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금까지 이인임의 파워와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판세를 읽는 능력은 탁월했다. 권력욕과 악람함에 지혜까지 갖춰 구질서의 정점에 오를 수 있었다. 이전 같으면 이인임을 이렇게까지 뛰어난 인물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도전‘에서는 권문세족 이인임을 뛰어난 수구세력으로 그려냈다.
‘정도전’의 김형일CP는 “이 드라마는 정도전을 위한 변명이 되어서는 안되고, 이인임을 위한 변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정도전이 낡은 구질서속이라 해도 새로운 정치사상과 사회 개혁시스템을 계속 외쳐대는 것은 허황될 수 있다고 봤다. 오히려 이인임이 왜 구질서에서 그렇게 탄탄하게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 점은 적중했고, 초기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사극이건 현대극이건 요즘 드라마는 악역을 그럴듯하게 그린다. 미워할 수 없게, 명분이 있도록 그리려고 한다. 하지만 ‘정도전‘에서 이인임은 그 점이 더욱 더 설득력 있게 다뤄졌다. 이인임이 현실정치를 하다보니 그속에서 나온 구체적 상황(역학관계, 인물갈등)과 그가 가는 길은 요즘 사람들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간다. 게다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인 정현민 작가는 정치를 현장에서 본 경험과 감각으로 그런 상황을 인물들에게 잘 실어주고 있다.
지금까지 정도전이 철옹성 같은 이인임을 뛰어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이제 확실한 결과물이 나오려 하고 있다. ‘용의 눈물’이 역사를 인물들을 통해 편년체적으로 그려나가는 것이라면 ‘정도전‘은 인물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는 부분에 방점이 찍혀있다.
따라서 이인임이 멀지 않아 퇴장하게 되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로서는) 서운할지 몰라도 극적 재미와 긴장은 계속 유지할 전망이다. 수구보수파 이인임 외에도 온건보수파 최영, 온건개혁파 정몽주, 급진과 중도를 넘나드는 개혁파 정도전 등이 앞으로도 요동정벌, 위화도 회군 등의 상황에서 보여줄 모습들,즉 인물들의 갈등과 고민, 논리와 선택들이 궁금해진다.
요동정벌, 위화도 회군의 이야기는 누구나 아는 역사속 이야기지만, 이 인물들의 부딪힘과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각각의 논리와 갈등 양상은 충분히 현재성을 획득한다. 가령, 정몽주와 정도전이 우정과 대의가 맞부딪히는 상황, 그렇게 해서 각각의 선택을 하게 된 과정들은 충분히 재미있게 그려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평소 선량하고 유하게 보이는 사람이 한번 바뀌면 어떻게 되는지도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사극이지만 현재 인간들의 이야기나 나름없다. 
서병기선임기자wp@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