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도 경제 못믿어”…머스크 기업에 은밀히 거액 투자하는 중국 부호들 [디브리핑]

특수목적법인 이용해 익명으로 투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9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 도착하자마자 ‘DOGE’라고 적힌 셔츠를 내보이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중국의 투자 거물들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운영하는 비상장 기업에 수백억원을 비공개로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로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로 보이나 일부에서는 중국 자본의 미국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머스크가 미국 정부 개편을 추진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실세로 지목된 후 중국 내 자산운용사들은 머스크와 트럼프의 관계를 홍보하며 부유한 중국인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해 왔다. 이러한 자금은 머스크의 비상장 기업인 xAI, 뉴럴링크,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비상장 기업인 스페이스X 등에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이들은 특수목적법인(SPV)을 설립해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신원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중국 자본을 경계하는 미국 당국과 기업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자산운용사들은 투자자들의 특수목적법인이 공개 의무를 피하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특수목적법인을 활용한 자금 조달은 일반적인 관행이며, 이러한 방식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머스크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미국의 정책, 정치, 비즈니스 등에 관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구조가 부적절한 영향력 행사 및 이해충돌 가능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기업연구소의 데릭 시저스 선임 연구원은 “머스크처럼 중국과 많은 연결고리를 가진 사람이 미국 정부 개혁에 적절한 인물일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시저스 연구원은 “머스크 기업에 유입되는 중국 자금이 그가 미국의 이익보다 중국에서의 명성과 브랜드 가치를 더 중시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불투명한 투자 구조로 인해 머스크의 비상장 기업에 유입되는 중국 자본의 전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중국계 자산운용사 3곳은 지난 2년 동안 중국 투자자들에게 스페이스X, xAI, 뉴럴링크 지분 3000만달러(약 400억원) 이상을 팔았다고 밝혔다. 이들 세 기업은 머스크가 운영하는 비상장 기술 기업으로 최근 기업 가치가 급등했다.

글로벌 금융 데이터 서비스업체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2002년 설립 이후 전 세계 투자자로부터 100억달러(약 13조4000억원) 이상을 조달했다.

중국계 자산운용사 측은 머스크의 기술 기업으로 유입되는 중국 자본은 주로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며, 기술 이전이나 정책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중국, 자본은 넘쳐나지만 양질 투자처 부족이 원인”

FT는 이와 관련 “중국 경제가 침체되면서 부유한 중국인들이 해외에서 투자 기회를 찾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 중국 당국은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의 2022년 앤트 그룹 상장 취소를 비롯해 같은 해 중국 차량 호출 서비스 기업 디디글로벌(디디추싱)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폐지 등 민간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머스크 기업에 대한 투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 부호들은 2010년대 후반부터 머스크의 비상장 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9년 테슬라가 상하이에 전기차 공장을 설립하면서 투자 열기는 더해졌다.

일찍부터 머스크의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큰 수익을 거뒀는데, 호마이어 파이낸셜은 지난해 10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2018년 6월 스페이스X에 투자한 그룹이 6년 후 530%의 수익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 투자자는 “머스크가 뛰어난 사업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이 정도로 성공할 줄은 몰랐다”며 “더 많이 투자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는 대부분의 중국 스타트업 창업자들보다 머스크를 더 신뢰한다”며 “그들은 점점 국가 주도 경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감시와 미중 간 갈등 고조에도 불구하고 중국 투자자들은 여전히 머스크의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해외 은행 계좌를 보유한 투자자들만이 머스크의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일부 자산운용사들은 이러한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방안까지 찾아내면서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

뉴욕의 한 투자 매니저는 “중국은 자본이 넘쳐나지만, 양질의 투자처가 부족한 상황이다”라며 “우리는 그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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