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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중국인 간첩설’에 관한 제보를 했다고 주장하는 안병희 씨[KBS추적60분] |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마블 영화 캐릭터 ‘캡틴 아메리카’ 복장으로 보수 세력 집회에서 이목을 끌었던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안병희(42) 씨가 ‘중국 간첩 99명 체포설’은 자신이 제보해 기사화된 것이라며 “다 속여서 여론조작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중국 간첩 99명 체포설’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이 체포됐다는 음모론이다. 스카이데일리라는 매체의 보도로 확산됐으며, ‘중국인의 개입으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극우 세력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인용된다. 선관위, 미 국방부, 주한미군 등 관계기관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윤석열 대통령 측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거론할 정도로 믿고 있는 이들이 많다.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의 경우 보도 이후 해당 매체에 실렸던 광고가 빠졌다는 사실에 분노하기도 했다.
안 씨는 해당 보도를 한 허모 기자에게 기사 내용을 제보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안 씨는 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에서 자신이 허 기자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통화 녹음 등을 공개하며 해당 매체의 ‘중국인 간첩설’ 관련 일련의 보도 내용은 “다 제가 제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안 씨가 공개한 허 기자와의 통화녹음 파일에서 두 사람은 이렇게 대화한다.
안 씨 : “만약 선관위 쪽에 중국 애들이 있었다 치면 얘네가 365일 24시간 해킹만은 하지 않았겠죠? 그 외에 일거리를 줘서 뭔가 시키지 않겠습니까?”
허 기자 : “아. 그렇죠.”
안 씨 : “뭘 했을 것 같아요?”
허 기자 : “댓글 공작이요.”
안 씨 : “어? 눈치 빠르시네. 솔직히 말해서 가짜뉴스라고 하더라도 이건 굉장히 그럴듯하고…(중략) 그러면 (기사) 초안 작성해서 저한테 보내주세요.”
실제 해당 통화 다음날인 1월 18일 스카이데일리는 선관위에서 체포된 중국인 간첩들이 국내 댓글 공작에 관여했다는 기사를 ‘단독 보도’라며 내보냈다. 해당 기사는 안 씨가 불러준 내용을 ‘미군 정보 소식통’의 제보라며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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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중국인 간첩설’에 관한 제보를 했다고 주장하는 안병희 씨[KBS추적60분] |
다른 기사를 작성할 때도 안 씨가 내용을 불러주면, 허 기자가 기사 초안을 보냈고, 안 씨는 기사의 구체적인 문구 수정 및 보도 시점 등을 지시했다. 다른 통화 녹음에서 두 사람은 이같이 대화한다.
안 씨 : “정신 못 차리게 얘네(좌파)를 진짜 공격하려면 중간에 사실 넣고 그거를 감싸는 가짜뉴스도 조금 넣고 해야 하니까.”
허 기자 : “아 그거 괜찮죠.”
안 씨 : (기사 문구에 관해) “그냥 블랙 요원이라고 해요. 국정원은 빼고.”
허 기자 : “예. 그렇죠. 이렇게 자꾸 이 단체가 들어가면 ‘우리 아닌데’라고 할 것 같아서. 국내 정보 당국자(라고 할까요)?”
이같은 통화 후 실제로 표현이 수정돼 기사가 출고됐다.
또 <美 압송 中 간첩, 한국 실업급여 받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 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없는 사실을 꾸며내는 듯한 내용의 통화도 한다.
안 씨 : “그거 어떨까요? ‘국민 세금으로 우리가 간첩을 만들었다’”
허 기자 : “내용은 괜찮아 보이는데 어떻게 그게 연결고리가 되는 거죠?”
안 씨 : “6개월 단위로 실업급여 받고 이러면서 그 사람들 직업 훈련한다고 해놓고 결국은 간첩 교육하고”
허 기자 : “그거 괜찮겠네요.”
안 씨 : “‘문재인 정부가 국민 혈세로 간첩들을 양성하고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허 기자 : “그렇죠. 얘기 되네요.”
안 씨 : “틀을 만들 수도 있고요. 그러면 이제 반중 감정을 확 일으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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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데일리는 2월 5일 <트럼프 1기 블랙요원 3명 ‘中 간첩단’ 검거 관여>라는 제목의 기사도 내며 ‘블랙요원 3명’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을 실었는데, 해당 사진 중 하나는 안 씨의 얼굴이었다.[KBS 추적60분] |
‘추적60분’ 측은 안 씨와 허 기자의 통화녹음 파일 130여건을 분석한 결과 허 기자의 ‘중국인 간첩설’ 관련 기사 7건이 이같은 방식으로 쓰여졌다고 추정했다. 다만 스카이데일리 측은 안 씨의 주장만을 근거로 기사를 쓴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안 씨는 자신을 미군 소속이자, 미국 중앙정보 국(CIA) 소속 비밀 요원이라고 속여 신뢰를 산 것으로 추정된다. 스카이데일리는 2월 5일 <트럼프 1기 블랙요원 3명 ‘中 간첩단’ 검거 관여>라는 제목의 기사도 내며 ‘블랙요원 3명’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을 실었는데, 해당 사진 중 하나는 안 씨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안 씨는 자신의 신분에 관해 거짓말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 씨는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고, 미국에는 입국한 적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추적60분’ 제작진 측에 제시한 CIA 신분증도 위조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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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중국인 간첩설’에 관한 제보를 했다고 주장하는 안병희 씨가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하고 민경욱 전 국민의힘 의원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KBS추적60분] |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가짜 신분을 이용해 보수 세력 주요 정치인들과도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 민경욱 전 국민의힘 의원이 그와 사진을 찍었다.
당초 ‘추적60분’ 측에도 자신의 신분을 속이려 했던 안 씨는 결국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속은 사람이 누구라 생각하냐’는 질문에 “다. 지금 다요. 허 기자도 나한테 속았지. 제가 기사를 공개하면서 얘기했던 모든 사람이 다 저한테 속은 거죠. (민 전 의원이나 황 전 총리)도 다 저한테 속은 거죠”라며 “정보기관 사람까지 속을 정도면 오히려 그게 더 저한테는 좋은 그림 아닌가요? 그만큼 더 똑똑하다는 얘기니까요. 거짓말을 해서 속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치라면 바로 그냥 어디 정보기관도 데려갈 수 있을 정도의 인재가 된다는 거죠. 왜? 아닌데도 다 속였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 속아서 이게 오히려 여론 조작까지 제가 성공했잖아요”라 말하더니 자신이 뱉은 말에 당황한 듯 “아니 조작이 아니고, 여론 형성까지 성공을 했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일을 벌인 이유에 대해 “우파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 씨는 주한중국대사관과 경찰서 난입을 시도한 혐의(건조물침입미수·재물손괴·공용물건손상)로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다. 그는 가짜 미군 신분증을 만든 혐의(사문서 위조)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