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 시중 은행장들 만나 “들으려 온 자리”
‘점령군·개선군 모습 안 돼’…조언 고려한 듯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더불어민주당-은행권 현장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헤럴드경제=박자연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자세를 낮추며 민생을 살피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쟁 요소 언급을 뒤로한 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생’을 앞세우고, 시중 은행 수장들을 만나서도 ‘가산금리’ 등 민감한 사안 대신 업계의 의견을 두루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맞닥뜨린 당 지지율 하락세와 “점령군 같이 보이면 안 된다”는 당 상임고문단 조언을 고려한 대처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시중 6대 은행장(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과 간담회 자리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여러분한테 강요해서 무엇을 얻어보거나 강제하기 위한 자리 아니다”라면서 “금융 기관들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충분히 들어보고, 활동하는 데 정치권이 어떤 도움 줄 수 있는지 들어보려는 자리이니 부담 갖지 마시라”고 말했다.
실제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민감한 주제 대신 은행이 국제 경쟁력을 갖기 위해 필요한 정책적 지원 위주로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가산금리 공개 등 은행법 개정 관련 주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며 ‘은행 압박설’에 선을 그었다.
당초 은행권에서는 이 대표가 가산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등 은행 수익 문제를 지적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대표가 횡재세 도입을 주장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11월 이 대표는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코로나19 사태와 경제 위기에서 이 위기 덕분에 특별한, 과도한 이익을 얻는 영역이 있다. 대표적으로 금융, 에너지 기업들”이라며 “횡재세는 다른 나라들도 다 도입한 제도이지만 우리도 반드시 도입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장들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대표가 가산금리 등을 이야기하며 은행들을 압박할 것으로 봤는데 예상과 다르게 대화가 전개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만남에서 ‘횡재세’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않은 이유는 이 대표가 처한 현재 상황과 맞물려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원내 1당의 대표이자, 유력 차기 대선 주자인 이 대표의 모든 발언과 행보 등이 당 지지율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두고도 정치권 일각에서 ‘벌써 대통령 행세를 한다’라는 식의 비판이 나왔던 것을 의식해 말을 아낀 결과로 풀이된다. 민주당 소속 국회 정무위원들 간 “은행을 압박하는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부 단속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내림세를 기록 중인 당 지지율 역시 이 대표가 낮은 자세를 보이는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지난 16~17일 전국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리얼미터의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처음으로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밖으로 뒤쳐졌다(응답률 7.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전날 상임고문단과 가진 오찬에서도 ‘최대한 겸손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조 수석대변인은 “상임고문단이 이 대표에 ‘국민께 최대한 겸손하게 가면 좋겠다, 점령군·개선군 같은 모습을 보이면 절대 안 된다’는 당부를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