)을 보면 10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지 보면, 무형자산 가운데 ‘영업권’이 확 다릅니다.
하이브 2023년 사업보고서 |
JYP 2023년 사업보고서 |
하이브의 영업권은 1조7000억원에 달합니다. JYP는 300억원 정도에 불과하죠. 전체 자산 대비 하이브는 32%, JYP는 5% 남짓에 불과합니다. 같은 업종에 속한 기업이 이렇게나 다를 수가 있을까, 참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럼 그 전에 ‘영업권’이 뭔지부터 살펴보고 가죠. ‘영업권’이라고 하니깐 뭔가 영업을 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 같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름 휴가철이면 계곡을 점령한 닭백숙 가게들이 ‘여긴 내가 영업권을 가지고 있다’는 거짓말로 바가지를 씌우던 것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장부상 영업권은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권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순전히 회계적 개념입니다.
영어로는 Good will입니다. 굳이 해석하면 ‘선의’(善意)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게 좀더 실제 영업권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기업 인수합병을 하면서 장부가보다 더 쳐준만큼이 바로 영업권입니다. 어떤 기업의 장부상 가치가 50억원인데 인수가 협상을 하다보니 100억원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러면 일종의 ‘웃돈’처럼 더 준 50억원이 인수합병 후 합쳐진 기업의 재무제표상 자산에 ‘영업권’으로 박히게 됩니다.
이 Good will이 어째서 우리 말로는 오해 받기 딱 좋은 ‘영업권’으로 번역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일본식 표현이 그대로 들어온 탓인 것 같습니다만, 정확히 아시는 분 계시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떤 기업이 자산에 영업권이 많다는 건 그만큼 인수합병을 많이 해서 회사를 키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대부분 영업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른 기업을 사와서 덩치를 키우기보단 내부적으로 성장시켜온 경우가 많습니다. 삼성전자의 전체 자산 가운데 영업권 비중은 1.4%에 불과합니다.
다시 하이브로 돌아가서, 하이브는 지난 2020년 상장을 앞두고 여러 레이블(음반 회사)을 잇달아 인수합니다. 상장심사에서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인 매출 안정성 때문입니다. 특정 매출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기업의 영속적인 성장에 의문이 붙기 마련입니다.
앞서 YG엔터 역시 상장 과정에서 아이돌그룹 빅뱅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싸이, 에픽하이 등 여러 가수를 대거 영입해 매출원을 다양화함으로써 이 같은 지적을 피했고, 성공적으로 상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몇 년 뒤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초대박을 치면서 YG엔터 주가가 치솟기도 했죠.
하이브 역시 BTS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는 게 약점이었습니다. YG엔터가 몇몇 연예인을 영입하며 이 문제를 피해간 것과 달리 하이브는 아예 회사들을 인수했습니다. 그룹 세븐틴이 속한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여자친구 소속사 쏘스뮤직 등을 인수하며 단숨에 매출원을 다양화했고 사세를 확장했습니다.
실제 하이브의 2020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2019년 187억원 가량이던 영업권은 1년 새 1462억원이 새로 생기면서 1649억원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기업 인수합병을 이어갔고 이에 따른 영업권도 계속 증가해 1조7000억원까지 늘어난 것입니다.
하이브 2023년 사업보고서. 논란이 된 어도어 영업권도 설정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하이브 2023년 사업보고서. 하이브는 여러 레이블을 동시에 거느리는 전략을 취한다고 명시해놨습니다. |
이처럼 인수합병을 왕성하게 하면 자연히 회사의 자산, 부채 규모가 커집니다. 단기간 빠르게 기업이 외형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JYP는 영업권에 별 변화가 없습니다. 영업권이 늘어난 이유를 보면 중국 등 해외 법인 인수에서 생겨난 것들로,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인수합병을 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JYP가 해외 진출을 할 때 철저히 현지화 전략을 택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반면 국내적으로는 외형 성장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과거 박진영 씨가 유튜브 채널 슈카월드에 출연해 언급한 내용을 보면, JYP가 어째서 이렇게 인수합병에 소극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슈카월드’ 갈무리 |
당시 그는 가장 중시하고 공을 들이는 것은 회사의 문화라고 강조했습니다. 인수합병이 회사의 재무적 결합이 아닌 문화적 융합이라고 보고 지양한 것입니다.
이런 두 회사의 성장 전략 차이가 재무상태표 상 자산, 부채의 규모 차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수합병을 통한 외형성장과 내부적인 자체 성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우수하냐, 바람직하냐고 단언할 순 없습니다. 어느 경영전략이든 장점과 단점은 있기 마련이고 결국은 실행의 문제입니다.
인수합병을 통한 외형성장의 경우 돈을 주고 사온 값어치를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영업권은 그 기업이 인수합병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제대로 했는지도 보여줍니다. 바로 ‘손상’으로 얼마를 처리해서 장부에서 털어내고 있는지 보면 됩니다.
영업권은 무형자산으로 분류되지만 여타 무형자산과 달리 상각을 하지 않습니다. 즉, 매출에 대응해 비용으로 털어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정해진 기한마다 감사인이 평가해서 손상 처리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돈 벌어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웃돈까지 줘가며 인수합병을 해놨는데, 딱히 매출에 도움이 안된다면 ‘맛이 갔다’고 판단하고 장부에서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손상 처리를 했다는 건 인수합병을 잘못한 것임을 기업이 인정한 것입니다.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어떻게든 영업권 손상을 막으려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업권을 손상 처리해버리면 그만큼 자산이 줄면서 각종 부채비율 같은 재무비율이 악화되는 것도 중요한 이유죠.
하지만 제때 손상을 하지 않고 영업권을 끌어안고 있으면 주가순자산비율(PBR) 같은 투자 관련 지표들은 매우 악화됩니다. 장부산 자산은 큰데 이익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넷마블이 대표적입니다. 넷마블의 PBR은 기준을 어떻게 놓고 보든 1배가 채 되지 않습니다. 무형자산이 3조 2000억원인데 영업권이 2조1000억원 넘게 쌓여 있다보니 그렇습니다. 전체 자산 가운데 영업권 비중이 27%를 넘습니다. 이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중요한 요인입니다.
(이에 대해선 ‘‘PBR 0.9배’ 저평가 한국증시…진짜 문제는 낮은 ROE [투자뉴스 뒤풀이]’ (2024년 1월 30일)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하이브는 넷마블처럼 극단적이진 않습니다. 12개월 선행 PBR은 2.8배에 달합니다.
다만 사업보고서를 보면 영업권 신규 취득 못지 않게 손상도 적지 않은 금액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활발히 인수합병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성과가 신통치 않아 장부에서 털어내 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하이브 간 분란은 왕성한 인수합병이 비(非)재무적 문제로 확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만큼 인수합병은 빠른 외형성장엔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하나가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문제라는 걸 보여줍니다.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연합] |
그렇다고 인수합병을 무조건 배격하고 내부 성장만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기업은 그 속도의 증감은 있지만 영원히 성장하는 걸 기본 전제로 합니다. 제자리에 머문 기업, 죽어가는 기업은 시장에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장을 가장 확실하게, 또 빠르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인수합병입니다. 자체 성장만 추구하다간 경쟁에서 뒤쳐지고 결국 도태될 수 있습니다. 적절한 인수합병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또 지나치게 자체 성장만 추구하다보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의 기업문화에 갇혀 자아성찰이 부족해지고 변화를 등안시하게 되는 것이죠.
지난해 12월 한 걸그룹 멤버의 탈퇴와 함께 JYP주가가 출렁인 것은 ‘JYP만의 문화’가 오히려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인수합병을 통한 성장의 모범 사례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빅테크들 대부분도 영업권이 별로 없습니다. 내부적으로 자체 성장에 주안점을 둔 것이죠.
MS는 조금 다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업보고서(10K) |
가장 최근 사업보고서를 보죠. 2024회계연도 영업권이 1192억달러에 달합니다. 전년(678억달러) 대비 76% 급증했습니다. 세계 최대 게임회사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했기 때문입니다. 한 방에 우리 돈으로 수십조원의 거금을 미래 먹을거리로 보고 쏟아 부은 것입니다.
이처럼 MS는 굵직굵직한 인수합병을 해왔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빌 게이츠 창업자가 떠난 뒤 MS는 한동안 침체에 빠져 있었습니다. 흔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죠.
하지만 2014년 사티아 나델라 현 CEO가 등판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클라우드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나델라 CEO는 이후 적극적으로 새 먹을거리를 찾아 인수합병을 하며 회사를 키웠습니다.
애플은 아이폰, 테슬라는 전기차. 이렇게 그 회사 이름을 대면 딱 떠오르는 핵심 사업이 있습니다. 그런데 MS 핵심 사업은 뭔가요?
과거처럼 윈도우 팔던 회사는 아닌 것 같고, 엑셀이나 워드 같은 프로그램 팔아서 한 해 매출이 2450억달러씩이나 나올리는 없죠. MS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하기로 하고, 거칠게 말하면, 현재와 미래 주목되는 사업 부문에 거의 다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14년 사티아 나델라 CEO 취임 이후 적극적으로 인수합병을 통해 회사를 성장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MS의 영업권은 급증합니다. |
이렇게 나델라 CEO의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한 사업부문 다각화 성장 전략 덕에 MS는 다시 시장의 주목을 받는 ‘매그니피센트7’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습니다.
물론 MS가 인수합병에서 늘 재미를 본 건 아닙니다. MS 사업보고서를 보면 113억달러, 우리 돈으로 16조4000억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누적 손상(impairment)으로 처리돼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MS에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2013년 인수한 노키아를 장부에서 털어낸 게 손상의 가장 큰 부분입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은 있으니까요.
마이크로소프트 사업보고서(10K) |
김우영 기자/CFA
#헤럴드경제 기자입니다.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 CFA Society Korea PA(Public Awareness) Committee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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