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응원할 수 없는 백아진, 응원하고 싶은 김유정 [인터뷰]

티빙 오리지널 ‘친애하는 X’ 주인공 ‘백아진’ 역할
‘국민 아역’에서 ‘악녀’로…11년 만의 악역 도전
“눈빛과 대사 톤으로 차갑고 계산적 캐릭터 표현”

 

김유정 [티빙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메마른 심장에서 싹을 틔워 자라난 이기적 욕망이 환한 웃음과 가녀린 눈물로 피어난다. 까만 속내를 감춘 거짓 앞에서 진짜 감정들은 속수무책으로 휘둘린다. 거짓을 안다 해도 예외는 없다.

여자는 원하는 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자신의 힘을 안다. 남자들은 알면서도 모르겠고, 알아도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마음을 저당 당한 채 그녀에게 철저히 이용당한다. 여자는 자신이 이용한 남자들의 ‘파멸’을 하나씩 딛고 오른다. 화려한 가면 속에 노골적 욕망을 감춘 무자비한 소시오패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불우한 과거로도 희석되지 않는 악행은 더욱 추악해진다.

“‘백아진’은 절대 응원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의 주인공이고, 제가 맡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냥 그 자체를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김유정)

[티빙 제공]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친애하는 X’가 종영까지 단 2회만을 남겨둔 가운데, 마지막까지 뜨거운 흥행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살아남기 위해 가면을 쓴 주인공 ‘백아진’과 그에게 조종당하고 짓밟힌 ‘X’들의 파멸적 로맨스를 그린다.

‘친애하는 X’는 실사화의 부담을 이겨내며 지난달 6일 첫 공개와 동시에 플랫폼의 해외 진출에 힘입어 글로벌 흥행까지 거머쥐었다. 타협 없는 연출과 각색, 그리고 기대를 뛰어넘은 배우들의 열연이 원작 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그리고 뜨거운 반응의 중심에는 ‘백아진’을 분한 김유정이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배우 김유정을 만났다. ‘친애하는 X’의 백아진은 김유정이 영화 ‘우아한 거짓말’(2014) 이후 11년 만에 맡은 악역이다. “원작도 워낙 유명하고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이라 걱정이 많았어요.” 걱정과 부담이 무색하리만큼, 김유정이 연기한 백아진은 ‘사람의 탈을 쓴 악마’ 그 자체다.

김유정 [티빙 제공]

“이미지가 멈춰있는 웹툰에서 백아진이 갖고 있는 소시오패스적 성향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것을 영상으로 만들었을 때 최대한 비슷한 결을 어떻게 맞출지 고민했죠. 제가 깨달은 답은 덜어내고, 절제하는 것이었어요.”

‘친애하는 X’는 백아진의 일대기다. 결코 평범하게 자라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해 학창 시절을 거쳐 톱스타 배우가 되기까지, 백아진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더욱 냉혹하고 무자비한 악마로 성장한다. 원작상에서도 아진은 이렇다고 할 비교군이 없는 독보적인 캐릭터다. 김유정에겐 참고할 대상 없이 ‘백아진’이라는 인물에게 다가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심리학과 교수님 등으로부터 자문도 구하면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이 인물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어요. 결국엔 이것저것 종합해서 캐릭터를 만들기보다는 실제 현장에서 상황을 느끼면서 아진과 가까워져야겠다 생각했어요. 눈을 깜빡이지 않는 연기도 그 과정에서 나온 거고요.”

‘친애하는 X’ [티빙 제공]

김유정은 상대의 감정 따윈 배려하지 않는 직설적인 대사와 강렬한 눈빛 연기로 백아진의 계산적이고 냉혹한 성격을 설득력있게 표현한다. 대사 톤과 표정 등 모든 움직임과 표현에 백아진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원작에서 보여지는 싸늘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눈이 큰 편이라 조금만 더 크게 뜨면 흰자가 많이 보이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삼백안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뭔가 허공에 눈이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촬영할 때도 시선이나 눈에서 오는 에너지도 많이 신경 썼고요. 대사 톤도 말의 어미나 끊는 타이밍을 미묘하게 다르게 해서 백아진이 가진 묘하게 싸한 느낌을 표현하려 했어요.”

극한의 상황과 감정들이 그를 몰아붙일 때도 있었다. 김유정은 “실제 촬영을 하면서 살도 많이 빠지고, 심리적으로 점점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을 엄습해 짓누르는 어둠을 애써 떨쳐내지는 않았다. 그는 “(당시의 기분이) 아진의 상황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촬영할 때는 (기분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촬영을 하지 않을 때는 감독님이나 배우분들이 제게 장난도 많이 쳐주시면서 제가 백아진이 아닌 김유정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많이 도와주셨어요. 덕분에 제가 저를 잃지 않고 중심을 잡으며 연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다 힘든 상황에 놓이는 캐릭터인데도 불구하고 ‘아진이가 제일 힘들 거야’라고 격려해 주셔서, 거기서도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티빙 제공]

백아진은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대한민국 톱 여배우가 사실은 추악한 소시오패스라는 설정과 그가 저지른 악행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지만, 김유정은 그 안에서도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에 드라마는 누구나 마음에 품고 사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백아진과 같이 내 인생을 잘 살아가려 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런 욕망과 함께 인간관계나 극한의 상황에서 나오는 감정들이 잘 표현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누군가 관계를 맺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고, 갖고 있는 욕망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이기도 한 것 같아요.”

가장 기분이 좋은 반응은 “백아진이 실제로 살아있는 것 같다”는 평가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배우로 지내오고 있지만, 연기에 대한 호평은 여전히 얼떨떨하다. 김유정은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로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찬사라고 생각한다”며 “너무 칭찬을 해주시는 것 같아 현실감이 들지 않는 지점도 있다”며 웃었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김유정에게 ‘친애하는 X’는 그를 배우로서 한 걸음 더 성장하게 한 작품임엔 틀림없다.

김유정 [티빙 제공]

“시청자분에게 그간의 제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성장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작품에 더욱 애정이 가고, (앞으로의 연기 인생에) 굉장히 깊게 자리할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저 인물이 왠지 어딘가 실제로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에 오래 남는데, 백아진이란 캐릭터가 그래요.”

‘국민 아역’에서 시작해 김유정은 어느덧 국내 20대 여배우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친애하는 X’의 흥행으로 앞으로의 행보에 부담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김유정은 자신의 연기를 지켜봐주고, 자신의 앞날을 기대하는 이들을 위해 더욱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천천히 나아가는 중이다.

“작품의 흥행으로 생긴 부담감을 잘 털어내야죠. 저의 연기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앞으로 제 작품을 기대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분들이 존재하니까 앞으로 잘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에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많은 분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을 즐겁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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