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8년만에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다시 마주하게 됐다. 1기 때보다 더 강한 ‘미국 우선주의’가 예상되는 만큼 바쁘게 외교채널을 가동해야 할 마당에 정상외교 공백은 뼈아프기만 하다. 당장 방위비 압박, 대북정책 변화 우려 등 한미동맹의 끈끈함과 한국 외교 역량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막강해진 MAGA, 美 협상우위 시도 이어진다=트럼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의 47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연방 의회 의사당 중앙홀에서 취임선서를 통해 “미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강력하고, 가장 존경받는 국가로 만들겠다”며 ‘미국우선주의’를 천명했다.
이미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국 견제에 대한 속도가 빨라지고, 보호무역주의를 한층 강화하는 등 대대적인 정책 변화룰 예고하고 있다. 1기 행정부 때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재현을 넘어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본능’을 드러내는 대표 사례는 방위비 증액이다. 선거 기간에도 미국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행 가이드라인인 2%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도 “부유하고 선진국인 나토 파트너들이 자국 국방 및 나토 파트너십에 더 기여를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유럽의 나토 회원국은 이에 대해 “복잡한 문제”라는 반응이다. 한국 또한 방위비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방위비 분담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카드까지 제시할 수 있는 우려마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재집권하면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할지 묻는 질의에 “한국이 우리를 제대로 대우하길 원한다”며 “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방어하는가. 우리는 아주 부유한 나라(한국)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시카고 경제클럽’ 주최 대담에서는 “내가 거기(백악관)에 있으면 한국은 방위비로 연간 100억달러를 지출할 것”이라며 한국을 ‘머니머신’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외교안보 문제를 철저히 비즈니스 관점에서 바라보는 만큼 이에 대한 협상 역량을 얼마나 잘 발휘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협상 전략으로 센 발언을 내보일 것”이라며 “미국의 반응을 보고 우리의 대응 방향도 정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 견제 속도-북미관계 압박…대행체제 한계 커질 듯=미국과 중국과의 긴장감도 한층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포함한 ‘관세전쟁’을 예고했다. 미국은 반도체 등 첨단 영역에서 중국 견제 조치를 발표하고 있고 중국도 이를 맞받아치는 중이다. 고래 싸움 와중에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는 얘기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방위비, 주한미군 문제 등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차원에서 한국의 전향적인 입장이나 행동을 요구할 때 거래대상으로 쓰일 수 있다”며 “필요한 부분에 대해 실리를 취하는 식의 접근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북미대화를 한국에 대한 압박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바이든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내세웠던 것과 달리 트럼프 2기 행정부 외교안보 분야 주요 인사들은 이에 대한 적극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북핵 협상’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 수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미국 신행정부 취임 전 몇몇 인사의 발언으로 향후 한미간 대북정책을 가늠하는 것은 무리”라며 “우리의 북한 비핵화 목표는 그대로다”고 강조했다.
다만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 달리 북한의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과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과의 담판 의지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의 대북정책 방향을 그대로 가져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대행체제 한계를 당분간 노출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였던 당시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두 차례 전화통화만 이뤄졌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최종적으로 한미관계의 이슈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대통령”이라며 “미국도 우리나라가 민감한 상황이고, 정세가 불안한 점을 고려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서정은·문혜현 기자
정상외교 공백, 한미동맹 시험대…방위비 증액-대북정책 의제 산적
G2 리턴매치…韓대행체제 한계 불가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