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17’봉준호의 세상바라보기…‘설국열차’‘기생충’처럼 가혹하지만 이전보다 긍정적[서병기 연예톡톡]

미키17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상황설정이 흥미롭다. 그 속에서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무섭게 던지기도 한다.

‘설국열차’는 빈민굴 같은 맨 뒤쪽의 꼬리칸 사람들이 호화로운 객실을 뒹굴고 있는 앞쪽칸을 향해 질주하지만, 결국 기차는 폭파된다. 그래서 “앞칸으로 가면 뭐하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기생충’은 빈부격차가 잘 드러나는 사회적 계층, 소위 계급화된 반지하(기생충), 지하, 지상맨션(숙주)라는 시스템속에서 슬프게 주저앉는 반지하 가족 기우(최우식)의 모습을 통해 계급 상승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린다.

게다가 반지하 가족 가장인 기택(송강호)은 지상맨션의 주인인 박사장(이선균)을 죽인다. 기생충이 숙주를 죽이면 자신도 살지 못한다는 섬찟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28일 국내 개봉한 ‘미키17’는 ‘설국열차’ 못지 않게 가혹한 상황이지만 주인공이 죽음이나 파괴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금은 희망적이다. 결국 나샤(나오미 애키)는 좋은 정치인이 된다.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렸다. 로버트 패틴슨(미키 반즈)을 포함해 나오미 애키(나샤 배릿지), 스티븐 연(티모), 토니 콜렛(일파 마샬)과 마크 러팔로(케네스 마샬) 등 스타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들이 출연했다.

-SF 장르를 좋아하시는 듯하다

▶괴물, 설국열차, 옥자에 이어 4번째 SF 장르다. 제 필모의 절반이다. ‘미키17’은 SF의 탈을 썼지만 SF 같지 않다. 결국 땀내 나는 인간의 세계로 돌아온다. 인간 냄새 나는 싸이파이(sci-fi)다. 시대도 원작보다 조금 더 가까운 미래로 설정했다.

-에드워드 애슈턴의 SF 소설 ‘미키7’을 각색한 영화인데

▶원작 세계관은 방대하다. 저도 원작을 보고 애먹었다. 저는 인간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계속 재출력됐을 때의 정체성, 휴먼 프린팅에 집중했다. 로버트 패트슨을 계속 출력하고 싶었다. 그러면 찌질하고 불쌍한 이 친구가 어떻게 살아남을까? 구체적인 미키라는 친구에 대해 알아보자는 게 원작과의 큰 차이점이다.

봉준호 감독

-원작과 캐릭터도 많이 바뀌었나?

▶원작보다 조금 근미래로 설정했고, 인물도 더 현실적이다. 스티브 연(티모)은 원작에서 SF적인 인물인데, 여기서는 비루하고, 구질구질하며, 약삭 빠르다. 미키는 역사학자로 나오는데 둘이 고아원 출신이라는 대사를 통해, 훨씬 힘든 시간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토니 콜렛이 연기하는 일파 마샬 캐릭터는 원래 없었는데 만들었다. 독재자 커플은 무서우면서도 재밌다. 필리핀 마르코스-이멜다, 루마니아 차우세스코와 엘레나처럼. 여기서도 부부의 시너지를 만들었다.

-인물들이 바뀌었고, 얼음 행성의 토착 생명체 ‘크리퍼’도 중요한 것 같다.

▶크리퍼는 원작에서 지네 같다고 묘사돼 있다. 저는 무섭고 혐오스럽고 마마 크리퍼가 뿜어내는 위험한 것도 만들었다. 심지어 주인공과 대화도 한다.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옥자’와 ‘괴물’을 디자인한 분께 크로와상 빵을 주고 만들어달라고 했다. 이 말을 프랑스 사람들에게 했더니 믿지 않더라.

크로와상을 자세히 보면 생물체 같다. 아코디언처럼 기어갈 것 같다. 굴리면 굴러갈 것 같다. 크리퍼 집단이 소용돌이 치는 건 동물다큐에서 순록들이 가운데 새끼를 두고 도는 걸 찍은 것이다.

‘미키17’이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인간 사회의 조직문제, 불합리와 갈등, 리더십 등에 대한 ‘메타포’가 자주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런 이야기를 봉 감독에게도 해봤다.

▶시나리오를 2021년 9월에 다 썼다. 컬러를 맞추고 추가수정을 위해 영화 전체를 봤는데, 미국의 대규모 총기사건 한달후여서, 영화속 특정 신이 다르게 느껴졌다. 베를린 기자회견에서는 ‘봉 감독 방안에 서양 포춘텔러들이 사용하는 크리스탈 볼이 있느냐?’라고 묻더라. 과거를 충실히 쓰다보면 역사가 반복되니까, 현재는 미래 모습이라고 생각하게된다. 우리는 과거 이야기를 했다.

-데뷔 이래 최초로 악역을 연기했다는 명배우 마크 러팔로가 하는 케네스 마샬 캐릭터를 보고 누구를 떠올리지 않나. 극중에는 마샬 지지파와 반대파도 나오던데..

▶시나리오는 2021년에 썼다. 이번에 해외에서도 독재적 캐릭터가 현시국을 떠올리는 것이냐며 자국의 과거 독재자가 연상되기도 한다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무솔리니, 미국에서는 요즘 맹활약하시는 그 분. 자국 정치 스트레스를 투사하는 것 같다. 정작 마크 러팔로와 논의 하면서 마샬이 모델로 삼으려고 했던 정치인은 모두 다 과거 정치인 안에 있었다. 그만큼 마르 러팔로님이 연기를 잘해준 것이다. 나쁜 정치, 우스꽝스러운 정치, 독재자가 매력이 있다. 그게 무서운 건데, 그것 때문에 끌려간다. 영화속 악인도 매력이 있어야 한다.

-‘미키’에 대한 이야기도 해달라

▶계속 죽는 직업이다. 산업재해전문. 아무런 보상도 안해주고 계속 죽는다. 사람들이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얼음행성의 토착생명체 ‘크리퍼’와는 정반대다. 거기는 애(베이비 크리퍼) 하나 구하려고 몇십만마리가 다 모인다. 명백한 콘트라스트다. 우리도 지하철 스크린도어 등 위험한 곳에서 누가 일을 계속 하고 있을 것이다. 현실 사회에서도 위험한 일에 계속 새로운 사람이 투입된다. 그게 무섭고 서글픈 일인데. SF 콘셉으로 포장돼 있지만, 사실은 실제 사는 현실에 맞닿아있다.

-‘혐오’라는 문제도 깔려있는 듯하다.

▶마크 러팔로와 그의 아내는 독설을 뿜어낸다. 마샬은 ‘크리퍼’ 못지 않게 ‘미키’를 쓰레기 취급한다. 자기가 계획해놓고 무시하고 경멸한다. 미키가 크리퍼를 돕는다. 크리퍼는 미키를 구해줬고. 이런 인식 전환의 통찰을 준 캐릭터는 나샤다. 이렇게 도와서 혐오를 극복하자는 것, 크리퍼와 미키는 다 살았다.

-작품에 사랑 이야기를 잘 안하는데 이번에는 멜로도 중요한 것 같다. 미키(로버트 패틴슨)와 나샤(나오미 애키)의 훌륭한 사랑 이야기가 심어져 있다

▶원작소설에도 감동적이다. 나샤가 없으면 미키도 존재할 수 없다. 나샤를 통해 우리도 위로받는다. 그래서 잘 찍고싶었다. 나오미 애키가 연기를 잘했다. 휘트니 휴스턴 전기영화에 나온 분이다. 실제 노래도 하고. 그 목소리로 독재자에게 샤우팅할 때 나도 감짝 놀랐다. 엄청난 에너지다. 해외 시사할 때는 그 장면에서 박수를 치더라. 베를린 시사 때도 그랬다. 억눌리고 막힌 걸 시원하게 뚫어주는 나샤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듯하다. 거기에 맞는 테마음악을 만들어달라고 정재일 감독께 부탁했다. SF보다 둘의 사랑을 찍었다.

-자막은?

▶한글자막은 내가 했다. 샤론 최 등 4명이 앉아 있다. 영화 전체 장면을 다 보며 감수했다. 처음 쓴 한글 대사를 보니 기분이 묘하더라. 요즘 말도 쓰려고 했고. 자막 감수 인건비를 따로 받지는 않았다.

-‘기생충’ 이후 부담감은?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50세때 수상했다.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작업방식이나, 생활방식이 바뀐 게 없고 하던대로 한 게 ‘미키17’이다.

타란티노 감독이 ‘펄프 픽션’으로 상을 31살 때 받아 좋기도 하면서 힘들기도 했다고 했다. 개봉시기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할리우드 배우 파업으로 홍보도 못한다고 했다. 2023년말에 모든 작업이 끝난 상태였다. 그 외에는 평소 하던대로 했다.

-이번에도 흥행 성공할 것 같은가

▶나는 관객들이 2시간동안 핸드폰을 못보게 하는 게 목표다.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도 그렇다. 영화관 맨 뒤에서 볼 때 누가 핸드폰을 보는지 체크한다. 그게 첫 번째다. 메시지는 두 번째다.

장르적인 영화적 흥분 통해 관객들을 끌고가고싶다. 집에 돌아와서 영화의 몇 장면이 아른거리거나, 내 신세랑 비슷하다거나 이렇게 되면 좋겠다. 하지만 극장에서는 2시간동안 재밌었으면 한다.

-제작비 규모는?

▶순제작비가 기사마다 다르더라. 1억1800만불을 썼다. 옥자(650억원)의 두 배 가 넘는다. 마블의 어벤저스 영화는 2억~3억불을 쓴다. 그러니까 ‘미키17’은 중대형 영화다. 정교하게 찍어나가는 방식인데, 순탄하게 잘 끝났다. 우주선 세트와 런던 시내 구석에서도 찍고. 돌발 상황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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