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두고 기억으로 삶의 여정 회고
노르웨이 최고 권위 브라게문학상 수상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표지.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그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 하나도 빠짐없이.”
노르웨이 대표 작가 프로데 그뤼텐의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는 생의 마지막 언저리에 다다른 닐스 비크의 시선으로 쓰인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누구나 예외 없이 겪는 인생의 종착점인 죽음을 앞두고 기억을 통해 삶을 되돌아본다.
소설은 노르웨이 피오르 해안가의 작고 고요한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페리 운전수인 닐스 비크는 무수한 삶들을 배로 실어 나르며 일평생을 보냈다. 그는 생의 마지막 날에도 여느 때처럼 피오르를 항해하는데 이날의 승객들은 조금 특별하다. 한때 닐스의 배에 탄 적이 있는, 그러나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이들이 차례로 배에 올라타는 것이다.
죽은 자들은 닐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죽음에 관해, 실은 자신의 삶에 관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에 충실했던 그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배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마지막 날에 이르러 닐스가 되돌아보는 자신의 삶이란 결국 그를 스쳐 간 모든 삶의 총합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서로 긴밀하게 또는 느슨하게 연결된 채 살아온 이들이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맞이한 죽음을 담담한 문체로 서술한다. 하지만 죽음의 이야기들은 역설적으로 눈부시게 찬란한, 놀랄 만큼 아름다운 순간들로 차 있다. 하나의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한 사람이 살아낸 생애를 들여다보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닐스가 삶을 되돌아보는 일은 곧 아내 마르타를 기억하는 것이었다. 마르타는 얼마 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부로 함께 지낸 수십 년 동안 그들은 다투기도 하고, 관계의 위기를 맞은 적도 있지만 내 삶엔 이 사람이 필요하다는 확신과 상대방 또한 나와 같으리라는 믿음, 사랑만큼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
마르타가 떠나고 없는 지금, 닐스는 아내에 관한 거의 모든 기억을 하나하나 되새긴다. 매트리스에 남아 있던 고유의 몸 자국, 장난스러운 핀잔과 야한 농담들, 등 뒤에서 살며시 감싸안던 니트 재킷의 감촉. 그들의 사랑은 여느 오랜 사랑이 그렇듯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겹겹의 색을 지니게 됐다.
닐스가 일평생 타고 다닌 배의 이름은 다름 아닌 ‘마르타’였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닐스가 마침내 마르타와 재회하는 순간, 독자는 죽음 앞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한 생애가 가장 선명하게 남기는 흔적은 대개 사랑이기에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뤼텐은 이 작품으로 2023년 노르웨이 최고 권위의 브라게문학상을 두 번째로 수상했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저널리스트인 그는 그동안 시, 단편소설, 어린이책 등 다양한 작업을 해 왔지만 장편소설은 10여 년 만에 내놨는데, 출간하자마자 브라게문학상의 영예를 또 한 차례 안게 된 것이다.
브라게문학상은 이 소설에 대해 “작은 지역 공동체에 속한 평범한 이들에 대한 찬사. 아름답고 유려한 언어를 사용해 복잡다단한 삶의 초상화를 그려냈다”고 평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람과 바다와 땅, 미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 데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소설은 삶이란 결국 죽음을 향한 여정이고,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이냐의 문제는 곧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의 문제와 같다는 진실을 찬찬히, 아름답게 들려준다.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프로데 그뤼텐 지음·손화수 옮김/다산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