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산문·편지 엄선한 ‘프루스트의 문장들’
예술 본질 고찰…인간 내면세계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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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rf]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밝혀진 삶, 결과적으로 충만하게 살아진 유일한 삶은 바로 문학이다.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벗어나 타인이 보는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고, 달의 정경만큼 알려지지 않은 풍경을 볼 수 있다.”
20세기 문학의 초석을 닦은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문학과 예술의 본질을 고찰하며 인간의 내면세계를 해부했다. 독창적인 문체로 장대한 서사를 펼친 이 작품은 문학을 넘어 철학, 심리학, 대중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쳐 왔지만, 방대한 분량 때문에 완독이 어려운 책으로도 유명하다.
번역가 최미경이 옮기고 엮은 ‘프루스트의 문장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비롯해 프루스트의 소설과 산문, 비평, 편지 등에서 엄선한 문장들을 담은 책이다. ▷문학과 예술 ▷사랑하는 대상 ▷인간의 내면 ▷동시대 시민 ▷감정과 정념 ▷자연과 묘사 등의 주제별로 묶인 문장들은 독자가 프루스트의 세계로 좀 더 쉽게 진입하도록 돕는다.
1871년 프랑스 파리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프루스트는 자연스럽게 상류층 문화를 익혀 문학과 예술,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아버지의 권유로 파리대학교 법학과와 파리정치대학에서 공부했지만, 이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1895년 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글을 쓰기로 한다.
그는 예술이 인간의 경험을 기록하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기억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또한 문학은 삶의 본질과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탐구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여겼다. 문학은 “인류의 언어로, 국경과 시대를 넘어 소통하게 해”주며 예술 작품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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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의 소명 의식이 강했던 프루스트는 글쓰기에 타고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고민을 멈추지 않고 몰두했다. “작가는 공세를 퍼붓듯 끊임없이 힘을 모으고, 피로감을 견디고, 규칙처럼 수용하고, 교회처럼 구축하고, 체제처럼 따르고, 장애물처럼 극복하고, 우정처럼 성취하고, 아이에게처럼 과한 영양분을 제공하고, 다른 세계에서만 설명이 가능하며 삶과 예술에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신비감을 빼놓지 않고 세심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선생이 지나치다고 말할 정도로 낭만적이고 극적인 풍경 묘사는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시각과 예술적인 문장을 쓰겠다는 욕망, 사소한 것도 쉽게 지나치지 않는 끈기의 산물이다.
그는 문학과 예술의 열렬한 예찬자인 동시에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는 남자였다. 그러면서 동시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시민이기도 했다.
프루스트는 작품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관여했다. 상류 사회의 위선과 허영,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19세기 귀족들의 쇠락, 드레퓌스 사건 같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아울러 단순히 사회의 모순을 폭로하고 공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성찰과 사회의 책임을 촉구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특히 1894년 프랑스 육군의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가 스파이 혐의로 부당하게 기소된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서는 ‘정치적·사회적 불의의 상징이자 반(反) 유대주의에 대한 명확한 증거’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했다.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뿐만 아니라 작품 안에서도 해당 사건을 비롯한 당시 프랑스 사회의 분열과 갈등, 개인의 정체성과 도덕적 선택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탈진한 드레퓌스에게 다시 용기를 내어 소송하라고 요청하는 판사들이라니, 프랑스 군대와 프랑스에 정말 불행한 일이에요. 어쩌면 이미 완전히 훼손된 정신력을 동원해야 하는 노력이 드레퓌스를 지탱해줄 거예요. 이제 종결되어 가고 있으니까요. 사회적 인정을 되찾았고 신체적 자유를 돌려받았으니 더 나아지는 일만 남았어요.”(‘프루스트 서한집’)
병약한 몸으로 세밀한 인간사의 모든 것을 탐구하다 지친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완간을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동시대 세태를 다각도로 관찰해 삶을 번역해 내고자 했던 그의 문장들은 여전히 반짝이며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울림을 준다.
프루스트의 문장들/마르셀 프루스트 글·최미경 번역·엮음/마음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