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조사부터” 트럼프, 구리에 바로 보편관세 안 때린 이유

미국 구리 수요를 가장 많이 충당하는 칠레의 한 구리 제련 공장. [로이터]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국의 구리 수입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조사를 실시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서명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에 “큰 영향(big impact)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외국산 수입 제품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이다.

이 경우 미국 대통령에게 조사를 지시하고 관세를 부과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권한이 주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인 2018년 수입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에 앞서 상무부에 수입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조사는 곧 관세 부과를 위한 사전정지 작업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를 맞아 오는 3월 12일부터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예외 없이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어 이번에 구리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구리 수요가 많은 전기차와 인공지능(AI) 등 차세대 산업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과거에는 하지 않았던 구리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를 염두에 둔 조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 서명식을 가진 뒤 ‘트럼프는 모든 면에서 옳다’는 문구가 인쇄된 모자를 취재진에게 들어보이고 있다. [AFP]

일단 트럼프 2기 관세 전쟁의 범위가 더 확대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이날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미국의 구리 산업도 철강·알루미늄과 마찬가지로 국내 생산을 공격하는 글로벌 행위자들에 의해 파괴됐다”며 “우리의 구리 산업을 재건하기 위한 관세 부과의 가능성을 놓고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은 미국의 국방 분야와 민간 산업 분야에서 구리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다고 강조한 뒤 “그것은 미국에서 만들어져야 하며, 면제와 예외가 있을 수 없다”면서 “구리를 미국으로 돌아오게 할 때”라고 강조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구리 96억 달러 상당을 수입했고, 113억 달러 상당을 수출했다.

구리에 의해 무역적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국가 안보 차원에서 중요성이 커져 채굴에서 정련까지 일련의 제조시설을 국내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미국이 구리 무역 보호 조치 이유 제시할 수 있어야”

미 고위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미국 내 수요에 비해 구리 공급이 향후 부족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구리 분야의 장기적인 무역 보호 조치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구리 용광로와 제련 능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구리 품목에 대해 새롭게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근거와 명분을 갖추기 위해 조사에 착수한다는 얘기다.

2023년 기준 세계 구리 수출국(정련동 기준) 순위는 칠레가 1위, 페루가 2위, 인도네시아가 3위이며 미국은 10위, 한국은 13위였다.

미국에서 쓰는 구리의 최대 공급자는 칠레로, 미국 수입량의 35% 안팎을 공급하고 캐나다가 25% 수준으로 2위였다.

로이터 통신은 구리에 대한 관세가 최종적으로 도입되면 정련동과 구리 제품의 최대 대미 수출국인 칠레, 캐나다, 멕시코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이번 구리 조사로 중국에 대한 대응도 강화하고 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은 “철강과 알루미늄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세계 구리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초과생산과 덤핑을 하고 있다”며 저가로 세계 각국에 흘러 들어가는 중국산을 중요한 타깃으로 삼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국도 구리 관세 도입에 영향…미국 내 구리 가격 급등

한국도 미국의 구리 관세가 도입되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K-STAT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구리 제품 5억7000만 달러 상당을 미국에 수출했고, 미국으로부터 4억2000만 달러 상당을 수입했다.

다만 동광(구리가 든 광석)의 경우 지난해 대미 수출은 없었고,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8000달러 상당으로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구리 품목에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하자 미국 내 구리 가격이 급등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구리 선물은 전 거래일 대비 2.4% 올랐다.

하루 상승 폭으로는 지난 12일 이후 최대다.

구리 광산업체들의 주가도 동반 상승했다.

뉴욕 주식시장에 상장된 글로벌 광산기업 프리포트-맥모란은 장 마감 때까지 보합세를 보이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구리 조사’ 지시 이후 시간 외 거래에서 6% 넘게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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