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어디까지 왔나 [넥스트 게임체인저]

K-배터리, 역대최고 R&D 투자로 사활
삼성SDI, 900Wh/L 양산 로드맵 공개
LG엔솔, 황화물계 중심으로 개발 속도
SK온, 2026년까지 파일럿 시제품 생산
中 CALB·日 토요타와 진검승부 예고


게임체인저(Game Changer). 시장의 흐름을 통째로 바꾸거나 판도를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기술, 제품, 인물, 기업, 서비스 등을 뜻하는 말입니다. 산업은 기술의 총화(總和)라고 합니다. 특히 시대가 흐를수록 ‘게임’을 ‘체인지’할 수 있는 미래 기술의 선점력이 그 기업, 그 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입니다. 헤럴드경제는 앞으로 우리 기업들이 전세계 산업 구도를 재편할 수 있는 ‘넥스트 게임체인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개발·상용화되기만 하면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기술들을 연속해서 소개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조 바이든 전임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를 본격 시사하며 ‘첨단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를 받는 국내 배터리 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침체기) 장기화로 인한 실적 악화, 중국 경쟁사들의 글로벌 점유율 증가 등 대내외적 악재들이 잇따라 불거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배터리 빅3(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주요 배터리 기업은 지난해 불황 속에서도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집행하며 차세대 배터리 개발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첨단 기술 개발 등 실력으로 거친 파고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미래 신기술 중에서도 가장 주목 받는 것은 ‘전고체 배터리’다. 꿈의 배터리로도 통하는 전고체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이온을 전달해 전류를 흐르게 하는 물질인 전해질을 기존의 액체가 아닌 고체로 바꾼 배터리를 말한다. 다만 액체 전해질보다 저항이 커 이온 전도도를 원하는 수준으로 높이기 쉽지 않아 기술 장벽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고체 전해질의 종류는 크게 황화물계, 산화물계, 고분자계로 나뉜다. 이들 모두 배터리 용량은 늘리면서도 무게·부피·화재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여 전기차의 안정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합리적 가격으로 양산에 성공할 경우 전기차·배터리 생태계에서 ‘넥스트 게임체인저’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국내 이차전지 기업 중에서는 삼성SDI가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3년 3월 업계 최초로 수원에 위치한 SDI연구소 내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S라인)을 구축하고, 같은 해 6월부터 시제품 생산을 시작한 삼성SDI는 2027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양산 공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 중 하나인 생산공법과 라인 투자 계획을 마무리하는 단계인 것으로 전해졌다. 양산 준비가 끝나면 전고체 배터리 샘플 생산 및 공급을 통해 고객들과 배터리 스펙을 조율하고 프로젝트 논의를 구체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에서는 삼성SDI가 이미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해 개최된 ‘인터배터리 2024’에서 업계 최고 에너지 밀도를 자랑하는 900Wh/L(와트시/리터) 용량의 전고체 배터리 양산 준비 로드맵을 공개했다. 독자적 기술을 통해 음극의 부피를 줄이는 등 에너지 밀도를 기존 각형 배터리 대비 약 40% 향상시켰다는 평가다. LG에너지솔루션은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를 중심으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황화물 기반의 고체 전해질은 유연성이 뛰어나 다양한 형태로 가공이 가능하고 하고 이온 전도도가 높아 낮은 온도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특징이 있다.

원료 확보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비용이 저렴하지만 기술 장벽은 그만큼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황화물은 공기 중 수분과 반응해 황화수소 가스를 발생시킨다. 이런 특성 때문에 제조·사용 과정에서 엄격한 건식 환경을 유지해야 하는데, 해당 공정 완성을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LG에너지솔루션에서는 2030년을 타깃으로 양산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며, 현재 양산을 위한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는 등 상용화를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SK온은 고분자·산화물 복합계와 황화물계 등 두 종류의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각각 2025년과 2026년에 파일럿 시제품을 생산하고 2028년과 2029년에 상용화 시제품을 생산하겠다는 목표다. 현재 대전 배터리연구원에 건설 중인 황화물계 차세대 배터리 파일럿 플랜트는 올해 하반기 완공을 예정에 두고 있다.

최근 국내 유수 대학 기관과 함께 진행한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과제의 결과물이 논문으로 작성돼 국제 학술지에 연이어 게재되기도 했다. 일부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국내외 특허 출원도 완료했다.

한편 중국과 일본 등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과의 무한 경쟁도 우리 업계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중국 정부는 글로벌 업계 1위 CATL를 포함해 주요 6개 기업이 참여하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 프로젝트에 최근 60억위안(약 1조2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전폭적 지원에 나섰다. 중국은 전고체로 가는 징검다리로 꼽히는 ‘반고체 배터리’ 기술에서도 경쟁사 대비 앞서 있다는 평가다. 중국 전기차 기업 니오 등이 반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을 이미 선보였다.

세계 5위권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LB 역시 지난해 중국 청두에서 열린 ‘2024 CALB 글로벌 에코 콘퍼런스’에서 전고체 배터리 샘플을 전격 공개했다. CALB는 2027년 전고체 파일럿 라인을 설치하고, 2028년 대량 양산 체제에 돌입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나서는 점도 주목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 중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시범 양산하고, 2030년 전후로 본격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글로벌 차량 판매 1위인 일본 토요타는 2027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고, 중국 상하이자동차(SAIC)는 2026년부터 독자적인 브랜드 자동차에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트럼프 변수’와 관련 배터리 업계는 전고체 배터리 등 기술 개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지난달 24일 컨퍼런스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사를 통해 밝힌 행정명령 구상이나 정책 방향성을 살펴보면, 미국 관세 정책 변화가 단기적으로는 전동화 속도를 늦추겠지만 배터리 사업의 미래 방향성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SNE리서치는 전 세계 전고체 배터리 시장 규모가 2030년 400억달러(약 58조7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캐즘) 시기는 실력 있는 곳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곳은 사라지는 때인 만큼 어려운 경영환경에서도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고 생존을 위해서는 꾸준한 R&D 비용 투자가 필수”라고 했다. 양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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