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미술’ 주춧돌 세운 60년 전 상파울루의 그날 [요즘 전시]

첫 국제전 심사위원 김병기 작고 3주년 기념전
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서 국내 대표작가 소개
김환기 ‘에코’ 시리즈·김창열 ‘제사 Y-9’ 등 눈길


김병기 화백 [가나아트]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70여 명의 커미셔너 중에서 15명의 심사위원이 선정됐고, 그 명단에 내 이름이 끼었다. 국제전 최초의 한국인 심사위원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 거다.”

1965년 김병기 화백은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커미셔너로 참가한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접했다. 바로 심사위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오른 것. 그 당시 한국은 세계 미술계에서 낯선 존재였고, 국제 미술전 심사위원 자리는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일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그는 한국 현대미술을 세계무대에 올려놓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진행되는 ‘김병기와 상파울루 비엔날레’는 김병기의 3주기를 맞아 그가 커미셔너로 활약했던 60년 전 상파울루 비엔날레를 재현하는 전시다. 이응노, 김환기, 김종영, 이세득, 권옥연, 정창섭, 김창열, 박서보까지 이름만 들어도 굵직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여 그날의 전시를 되살린다.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된 김종영의 ‘작품 65-1’과 같은 시리즈로 추정되는 ‘작품 65-2’(오른쪽)이 전시된 전시장 전경. [가나아트]


109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기까지 붓을 놓지 않은 김 화백은 작가이면서도 동시에 한국 미술을 국제무대에 올리기 위해 무대 뒤에서 묵묵히 힘쓴 미술평론가였다. 1961년 제2회 파리 비엔날레 커미셔너를 맡았지만, 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현지에 있던 박서보와 평론가 이일에게 역할을 넘겼다. 1963년, 한국이 처음 참가한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는 출품 작가들을 소개하는 서문을 써 내려가며 한국미술을 알렸다.

그러다 1964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에 당선된 그는 당연직으로 이듬해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커미셔너를 맡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김환기의 특별실 전시가 열리고, 이응노가 명예상을 수상하게 되면서다. 한국의 현대미술이 국제무대에서 더 이상 초대받는 손님이 아니라 주목받는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김 화백은 이를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훗날 “1945년 해방 이후 1965년 도미하기까지 꼬박 20년간 나는 미술 행정의 일선에서 봉사했다”고 회고했다.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특별실 전시를 꾸민 김환기의 출품작 중 하나인 ‘에코-1’(1965) [가나아트]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된 김창열의 작품 ‘제사 Y-9’(1964) [가나아트]


전시장은 1960년대 초중반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 미술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변모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40여 점 작품으로 채워졌다.

우선 순수 추상으로 독특한 미적 세계를 펼친 김환기와 조형적 실험으로 미술의 경계를 확장한 김창열의 초기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당시 14점을 출품했던 김환기의 작품 중 ‘에코(Echo)’ 시리즈 3점이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이 중 1965년작인 ‘에코 1’ 뒷면에는 비엔날레에 출품했음을 알려주는 원본 태그가 남아 있어 의미를 더한다. 김창열이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대부분 망실돼 보기 쉽지 않지만, 작품 ‘제사 Y-9’가 이번 전시에 나왔다.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된 이응노의 작품 ‘구성’’(1960) [가나아트]


문자 추상의 선구자로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미학을 제시한 이응노의 ‘구성’ 연작 중 비엔날레에 출품된 1960년작 작품도 전시됐다. 현대적 조각 어법을 통해 입체미술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 조각가 김종영의 비엔날레 출품작 ‘작품 65-1’과 같은 시리즈로 추정되는 ‘작품 65-2’도 공개됐다. 두 작품은 1961~1963년 숭례문 보수 공사 과정에서 나온 목재를 사용해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1970년대 미국 사라토가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는 김 화백의 주요 작품 10여 점도 함께 전시돼 있다. 오는 22일에는 가나아트센터 아카데미홀에서 제8회 상파울로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한 한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조망하는 학술 세미나도 열린다. 전시는 내달 20일까지. 성인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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