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은 이번 작품을 통해 그 동안 우리에게 보여줬던 익숙한 모습으로 본인이 보여주지 못한 감성 연기를 스크린에 담아냈다. 124분간의 러닝타임 동안 두 눈은 차승원만이 소화할 수 있는 액션과 여성성을 가진 남자의 갈등을 담아낸 차승원의 밀도 높은 내면연기 쫓는다. 40대 중년 남자 배우 중 두 말 할 필요없는 강렬함이 있는 그가 내면에 여성을 간직하고 있는 연기를 한다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본지는 5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하이힐’ 홍보활동과 SBS 수목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촬영으로 바쁜 차승원을 만났다. 바쁜 스케줄에 지칠법도 해보였지만 그는 시종일관 세상 밖으로 나온 윤지욱을 풀어냈다.
“4일 개봉했는데, 관객들 반응이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는 다들 좋아해주시니 그 하나만으로 보람 있습니다. 윤지욱 캐릭터에 굉장한 애착을 느껴요. 이런 캐릭터를 제가 다시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름 열심히 고민한 흔적도 보였고, 그 캐릭터를 안착시킨 흔적이 있어서 배우로서 참 기분이 좋습니다.”
차승원은 당초 ‘하이힐’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 거절했다. 그러나 고사를 하면서도 극 중 윤지욱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그였다.
“처음에 안하겠다고는 했어요. 그런데 진 감독이 저에게 이 역할이 생각나는 사람이 저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거에 대한건 저도 동의했어요. 성향이 그렇진 않지만 이해를 할 수 있었거든요. 이해를 못하면 연기를 하지 못해요. 이런 성향에 거부감을 느끼는 배우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것에 편견이 없어요. 이후에 출연을 결정하고 다수의 액션이 있으니 장진 감독에게 액션신은 터치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어요. 장진 감독은 저를 믿고, 저는 장진 감독을 믿고 서로 액션신에 대해 지욱의 감성과 상황을 많이 이야기했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기발한 신들이 많이 나왔어요.”
차승원은 무엇보다 액션신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욱이 가진 감성을 액션신으로 고스란히 표현해냈다. 슬프고도 애처로운 감성을 액션신으로 표현해내기란 어느 배우라도 쉽지 않다. 하지만 차승원은 달랐다. 그는 액션신에 빈번하게 출연하는 강렬한 눈빛이 아닌 눈물을 머금은 눈빛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움켜쥔다.
“제 몸이 길어서 잘못하면 액션신이 휘적거려 보일 수가 있어요. 무술감독님께도 그런 것들은 제발 참아달라고 했죠.하하. 감독님들도 욕심이 있으니 안되는 동작을 많이 시키셨어요. 무슬감독님과도 잘 아는 사이라 최대한 제가 잘할 수 있고, 임팩트 있는 동작을 선별해서 만들어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하이힐’ 속 차승원의 눈빛연기는 차원이 다르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겠다. 그런 눈빛으로 시종일관 세상 편견에 갇혀 날개짓을 하지 못하는 윤지욱의 감성을 관객들에게 꾸준히 주입한다.
“촬영 당시, 윤지욱의 캐릭터 특성을 고려해 훅훅 빠르게 움직이는게 아니라 부드럽게, 천천히 움직이고 그랬거든요. 당시에 눈빛에도 그런 것들이 담겨있었을꺼에요. 나른해보이고 텐션을 많이 배제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차승원은 이번 작품을 통해 여장에 도전했다. 차승원이 여장이라니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차승원도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서로 견디자는 생각으로 촬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발언은 차승원의 여장 기대치를 낮춰줬지만 막상 뚜껑을 연 ‘하이힐’ 속 차승원은 예상 외로 예뻤다.
“화장은 윤지욱의 성취감, 내적욕망들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해요. 저도 여장한 것을 보고 ‘그래도 괜찮네’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하. 엘레베이터신에선 근육이 더 도드라져보이더라고요. 마치 ‘캡틴 아메리카’ 같았어요. 물론 의도했던 부분도 있었어요. 주사를 맞으려 갈 때 팔둑이 얼굴보다 더 도드라져 보인다던가 여성스러운 행동들이요. 아주 많은 디테일을 생각하고 임했습니다.”
‘하이힐’ 속 윤지욱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초점을 잃은 듯한 멍한 눈빛, 덥수룩한 수염, 무채색의 옷차림 등이 윤지욱이 하고자하는 것들을 포기한 것임을 보여준다. 윤지욱은 앞으로 아마 자신을 방치하면서도 거울을 볼 때마다 후줄근한 자신을 볼 때마다 괴로울 것이다.
“수염을 기르고 나와 이 사람은 진짜 자기를 잃어버리고 죽인것이죠. 그 사람 마지막 표정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여줍니다.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것이라고 생각해요. 윤지욱도 이의없이 세상을 사람 중 한명이 된거죠.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등을 떠나서 각자가 갖고 있는 욕망과 감성을 사회라는 벽 때문에 노출을 못시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본심같은 건 잘 변하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불구 우리는 살아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영화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아요.”
코미디를 맛깔나게 소화하는 차승원과 충무로의 이야기꾼 장진 감독의 만남이니 ‘하이힐’ 속 코미디를 기대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차승원은 이 시점에서 장진 감독과 서로에게 의미있는 결과물과 새로운 도전을 위해 안전한 것들은 배제했다.
마흔을 관통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이 나이에 소위 할 수 있는 코미디를 하진 말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감독과 배우로서 우리가 만날 의미가 없는거죠. 내가 장진의 영화를 이 작품을 끝으로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가 서로 봤을때 창피하지는 말아야 하죠. 서로 잘하는 무기를 너무나 잘아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속이는 일 같은건 하지 않기로 했어요.”
“관객들은 저희 둘이 만났으니 어느 정도 코미디를 기대하셨을테지만, 저희는 웬만한 코미디는 다 걷어냈어요. 윤지욱에게 코미디를 입히기엔 너무 미안하잖아요. 또 윤지욱의 대사도 많이 지웠죠. 그걸 장진 감독에게 부탁했어요 ‘지욱 대사가 많으니 좀 줄여달라. 나도 진심을 담아 지욱을 연기해보겠다’하고요. 의도에 부합한 결과가 나온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자신을 규정짓고 싶지 않다는 차승원은 다중적인 배우로 관객들에게 인상을 주고 싶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그의 연기 신념이 있기에 벌써부터 향후 보여줄 색다른 모습이 기대된다.
“나이가 조금 더 들면 한 시대를 타고 넘나드는 한 인물에 제 몸을 싣고싶어요. 이젠 그럴 시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또 켜켜이 쌓여있는 디테일한 감정을 연기하고 싶은데 그것에 제일 적합한 영화가 장르가 멜로 아닌가 싶어요. 희극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니 불현듯 코미디나 예능을 할 수도 있고요.”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