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당! 쾅쾅쾅!’ ‘도로위 암살자’ 이렇게나 무섭다 [세상&]

‘적당히 추울 때’일수록 조심해야하는 블랙아이스
출퇴근길 시민들 “바나나 껍질 밟은 듯 미끄러져”
식별 어려워 다른 사고보다 위험…치사율도 높아
기상청 ‘날씨해설’ 통보문·위험 기상 정보 활용해야


빙판길. [헤럴드DB]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연일 영하권의 추운 날씨로 형성된 ‘블랙아이스’로 출퇴근길에 오른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탓에 조심해도 넘어지는 시민들이 속출하고 수도권 곳곳에서는 다중 교통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16일 오전 8시30분께 직장인 안모(25) 씨는 횡단보도를 걷다 미끄러져 허벅지와 목 등을 다쳤다. 안씨는 “살짝 걸음을 보챈답시고 종종걸음으로 걸었는데 살얼음에 가속이 붙은 것 같다”라면서 “바나나 껍질을 밟은 것처럼 ‘꽈당’하고 제대로 넘어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겉으로는 길이 멀쩡해 보여서 이렇게 미끄러울 줄 몰랐다. 이정도 다친 게 다행인가 싶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에 사는 김한갑(61) 씨도 마트 가는 길에 엉덩방아를 찧었다고 했다. 김씨는 “나름 조심해서 살살 걸었는데도 넘어졌다”면서 “내 또래나 나보다 더 나이 많으신 분들은 뼈가 약해 (도로 살얼음을) 특히 더 주의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택배 및 배달업 종사자들 역시 혹시 모를 블랙아이스 사고에 노심초사 중이라고 말했다. 배달원 한모(39) 씨는 “배달 주문이 계속 들어와 마음이 급하긴 하지만 속도를 80km/h 이상 절대 내지 않으려고 한다”라면서 “대놓고 눈이 펑펑 올 때보다 요즘에 운전하기 더 위험하다”라고 했다. 그는 최근 미끄럼 방지를 위해 차량 타이어 접지면에 뿌리는 ‘스프레이 체인’을 구비해놓기도 했다.

아파트 단지 내 경비원들은 인도와 차도 곳곳에 염화나트륨을 뿌리느라 바빴다. 서울 종로구 교남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A씨는 “새벽부터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염화나트륨을) 뿌리고, 계단 쪽에는 미끄럼 방지 패드를 붙여놓았는데 그래도 넘어지거나 다치는 주민들이 있다”면서 “워낙 이 근처에 내리막길이 많고 눈·비도 내렸다가 멈추길 반복해 수시로 관리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지난 14일 오전 5시 15분께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자유로 구산IC 파주 방향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44대 연쇄 추돌 사고로 트럭과 버스, 승용차 등이 뒤엉켜 있다. [연합]


수도권 도심 곳곳에서도 빙판길 추돌사고가 잇달았다. 지난 14일 오전에는 경기 고양시 자유로와 서울문산고속도로에서만 총 3건, 105대 차량이 다중 추돌해 16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날 경기 남부지역 곳곳에서도 블랙아이스가 사고 원인으로 추정되는 교통사고가 이어졌다. 오전 6시 35분께는 안산시 상록구 편도 2차로 도로에서 7대 차량이 연쇄 추돌했으며, 오전 8시 5분께엔 화성시 오산동에서 편도 3차로 도로를 달리던 차량 10대가 결빙 구간을 만나 미끄러지며 추돌했다.

실제로 블랙아이스에 의한 사고는 다른 사고보다 훨씬 위험하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동안 도로 결빙으로 발생한 교통사고는 4609건이며 사상자는 7835명이다. 결빙으로 인한 교통사고 치사율은 사고 100건당 2.3명이다. 도로가 얼지 않았을 때 사고의 치사율(100건당 1.5명)보다 높다.

특히 한국교통연구원이 2015∼2019년 교통사고를 분석해본 결과, 블랙아이스 교통사고 사망자(170명)는 적설로 인한 사고 사망자(46명)보다 3.7배 많았다. 치사율도 블랙아이스 사고(3.3%)가 적설(1.6%)보다 높았다.

서울 아침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떨어진 지난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


‘적당히 추울 때’를 더 좋아하는 블랙아이스


매연과 먼지가 엉겨 붙어 검은색을 띠는 탓에 식별이 어려워 ‘도로 위 암살자’라고도 불리는 블랙아이스는 한파 때 뿐만이 아니라 최근처럼 ‘적당히 추울 때’도 많이 발생한다. 지상의 기온은 영상이지만 도로 등의 표면온도는 영하일 때 발생이 잦은 것이다.

적당히 추울 때 내리는 ‘어는 비’는 블랙아이스 발생의 원인으로 꼽힌다. 어는 비는 온도는 영하인데 물방울인 상태(과냉각상태)로 내리는 비다. 대기 중상층은 영하, 하층은 영상인 상황에서 지면과 가까운 ‘하층의 하층’에 얇게 영하인 층이 형성됐을 때 나타난다. 어는 비는 영하인 지면이나 물체에 닿으면 급속도로 얼어 물체를 코팅하듯 얇게 도로 살얼음을 형성한다.

블랙아이스를 눈으로 보고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비책은 도로에 살얼음이 끼었을 가능성이 있을 땐 차로 이동하는 것을 되도록 피하고 차 운행이 불가피하면 평소보다 속도를 낮추고 앞차와 간격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다. 블랙아이스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볼 때엔 기상청이 매일 오전과 오후 발표하는 ‘날씨해설’ 통보문을 살펴보면 된다.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별 결빙 구간 안내. [기상청 제공]


고속도로를 지날 땐 내비게이션을 켜고 주행하는 것도 살얼음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다. 기상청은 경부·중부내륙·서해안·호남·통영대전·중앙·영동선 등 7개 고속도로에 블랙아이스 발생 구간이 예상되면 티맵·카카오내비·아틀란 등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관심, 주의, 위험’ 3단계로 나눠 300m 전 경고하는 ‘도로 위험기상 정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도로 전광판(VMS)으로도 위험기상 정보가 안내된다. 기상청은 이를 위해 7개 고속도로 259개 지점에 구축된 도로기상관측망을 구축해 놓았다. 기상청은 올해 서산영덕, 무안광주·광주대구, 순천완주, 새만금포항, 호남선 지선 등 5개 고속도로에 추가로 도로기상관측망을 구축해 위험기상 정보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 2026년까지 31개 주요 고속도로 전체에 도로기상관측망 구축을 완료해 위험기상 정보 서비스를 확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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