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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미국 미네소타주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 촌장인 다프나 주르 스탠퍼드대 한국문학과 부교수, ‘숲속의 호수’ 설립자인 로스 킹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한국문학·한국어학과 교수, 크리스틴 슐츠 콘코디아 언어마을 명예이사장이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숲속의 호수(Sup sogi Hosu)’.
64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미네소타주 콘코디아 언어마을의 15개 마을 가운데 하나인 한국어 마을 이름이다. 1999년에 설립돼 26년간 운영된 이곳에는 해마다 “하루 종일 한국말만 하겠다”고 말하는 북미권 아이들이 주로 모여든다.
오는 6월 말에 시작하는 올해 여름캠프 프로그램도 미국 전역에서 온 참가자들로 인해 이달 중순에 벌써 정원이 다 찼다. 대기자 명단이 만들어지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굉장히 몰입해서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함께 먹고, 살면서, 24시간 내내 한국어를 보고 듣고 말하는 거죠. 이런 환경은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숲속의 호수 설립자인 로스 킹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한국문학·한국어학과 교수는 지난 21일 헤럴드경제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숲속의 호수가 한국어를 배우는 ‘학교’가 아니라 자연을 벗 삼아 언어와 문화를 깊이 체험하면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특별한 ‘마을’인 이유다. 그래서 이곳에선 학교를 비롯해 학생, 수업, 기숙사와 같은 단어를 쓰지 않는다.
이날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킹 교수와 숲속의 호수 2대 촌장을 맡고 있는 다프나 주르(한국명: 주다희) 스탠포드대 한국문학과 부교수, 크리스틴 슐츠 콘코디아 언어마을 명예이사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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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주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 전경. [콘코디아 언어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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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주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에서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서예를 하는 모습. [콘코디아 언어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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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주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에서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태권도를 하는 모습. [콘코디아 언어마을] |
중학생 때 우연히 태권도를 접하면서 처음으로 한국어를 익히게 된 주르 교수는 ‘관심사’를 기반으로 언어를 깨우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책으로 배운 언어가 아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언어가 진정한 ‘나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그도 “청소년 시절에는 태권도를 배우면서 앞차기를 발음하기 위해 ‘차기’를 ‘치킨(chicken)’으로 연상하며 한국어를 익숙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갔다”고 웃으며 전했다.
이를 보여주듯, 한국어에 대한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숲속의 호수가 추구하는 핵심 철학이다.
그는 “내가 정말 알아듣길 원하고 말하고 싶어서 언어에 관심을 가지면 어느 순간 귀와 입이 트인다”며 “굉장히 내성적인데 이곳에서 한국어를 접하면서 ‘내 목소리(my voice)를 찾게 됐다’고 말한 아이도 만났다. 정말 감동이었다”고 전했다.
이에 킹 교수는 “13세 이상 청소년을 위한 4주 프로그램의 경우, 거주하며 놀이하고 배우는 시간이 180시간에 해당한다”며 “고등학교 1년 과정을 이수한 것과 같은 효과”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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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미국 미네소타주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 촌장인 다프나 주르 스탠퍼드대 한국문학과 부교수, ‘숲속의 호수’ 설립자인 로스 킹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한국문학·한국어학과 교수, 크리스틴 슐츠 콘코디아 언어마을 명예이사장이 21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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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주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에서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한국 음식을 먹는 모습. [콘코디아 언어마을] |
숲속의 호수는 K-12학년(한국 유치원부터 고교 3학년)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 말고도 K팝 댄스, 미술, 태권도, 서예, 해금 연주, 전통 놀이 등 한국 문화 활동을 경험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한류 열풍을 반영하듯 K팝 댄스가 굉장히 인기가 높다.
주르 교수는 “이 모든 활동을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건 전 세계에서 온 우리 스태프들”이라며 “미술, 공예, 춤, 노래 등 특별한 재능을 나눌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문 비보이 댄서가 온 적도 있다”고 전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아이들이 몰려드는데도 숲속의 호수는 오랜 기간 어려움을 겪어왔다. 설립 이후 3000명이 족히 넘는 학생들이 이곳을 거쳐갔지만, 인근에 있는 러시아 마을의 건물을 빌려 ‘셋방살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8년 박은관 시몬느 회장이 사재 500만 달러(약 55억 원)를 기부하면서 확 달라졌다. 지난해 7월, 마침내 숙소 두 동과 강당 겸 식당, 사무실을 갖춘 건물이 완성되면서다. 한옥 미학이 드러난 건축물로 설계는 유병안 건축가가 맡았다.
다만 슐츠 명예이사장은 “전체 목표에 비해 현재까지 약 40% 정도만 완공된 상태”라며 “지금은 한 번에 54명만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전부라, 여전히 더 많은 숙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