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 천국’ 美도 국가전략산업은 지킨다”

호주, 중국계자본 리튬광산 인수 통제
핀란드, 법으로 국가보안기업 보호


<글싣는 순서>

① 사모펀드 ‘기업사냥’에 멍드는 기업들

② 장막 뒤 그들, 지배구조·의사결정 모두 베일 속

③‘사모 천국’ 美도 전략산업은 보호 기조 뚜렷


글로벌 사모펀드(PEF) 시장 규모가 매년 상승곡선을 그리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해외 거대 자본으로부터 국가전략산업을 보호하려는 움직임도 덩달아 빨라지고 있다.

21일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행정부는 그동안 투자은행(IB) 측면에서 주로 논의됐던 PEF에 대한 규제의 범위를 반독점과 고용, 기술 보호 등 산업정책 전반으로 넓혔다. PEF 시장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이례적인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해 8월 PEF가 일부 투자자에게만 특혜성 거래조건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PEF 규제안’을 의결했다. 새로운 규제안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분기마다 펀드의 성과와 수수료·비용·보수 등에 관한 내용을 투자자에게 제공하고, SEC가 자산평가 추정치를 점검할 수 있도록 매년 감사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다른 투자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혜성 거래조건’과 관련 이를 일부 투자자에게만 제공하는 행위를 막고, 공익에 반하거나 또는 고객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행위를 제한하도록 규정했다.

이번 조치는 PEF가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회사를 사들이고 인수 비용을 떠넘기며 파산하는 사례가 늘고, 이에 따른 대규모 실직 및 산업 내 경쟁 왜곡 등 부작용이 잇따르자 “투명성과 도덕성이 결여된 PEF를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을 수렴해 미 정부가 칼을 빼 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에는 PEF에 대한 규제 강화를 넘어 대형 금융자본이나 해외 자금으로부터 국가기간산업이나 첨단산업을 보호하는 각국의 움직임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호주 정부의 중국계 자본에 대한 제재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23년 호주 재무부는 자국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FIRB) 조언에 따라 오스트로이드 코퍼레이션(이하 오스트로이드)이라는 회사가 시도하고 있는 호주 리튬 광산업체 알리타 리소스에 대한 지분 인수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 등을 만드는 데 필수적 광물이다. 2019년 이후부터 리튬 가격이 폭락하면서 알리타의 경영이 악화해 법정 관리를 받게 됐고, 이에 오스트로이드는 호주 현지 자회사를 통해 알리타의 보유 지분(90.1%)을 추가로 인수해 지분 100%를 확보하려고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오스트로이드는 본사만 미국에 있을 뿐, 실소유주가 중국계 자본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현지에서 ‘해외 투기자본의 적대적 M&A(인수·합병) 찬반 논란’이 확산했고, 당시 여론도 “핵심 광물 회사인 알리타 리소스의 매각을 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이에 FIRB는 “국가안보 중대성을 고려해 지분 거래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재무부가 이를 수용해 알리타 리소스 매각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유럽 국가들도 산업자본이 외국계 투기자본 등 금융자본에 지배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제어 수단을 마련하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감독법’을 통해 외국인이 국가안보와 연관된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을 쉽게 인수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지난 2019년 ‘외환·대외무역법(FEFTA)’을 개정해 무기 제조, 금속 채광 등 자국 안보와 연관된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를 국외 자본이 인수 대상기업의 지분을 1% 이상 취득할 경우 정부 승인을 받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산업기술보호법과 국가첨단전략산업법 등 법안을 마련, 외국인이 국가핵심기술 또는 국감천단전략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기 위한 투자를 할 때 산업부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두 법안 모두 실질적으로 외국인이 지배하는 국내법인에 대해 ‘외국인’으로 포함한다는 명확한 내용이 없어, 외국인과 외국계 자본 등이 국내법인을 활용해 우회적으로 기술을 탈취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대형 PEF인 MBK 파트너스의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도가 국가첨단전략산업법·산업기술보호법령상 외국인 투자 범위에 해당하는 지 여부’에 대해 “경제 안보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기술보호 당국의 심판 필요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 ‘국내법에 의해 설립됐으나 외국인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법인’을 외국인의 범위에 명시적으로 추가해 열거하는 것과 같은 법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최근 지적했다.

경제계 고위 관계자는 “자국 이익 수호라는 관점에서 안보와 직결된 핵심 산업을 보호하는 주요국 행정부의 노력은 세계적 추세에 부합한다”며 “우리 당국도 적대적 M&A를 노리는 PEF를 위시한 금융자본의 무분별한 인수 추진 행태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방향으로 정책 역량을 한층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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