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아차산 장성’ 정체 밝히나…“조선 국영 말목장 가능성”

부분 확대한 보물 ‘목장지도’에 수록된 그림 ‘진헌마정색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백제의 성곽일 수도 있고, 조선시대 말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목장성일 수도 있다.’ 서울 광진구 아차산과 동대문구 배봉산 능선을 따라 길게 둘러쌓은 성 ‘아차산 장성’을 두고 지난 수십여 년간 여러 가설이 제기돼왔다. 그런데 그간 베일에 싸인 이 성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첫 단서가 나왔다.

서울어린이대공원 안에 있는 아차산 장성 구간에서 조선시대 사복시(司僕寺·임금이 타는 말을 관리하는 관청)에서 말을 키우기 위해 만든 토성, 즉 ‘살곶이 목장성’의 흔적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는 지난해 11월 4일부터 두 달가량 진행한 시굴조사에서 이같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22일 전했다.

서울 아차산 장성 어린이대공원 구간 성벽 조사 중 전경. [국가유산청]


서울 아차산 장성 어린이대공원 구간 성벽 조사 석렬. [국가유산청]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는 아차산 장성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지표조사를 벌였다. 이후 서울어린이대공원 내 아차산 장성으로 추정되는 성벽 두 곳에서 시굴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조선시대 지도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살곶이 목장성의 흔적을 확인했다.

이번에 발견된 살곶이 목장성은 조선시대에 국가가 운영한 말목장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 전국 목장 분포가 담긴 지도첩이자 보물인 ‘목장지도’에 따라 서울 동대문구, 중랑구, 성동구, 광진구 일대에서 살곶이 목장성이 운영됐던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다만 지도에는 목장의 경계 일부에 돌로 쌓은 성벽이 표시돼 있지만, 정확한 위치와 쌓는 방법에 대한 정보는 없다.

보물 ‘목장지도’에 수록된 그림 ‘진헌마정색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사복시 살곶이 목장지도, 서울시립대박물관 소장.


이번 조사에서는 높이 약 3m, 폭 11m의 성벽 일부가 확인됐다. 흙으로 쌓은 벽에 일부 돌을 덧대 만든 구조였다. 자연지형 따라 흙벽을 쌓은 뒤, 안쪽 방향에 돌벽을 한차례 이상 덧대 말이 달아나지 않도록 가뒀던 구조로 보인다. 이는 조선왕조실록(명종10년·1555년) 기록과도 일치한다. 실록에는 ‘비가 내리는 철이면 토성이 무너져 말이 도망하는 일이 발생해, 이를 막기 위해 한 면에 석성을 쌓았더니 말이 빠져나가는 일이 감소됐다’고 적혔다.

성벽의 기저부와 돌벽 부근에서 조선시대 도기와 자기 조각도 발견됐다. 이를 통해 성벽이 만들어진 시기를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번 조사는 일정 구역을 시범적으로 파보는 시굴조사였기 때문에 아차산 장성의 전체적인 성격과 면모를 모두 밝혀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살곶이 목장성과 서울 아차산 장성의 실체를 규명하는 첫 고고학적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울 아차산 장성 지표조사 현황도 및 시굴조사 대상지역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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