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이 된 교사들
날마다 무너지는 아이들
그래도 바꿀수 있다고 믿기에…
상처 보듬고 희망을 얘기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선생님의 믿음은 실현될 수 있을까?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우리는 바뀔 수 있을까? 둘러보면 회의와 절망이 더 가깝고, 희망과 확신은 자꾸 멀리로 달아나는 때다. 둑이 허물어지듯 사소한 말 한마디, 글 하나에도 자꾸 흐르는 눈물처럼, 입 밖으로 자꾸 새나오는 울음처럼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되뇌어진다. 아빠라서, 엄마라서, 선생님이라서, 부끄럽다. 어른이라서 미안하다. 어른이라서 미안한 곳, 어른이 어른을 믿으라 할 수 없는 곳, 아이들이 희망없이 방치된 곳. 그래서 아이들의 미래와 부모들의 현재와 선생님의 지금이, 그들 모두의 삶과 시간이 무너진 곳.
영화 ‘디태치먼트’(감독 토니 케이, 8일 개봉)의 학교는 미국 교육 현장의 살풍경을 적나라하게 재현한 곳이지만 마치 우리에겐 지금 우리 사회의 신랄한 비유처럼 느껴진다. 이곳에서 어른들은 무기력하고 아이들의 삶은 날마다 무너지고 있다.
미국의 한 고교. 교실 속 십대의 학생들은 아무도 교사의 말 따위엔 신경쓰지 않는다. 교단의 교사는 ‘투명인간’이다. 아이들은 선생에게도 욕설을 서슴지 않는다. 속옷을 입지 않고 속살을 훤히 드러낸 채 성적 방종을 거리낌없이 과시하는 여학생들이 일상이다. 뭐라고 나무라는 여교사에게 “친구들을 시켜 폭행하겠다”고 위협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식을 혼냈다고 교무실로 난입해 교사의 멱살을 쥐는 학부모가 낯설지 않다.
이곳에 기간제 교사 ‘헨리’(애드리언 브로디 분)가 한달 임기로 부임한다. 그가 바로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교사다. 고전 문학 담당인 헨리는 누구보다도 교사로서의 사명감이 강하고, 아이들을 다루는 데 뛰어난 교수법을 갖고 있지만, 개인적인 상처와 경험 때문에 정규 교사를 마다하고 기간제 교사로만 일한다. 첫 시간부터 아이들은 헨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위협한다.
하지만 헨리는 자신과 학생들과의 관계를, 서로에게 참담하기만 했던 교실을, 절망 뿐이었던 학교를 변화시켜 간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의 매춘부를 자처한 한 소녀를, 이미 포기해버린 삶을 남자들의 욕망과 몇 푼에 바꾸며 사는 ‘에리카’(사미 게일 분)를 자신의 집으로 들여 보호한다. 에리카는 예의 헨리를 유혹하려고 시도하지만 헨리는 ‘어른’으로서 소녀의 상처를 보듬고, 아이의 삶을 지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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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한 가지,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화 ‘디태치먼트’에서 기간제 교사 헨리는 자신의 아픔을 견디고 학생들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절망 뿐이었던 학교를 서서히 변화시켜 간다. |
영화 속 학교는 교사가 날마다 패퇴하는 전쟁터이고, 기간제 교사일 뿐인 헨리는 패배가 정해진 전선에 총알받이로 나선 일개 병사와 다름 없다. 그래서 그의 싸움은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승산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변화는 작지만 뚜렷하고, 악행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선의 또한 파장을 일으킨다는 분명한 사실을 영화는 보여준다.
헨리는 “선생님과 같이 강해지고 싶다”는 아이에게 “나는 강한 것이 아니라 다만 너희들을 이해할 뿐”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평생 그저 죽도록 일하다가 삶을 끝내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음의 병을 앓는 제자들에게 “누구나 마찬가지다. 모두들 고통을 느낀다. 누구나 혼돈 속에서 살아간다. 삶은 정말 혼란스럽다. 나도 안다. 정답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걸 잘 견뎌낸다면, 모두 괜찮아 질 거다. 매년 달라질 거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교실 바깥을 벗어난 헨리는 걸핏하면 걸려오는 요양원으로 뛰어가 치매 걸린 할아버지의 발작을 말려야 하는 신세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어머니는 자살한 끔찍한 경험이 마음 속에 돌이킬 수 없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환기되는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린다. 세상에 대한 비관과 분노가 그의 마음 한 켠에서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학교의 다른 모든 교사들도 각자의 불행과 아픔을 견디고 있다. 그러나 헨리와 이곳 학교의 교사들은 단 한 가지, 스스로 ‘좋은 어른’이 되려고 한다. 자신은 약에 의지하면서도 아이 한 명이라도 삶의 절망에서 꺼내내려는 한 노교사(제임스 칸 분)는 문제 학생들 때문에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고 눈물흘리는 상담 교사(루시 리우 분)에게 “이 직업(교사)에 가장 나쁜 점은 아무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하지만 내가 여기서 당신에게 말한다, 고맙다”라고 위로한다.
‘무관심’이라는 뜻의 제목을 단 영화 ‘디태치먼트’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낭만으로부터도 ‘클래스’의 다큐멘터리적인 건조함으로부터도 거리를 둔다. 냉혹함과 비정함, 따뜻함과 연민이 뒤섞인 이 빼어난 드라마는 결국 헨리라는 한 교사를 통해 성인관객들에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고, ‘고맙다’고 안아주는 것이다.
헨리의 임기가 끝나기 전 결국 한 학생은 자살을 하고, 헨리는 “우리는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이 영화는 실패를 견디고, 실패로부터 희망을 건져올리려는 변화와 희망의 의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 교사가 아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희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른들이 불신과 회의, 절망과 혼돈에 빠진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는 이야기가 된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무엇인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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