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누보 거장 알폰스 무하, 프라하 사바린궁에 새 둥지[함영훈의 멋·맛·쉼]

모라브스키 크룸로프의 ‘슬라브 서사시’ 전시관의 작품과 관람객


알폰스 무하 미술관이 새로 문을 연 프라하 중심부 사바린궁전[체코관광청 제공]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아르누보 장르의 개척자, 체코 출신 화가 알폰스 무하(1860-1939)의 새로운 박물관이 프라하 중심가 사바린 궁전에 새로 문을 열었다.

기존에는 구시가지 작은 공간에 있어 무하의 풍부한 예술세계를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이번에는 고풍스런 궁전에 널찍하게 자리잡아,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 예술이 스며들도록 하는데 노력한 그의 아르누보 정신을 제대로, 풍요롭게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사바린 궁전은 프라하 중심부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체코의 부동산 개발업체 크레스틸(Crestyl)과 여러 문화유산 단체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세심하게 복원됐다. 이 박물관은 토마스 헤더윅이 설계한 사바린 프로젝트 개발의 중요한 첫 걸음이기도 하다.

무하의 기념비적인 대작 슬라브 서사시(1912~1926)를 전시할 전용 공간을 만드는 것도 포함된다.

슬라브 서사시는 현재 프라하에서 브르노로 가는 길목 모라비아 지역 초입의 모라브스키 크룸로프에서 전시하고 있다. 필부필부들의 고난 극복 역사를 살아있는 눈빛과 표정으로 표현한 걸작들이다.

모라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무하는 1890년대 파리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이때 그가 제작한 당대 최고의 유명인사였던 프랑스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그린 석판화 포스터는 단숨에 인기를 끌었다. 이어 자신이 나고 자라던 모라비아 여인을 모델로 삼았을 땐, 동서양 느낌이 모두 들어있는 이 여인의 온화하면서도 푸근한 인상이 깍쟁이 차도녀 파리 여인을 제치고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국에서 포스터에 나온 여인 처럼 코스프레하고 사진찍기 챌린지도 열린바 있다.

알폰스무하 여배우 석판과 포스터 1897~1898년


체코관광청이 근년에 기획했던 무하의 그림 속 여인 처럼 사진찍어 보기 챌린지


특유의 구불구불한 선, 자연적 형태, 채도가 낮은 색조는 이른바 ‘무하 양식’으로 불렸고 당시에 새롭게 출현한 장식적 양식인 아르누보의 동의어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장식 미술의 대가’로 여겨지는 무하의 디자인은 문화예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표와 전단에도 미술이 접목되면서 생활속의 많은 것들에 아트를 입히는 작업들이 확산된다. 카를로비바리 건물 발코니의 작품 같은 난간 기둥, 톨레도의 분홍색 교량 윤곽선 등은 무하가 주도하는 아르누보의 영향이다.

무하는 광범위한 매체에서 활동하는 화가, 조각가, 사진가, 디자이너인 동시에 영감을 주는 교사이자 철학가였다. 스스로를 ‘대중을 위한 예술가’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어 할리우드, 타투 아트, 만화, 거리 미술을 비롯하여 다양한 운동을 전개하고 문화를 창조하는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지금도 끊임없는 영향과 영감을 주고 있다.

사바린 궁전 내에 새롭게 단장한 무하박물관


새로 문을 연 무하 박물관에서는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와 유토피아’ 상설 전시를 통해 무하 트러스트 컬렉션의 일부 작품 90점을 선보이며 여기에는 회화, 포스터, 드로잉, 삽화와 사진이 포함되고 몰입형 프로젝션 및 디지털 프로젝션도 함께 연출된다.

이 상설 전시에서는 무하가 추구한 예술세계와 정신세계의 여정을 조명한다. 아르누보 포스터 디자인을 시작으로, 그의 역작인 슬라브 서사시가 탄생하게 된 과정을 더듬어 보고, 이러한 작품 세계의 기반이 된 사상적 비전을 살펴본다.

알폰스 무하가 예술가 그들만의 리그와 민중의 삶 사이에 가교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일갈에 잘 드러난다.

“나는 단 한 번도 무언가를 파괴하려는 의도로 작품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항상 가교를 놓으려 했죠. 우리 모두가 소망해야 하는 건 인류가 한마음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할수록 그 목표에 더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무하, 1923년 그림(슬라브서사시)을 그리다 문득.


알폰스 무하의 증손자이자 무하 재단(Mucha Foundation)의 이사인 마르쿠스 무하는 박물관 개관에 대한 기대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의 목표는 무하의 유명한 작품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하 패밀리 컬렉션의 다양한 예술 작품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무하의 비범한 예술 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여정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었으며, 이곳에서 슬라브 문화에 대한 애정이 형성되었습니다. 19세기말에 건너간 파리에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여 세계를 휩쓸었고, 미국 체류 시절에는 저명한 예술가이자 대통령의 친우로 지내기도 했고, 고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정점에 이른 작품 세계를 펼쳐보였습니다. 이 특별한 공간에서 무하의 작품을 선보이게 되어 상당히 기대가 큽니다. 이곳은 제 증조부와 그분의 작품처럼 체코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건축물이며, 크레스틸사의 섬세한 복원 사업을 통해 과거의 빛나는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체코의 가장 저명한 건축가 중 한 분인 에바 이리치나 님의 건축 사무소 AI DESIGN에서 박물관의 전시 공간을 제작해 주신 부분에 대해서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복원된 체코 프라하 사바린궁전


크레스틸의 CEO 사이먼 존슨은 “사바린 궁전은 체코의 중요한 문화적 건축물입니다. 이곳은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 궁전일 뿐만 아니라, 제1공화국 시기에 체코의 저명한 지식인들이 자주 찾던 유명한 사교 클럽의 본거지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용도에 맞지 않는 사용으로 건물이 훼손된 상황이었습니다. 최근까지 카지노로 이용되던 공간을 회수하여 체코 문화예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입지를 지닌 예술가의 박물관으로 재건하는 것. 이것은 사바린 프로젝트의 핵심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알폰스 무하의 경이로운 작품 전체를 새롭게 단장한 아름다운 공간에서 대중에게 선보이는 이니셔티브에 참여하게 되어 매우 뿌듯합니다. 무하 박물관은 프라하 문화 경관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 이곳은 토마스 헤더윅이 설계한 사바린 프로젝트가 현지 관광객 및 해외 관광객 모두를 위한 활기찬 명소로 거듭나는 과정의 중요한 단계를 의미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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