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당선되자 20년 만에 역주행했다…“다 꺼져버려!” 이 가수 누구길래?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그린데이, 2004년 ‘아메리칸 이디엇’(American Idiot) 발매

정권·미디어 정면 비판…역대 가장 많이 팔린 프로테스트 음반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저항의식과 연대감을 고무시켜 집회를 결속하는 역할을 하며 저항 가요로써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어떤 노래는 시대를 반영하고 때론 변화의 도구로 사용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 백 홈(1996)’이 가출 청소년을 귀가시켰듯, 5·18 민주화 운동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한국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의식과 연대감을 고무시켜 집회를 결속하는 역할을 했듯, 대중가요는 정치적 또는 사회적 문제 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곤 한다.

2024년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당선이 확정된 다음 날의 일이다.

빌보드 차트에 당시로부터 20년 전 발매된 노래 한 곡이 순위에 올라 큰 화제가 됐는데, 이 노래는 좀 더 과거인 2018년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하기로 예정됐던 날에도 갑작스레 영국 싱글 차트와 아마존 베스트 셀러 1위에 진입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트럼프 관련 거사가 생길 때마다 흘러나오는 ‘아메리칸 이디엇(American Idiot)’을 작사·작곡·편곡·연주한 그린데이(Green Day)의 빌리 조 암스트롱은 언젠가 공연 도중 이렇게 외친 적이 있다.

“트럼프, KKK, 파시즘에 빠진 미국, 전부 다 꺼져버려!”

그린데이는 2016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 시상식에서 공연 도중 “No Trump! No KKK! No fascist USA!”라는 구호를 외치며 트럼프와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 파시즘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 [그린데이 공식 인스타그램]

 

시작은 필연적인 ‘가짜 펑크 밴드’로

그린데이가 처음부터 정치적 성향을 가진 뮤지션은 아니었다. 1987년 결성돼 주로 청소년의 반항심을 다루는 가사와 함께 순수한 펑크 록을 연주하던 이들은 인디 활동을 거친 뒤 메이저 레이블로 이적한 후 ‘두키’(Dookie)라는 데뷔 앨범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199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혹시 말이야, 내가 칭얼대는 소리를 잠깐 좀 들어줄 수 있니?(Do you have a time to listen to me whin…)”라는 도입부로 시작하는 곡 ‘바스켓 케이스’(Basket Case)와 단순하게 반복되는 기타 리프가 인상적인 ‘내가 다시 돌아올 때’(When I Come Around) 등이 담긴 이 앨범은 1990년대 전 세계에 팝 펑크 붐을 일으키며 2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달성, 그해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얼터너티브 앨범’을 수상한다.

다만 뮤지션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성취를 이뤘음에도 이들에게는 다소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는데, 후술할 이유로 ‘성공한 펑크(Punk) 뮤지션’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 밖에 없는 ‘가짜 펑크 밴드’라는 낙인이 찍혀 10년 가까이 이같은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1970년대 당시 영국 노동 계급 청년들 사이에서는 경제 불황, 극심한 빈부격차와 정치적 혼란 등에 대한 불안 속 “미래가 없다(No Future)”는 좌절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이에 기존 체제에 저항하고 반항하는 이들의 반(反)주류, 반자본주의, 반정부, 반체제(Anti-Establishment)적인 움직임을 중심으로 펑크(Punk)라는 문화운동이 태어나게 된다. [게티이미지/Hulton Archive]

1970년대에 태동한 록의 하위 장르인 펑크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면 ‘펑크와 상업적 성공’은 필연적인 상치(相馳)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펑크라는 음악 장르는 레드 제플린(Led Zepellin)과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등을 필두로 당시 점점 복잡하고, 화려하고, ‘엘리트’스러워지는 주류 록 음악에 대한 비주류 음악인들의 반발심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펑크의 고향인 당시 영국과 미국에서는 경제 불황과 실업률 증가로 젊은이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는데, 특히 영국 노동 계급 청년들 사이에서는 오일 쇼크(1973)로 인한 경제적 타격, 극심한 빈부격차와 정치적 혼란 등에 대한 불안 속 “미래가 없다(No Future)”는 좌절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분노한 젊은 세대들은 이 같은 감정을 폭발시킬 창구가 필요했고, 기존 체제에 저항하고 반항하는 이들의 반(反)주류, 반자본주의, 반정부, 반체제(Anti-Establishment)적인 움직임을 중심으로 펑크(Punk)라는 문화운동이 태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성공한 펑크 뮤지션’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어느 펑크 뮤지션이 메이저 시장에 진출하고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돈을 벌어 주류가 돼야 하는데, 이 과정 속 뮤지션의 정체성이 펑크의 기본적인 가치들과 거의 모든 면에서 충돌하면서 근본적인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대성공을 거둔 그린데이였기에 비난은 더욱 심했다. 이들은 처음 활동했던 독립 펑크 씬의 중심지역으로부터 출입금지를 당하고, 공연장에서 야유를 듣기도 하며, 특히나 이들의 노래 가사와 메세지가 저항과 사회적 문제를 다루기보단 개인의 정신질환(우울증, 공황장애), 알코올 중독, 연애 문제 등이 주를 이루다 보니 음악팬들 사이에서는 “펑크의 정신조차도 계승하지 않았다”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2004년, 그린데이의 7번째 정규 앨범 ‘아메리칸 이디엇’(American Idiot)이 발매되면서 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음악적·사회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아메리칸 이디엇>은 대중음악과 정치성을 결합한 작품이 주류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음악이 사회적 메세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는 점에서 음악사적으로도 큰 중요성을 갖는다.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완성도 높은 펑크 록 오페라에 ‘목소리’를 담다…21세기 저항의 상징으로 재도약

‘아메리칸 이디엇’은 21세기 가장 위대한 앨범 중 하나(롤링 스톤·빌보드 선정)이자 이들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전 세계적으로 16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미국에서만 600만장이 팔리는 등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작품이 갖는 예술적, 사회적, 음악적 깊이와 영향력은 당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앨범은 정치적 메세지를 강렬하게 드러낸, 펑크 록과 오페라 형식을 결합한 일종의 콘셉트 앨범으로,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따라 트랙 순서대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즉 모든 트랙은 ‘하나의 이야기’로, 주인공인 ‘교외의 예수’(Jesus of Suburbia)라는 청년이 미국 사회의 위선과 정치적 불안 속에서 방황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애처롭게 보여준다.

각 트랙은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 개인적인 성장, 사랑과 실망,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다양한 스타일로 담았다.

앨범의 타이틀 곡이자 가장 상징적인 곡인 ‘아메리칸 이디엇’은 정부의 선전(프로파간다·Propaganda)과 미디어를 겨냥하며 맹목적인 애국주의를 추구하는 미국 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미디어에 의해 조종되는 하나의 국가(One nation controlled by the media), 난 멍청한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아(Don’t want to be an American idiot)”라는 직설적인 가사와 함께 빠른 템포와 강한 기타 리프로 진행되는 이 곡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내 확산된 극단적 애국주의와 반이슬람 정서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당시 美 주류 언론은 미국이 비판적 사고없이 전쟁을 수용하는 분위기를 조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보수 성향의 뉴스 네트워크인 폭스 뉴스는 물론 CNN과 뉴욕타임즈까지 가세해 CNN은 미군의 전쟁 성과를 강조하는 보도를 주로 하는 ‘임베디드 저널리즘(Embedded Journalism·언론이 군대나 정부기관, 특정 단체와 동행하며 취재하는 방식)’을 도입하는가 하면, 뉴욕타임즈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오보를 내기까지 한다.

앨범은 이어 ‘홀리데이’(Holiday)라는 곡을 통해 다시 한 번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정치인들을 신랄하게 조롱한다.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며 “가스맨(Gasman) 대통령에게 독일식 경례를!(‘Sieg Heil’ to the president Gasman!)” 이라며 정권의 폭력적인 탄압을 꼬집고 “내리는 빗소리를 들어봐, ‘종말의 날’ 불길처럼 쏟아져. 이름도 없이 죽어간 이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Hear the sound of the falling rain. Coming down like an Armageddon flame. The shame, the ones who died without a name)”라며 전쟁에서 희생되는 무명 용사들의 죽음을 통탄한다.

“미디어에 의해 조종되는 하나의 국가(One nation controlled by the media), 난 멍청한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아(Don’t want to be an American idiot)”라는 직설적인 가사와 함께 빠른 템포와 강한 기타 리프로 진행되는 ‘아메리칸 이디엇’은 2000년대 당시 미국 내 확산된 극단적 애국주의와 반이슬람 정서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그린데이 공식 인스타그램]

그린데이는 앨범을 통해 단순 정치 비판을 넘어 세대 간 갈등과 청년 세대의 분노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는데 ‘교외의 예수’라는 2000년대 미국 청년 세대를 상징하는 캐릭터를 통해 무기력한 삶과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교외의 예수’는 미국식 라이프스타일이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공허함을 낳고 있음을 보여주는 캐릭터로, 사회로부터 소외된 채 정체성을 찾으려 발버둥친다. 이 같은 광경은 전쟁과 정치적 분열 속에서 미국 젊은이들이 느꼈던 고립감과 좌절을 상징하며, 캐릭터 동명의 8분 짜리 곡 ‘교외의 예수’, ‘부서진 꿈의 거리’(Boulevard of Broken Dreams) 등을 통해 완벽에 가까운 짜임새 안에서 허무하고 공허한 감성으로 표현된다.

이어지는 트랙 ‘반역자’(She’s a Rebel), ‘지미 성인’(聖人·St.Jimmy)에서 주인공은 고통 속에서도 체제에 저항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결과적으로 거대한 시스템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개인의 한계를 느끼며 허망히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곡인 ‘기억할 수 없는 이름’(Whatsername)을 통해 청춘의 흔적과 상실감을 여운처럼 남기지만, 주인공은 저항과 반항의 순간들을 잊지 않겠다고 곱씹으며 서사는 막을 내린다.

“And in the darkest night, If my memory serves me right, I‘ll never turn back time Forgetting you, but not the time” (그리고 칠흑같은 밤 만약 내 기억이 맞다면… 난 절대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이름을 잊을지언정, 그 시간들은 잊지 않을 거야) - 그린데이, ‘기억할 수 없는 이름’(Whatsername) -

‘아메리칸 이디엇’은 그린데이라는 밴드의 펑크적 아이덴티티 각성, 완성도 높은 트랙들,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가진 컨셉트 앨범의 탄생이라는 가치 이상으로 음악사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대중음악과 정치성을 결합한 작품이 주류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음악이 사회적 메세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 ‘아메리칸 이디엇’은, 단순한 대중음악을 넘어 2000년대 미국 사회를 대변하는 역사적 기록이자 현대에도 유효한 저항의 상징인 것이다.

대중음악과 ‘목소리’

일부 평론가들은 ‘아메리칸 이디엇’의 대중적 성공이 2004년 미국 대선(부시 vs. 케리) 당시 반(反)부시 캠페인 ‘부시에 저항하며(Rock Against Bush)’와 연결돼 젊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각성을 유도했으며 젊은 세대의 연대를 조성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실제 당시 미국의 18~29세 유권자 투표율은 49%를 기록하며 이전 대선 대비 10% 가까이 증가했다.

반(反)부시 캠페인 ‘부시에 저항하며(Rock Against Bust’ 포스터. [visiblevibrations 홈페이지 캡처]

평론가들은 대중음악이 엔터테인먼트 산업 중심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각종 디지털 콘텐츠가 넘쳐나면서 음악이 사회적 메세지를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뮤지션들이 정치적·사회적 논쟁을 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중음악은 사회의 거울 역할을 하며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새로운 세대에게 역사와 현실을 알리기도 하며, 때로는 침묵하지 않는 환경을 형성해 자연스러운 연대를 조성하는 효율적이고 가치있는 소비재이자 문화로써.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시대를 대변하는 목소리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 시민들은 새로운 집회 대표 노래가 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부르고 응원봉을 흔들며 춤을 췄다. 이 떼창은 탄핵으로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의 직무를 정지시키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을 자축하는 노래가 됐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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