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에듀웰센터에서 열린 ‘학생·교사·교육감이 함께하는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에서 참가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토론에서 합의문 과정보다 찬성과 반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고 합의점을 찾아가니 좋은 것 같다.”

서울시교육청이 개발하고 확산을 추진하고 있는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직무연수에 참여한 명덕고 2학년 박서진 군은 토론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26일 서울시교육청은 서울교대 에듀윌센터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인공지능 시대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직무 연수를 개최했다.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이란 사회 현안을 주제로 찬성, 반대 입장을 정해 토론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찬성과 반대 입장을 바꿔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신개념 토론이다.

이날 연수에 참석한 교사들과 학생들은 ‘고등학생의 정치 참여’에 대해 토론을 펼쳤다. 토론은 고교 2학년생 학생 두 명과 교사 두 명이 각 한 팀을 이뤄 진행됐다. 이들은 ‘고등학생의 정치참여가 학교 교육활동에 방해가 되는가 아닌가’, ‘고등학생의 정치적 판단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등을 놓고 날카로운 토론을 벌였다.

찬성 측과 반대 측의 입론, 자유토론, 최종진술이 진행되고 나면 숙의 시간을 갖고 반대 편에 서서 재차 논리를 펼쳤다. 토론에 참여했던 학생과 선생님들은 자신이 펼쳤던 논리를 다른 논리로 반박하면서 열띤 참여율을 보였다. ‘고등학생은 종합적인 능력판단 미숙으로 정치적 편향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니 정치 참여를 금지해야 한다’던 찬성 측이 숙의 시간을 거친 뒤 ‘정치적 판단 능력이 미숙하다는 것은 기성세대의 편견이자 통념이다’라고 언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반대로 ‘교육과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민주시민 역량을 함양하기 위해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던 반대 측이 ‘공격적인 온라인 게시물을 청소년이 만들기 쉽다’며 정치 참여를 반대하는 모습에 토론을 지켜보던 청중들 사이에선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토론에 참석했던 경동고 2학년 남궁솔 군은 “저와 다른 의견을 들어보면서 다른 의견도 제대로 된 근거가 있다는 걸 알게 됐던 시간”이라면서 “다른 가치관도 존중하게 된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에듀웰센터에서 열린 ‘학생·교사·교육감이 함께하는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에서 참가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교사들 역시 이런 수업이 교사에게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토론에 참석한 한 교사는 “학생이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지만, 그걸 준비하기 위해 교사가 양쪽 입장을 다 정리하고 공부한다는 게 진짜 중요한 것 같다”며 “그렇게 됐을 때 진정한 의미로 교사가 객관성을 유지하고, 학생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을 참관한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새롭게 변화하는 인공지능 환경에서 역지사지 토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고민이 있다”며 “양극화되는 정치 사회적 지형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화해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만들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지난 연말에는 경기도교육감과 이런 역지사지 토론의 필요성에 합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수도권에서 이런 토론 문화를 시범적으로 시도해 보고, 나아가 올가을에는 전국 교육감님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역지사지 토론 문화를) 확산해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교육감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틀릴 수도 있겠다는 인식이 생길 때 토론의 가장 중요한 성과가 될 것”이라며 “그것이 좀 더 성숙한 의식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