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하러 새벽 경찰서 ‘오픈런’ 말이돼?…법원 “방문접수 제한은 위법” [세상&]

옥외집회·시위 신고 시 경찰서 ‘방문 접수’만 허용
법원 “기본권 제한”


1일 서울 경복궁역 일대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범시민 대행진(왼쪽)이, 여의대로에서는 세이브코리아 주최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기각을 촉구하는 ‘3·1절 국가비상기도회’가 각각 열리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옥외집회를 신고할 때 관할 경찰서를 직접 방문해 신고하도록 한 고시 규정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방문 접수 외에도 우편 접수 등을 활용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 강재원)는 지난 1월 원고 A씨가 서울남대문경찰서를 상대로 제기한 옥외집회·시위 신고서 수리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24년 4월 서울남대문경찰서에 옥외집회 신고서를 우편으로 발송했다. 남대문경찰서는 ‘등기접수’는 효력이 없다며 집회 신고 접수를 거절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르면 옥외집회 및 시위 주최자는 집회·시위 주체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를 접수해야 한다.

경찰은 구체적인 신고 방법은 민원처리에관한법률(민원사무처리법)에 따라 2009년 제정된 ‘민원사무처리기준표 고시’로 규정했다. 고시에 따르면 옥외집회 신고자는 ‘민원인’으로 경찰서에 직접 방문해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 때문에 주말마다 집회·시위가 빈번한 서울 일선 경찰서에서는 집회 신고를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옥외집회 신고 방법을 방문으로 제한한 고시 규정은 상위법인 집시법이 위임한 범위를 벗어날 뿐 아니라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취지다.

먼저 1심 재판부는 옥외집회 신고는 민원사무처리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민원사무’나 ‘민원’은 사인이 행정청에 대해 일정한 조치를 요구하는 의사표시, 즉 ‘신청’을 의미한다”며 “사인이 행정기관에 일정한 사항을 알리는 ‘신고’와 명확히 구별된다. 민원처리법 적용 대상인 법정민원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옥외집회 신고제도 운영 목적은 적법한 옥외집회를 보호하고 행정청에 정보를 제공해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1심 재판부는 판단했다. 옥외집회 신고는 ‘민원’으로 볼 수 없어 애초에 관련 고시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나아가 1심 재판부는 옥외집회 방문 접수 규정의 적합성은 상위법인 집시법, 더 나아가 헌법의 원칙을 기준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우선 옥외집회 신고방법을 방문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법률에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기본권을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집시법은 신고서에 기재해야 할 사항, 제출 시한 등을 제한하고 있지만 신고서의 제출방법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방법을 방문으로 제한하는 것은 상위 법령의 위임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며 “집시법에 의한 집회의 자유 제한이라 할 수 없고, 민원사무처리법의 적법한 위임에 의한 자유 제한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경찰 측은 집회 신고를 방문으로만 받는 것은 운영상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방문 접수를 해야 신고인, 연락 책임자, 질서유지인의 인적사항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중복되는 2개 이상의 신고가 있을 경우 조처가 필요해 방문 접수로 한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1심 재판부는 경찰의 주장을 배척했다. 우편 등기로 접수 받아서 생기는 운영상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심 재판부는 “등기우편의 경우 배달일시를 객관적으로 증명·확인할 수 있다. 행정관청이 기준을 정립하기만 하면 중복 신고와 관련된 금지통고 등 조치를 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 가능한 방법도 제시했다. 1심 재판부는 ▷우편 신고 후 접수증 교부 과정에서 인적 사항 재확인 ▷우편 신고 후 접수증 교부는 방문으로 한정 ▷집회 신고인과 SNS 통해 협력의무 요청 등을 예로 들었다. 1심 재판부는 “신고서에 대한 보완 요청, 집회 주최자에게 집회 질서유지 책임 부여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며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의사소통 내지 연락을 위한 여러 매체가 일상화돼 있다. 공공기관도 전자적 송달이 보편화돼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경찰서에 과중한 부담을 지운다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1심 재판부는 해당 규정이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1심 재판부는 “방문을 통한 옥외집회 신고만 허용하고 그 외의 방법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신고 방법에 따라 구분해 옥외집회를 허용하는 것이 된다”며 “사실상 집회의 허가제를 운영하는 것과 다름없는 중대한 기본권 제한의 결과를 가져온다. 헌법이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집회 사전허가 금지에 반해 집회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남대문경찰서는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고 2심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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