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인의류업계 파워맨 톱10

LA다운타운 한인 의류도매업계, 넓게 보면 패션 산업계를 흔히 자바 시장으로 부르고 있다.30여년전 자판에서 홀세일 업체들이 팔다 남은 물건을 받아다가 다시 팔던 때 부르던 이름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셈이다.헤럴드경제가 창간한 12년전에도 이미 이곳을 더이상 자바 시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미 규모도 커졌고 내용면에서도 크게 달라진 상황이었다.12년이 지난 2017년 최악의 불경기라는 말과 함께 여전히 자바시장이란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인 패션산업계는 그 사이 3배 가량 매출이 늘고 업체수는 2배 이상 늘어난 상황이다.500~600개 수준이던 당시와 비교해 한때 2000개 가까이 업체수가 늘었다가 최근 2년여 사이 업계 구조조정 과정에서 500개 가량이 매출 부진에 여파로 폐업하거나 은퇴로 인한 자연스럽게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1500개에 달하는 한인 의류업체들이 운영되고 있다.

한인타운에 있는 많은 경제인들이 “자바는 이제 끝났다”라는 말을 쉽게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는 현실과 크게 동떨어졌다는 것을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의류인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물론 현재 상황은 녹록치 않다. 10여년전과 비교해 영업 이익률은 절반 수준까지 크게 떨어졌고 별도의 담보 없이 납품했던 의류 제품의 대금을 회수 못하는 경우도 최근 크게 늘고 있다.

온라인과 모바일의 약진으로 인해 고객을 잃고 있는 의류 소매 체인들이 규모에 관계 없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LA한인 의류업계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팔리는 곳이 달라지고 있는 과도기를 겪다 보니 자연히 일정 기간 시행착오와 그에 따른 업계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을 뿐 이라는 의견이다.

1500개에 달하는 한인 업체에서 개발되고 만들어지는 제품을 바탕으로 한 의류 도매 중심 상권이라는 효율성을 감안하면 미주 지역에 국한돼 있던 시장을 이제는 유럽을 비롯해 전세계로 넓힐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분명히 공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헤럴드경제는 미주판 창간 12주년을 맞아 한인 패션산업계에서 나름 성공 반열에 오른 의류업체 ‘톱 10′(Top 10)을 선정, 업계의 현재를 보다 정확하게 진단해 보고 위기를 넘어 새로운 희망의 밑그림을 그려본다. 이경준 기자

앰비앙스(대표 노상범)

 

앰비앙스 노상범
앰비앙스 노상범 대표

앰비앙스는 2000년도 초반부터 본격화된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약진과 함께 급성한 업체로 분류된다. 2016년 한해동안 외형매출규모가 2억5천만달러를 웃돌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다른 1세대 의류인들과 비교해 10여년 늦게 의류 도매업에 뛰어는 노상범 대표는 남들보다 늦은 것 이상으로 노력을 해 현재의 자리에 오른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여전히 평일 밤 10시 넘어서까지 해외 공장들과 양질의 제품을 제때 생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노 대표는 여전히 변화에 중요성을 강조한다. ‘구매 고객 탓’, ‘온라인 탓’, ‘유통 업체 파산 탓’ 등 업계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하지만 노 대표는 불경기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기 보다는 끊임없는 자기 개발과 변화하는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업계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대형 업체로 성장했지만 10여전만해도 앰비앙스 보다 두배 이상 규모가 컸던 업체도 많았다는 것이 노 대표의 이야기다. 누구에게든 출발 선상에서 경쟁도 되지 않을 만큼 규모가 큰 업체가 있고 당연히 경쟁도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상황속에서 앰비앙스 뿐 아니라 여러 업체들이 이런 환경을 딛고 성장을 이룩 했다는 것이 노 대표의 이야기다.

각 업체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겠지만 나름의 방법을 찾는다면 작게만 보이던 틈새 시장이 어느덧 커져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갈수록 규모의 경제가 되는 시장 상황에서 10여년전에 비해 신생 또는 규모가 작은 업체가 성장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달라지는 유통 환경을 잘 파악한다면 틈새는 반드시 있다는 의견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지금 규모가 있는 업체도 시장 환경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도태 될수 있다는 이야기로도 볼수 있다.

●콜로시움(대표 스튜어트 황)

콜로세움 스튜어트 황
콜로시움 스튜어트 황 대표

콜로시움(Colosseum)은 LA다운타운에서 20여마일 남쪽에 위치한 캄튼에 본사를 두고 있다. ‘자바’의 한인업체들에서 벗어나 있는 만큼 콜로시움의 제품과 시장은 차별성이 있다. 미 전역의 400여개 대학의 로고 라이선스를 갖고 각 대학의 로고가 들어간 모든 종류의 의류를 생산, 공급하고 있다. USC재학 시절부터 의류업에 종사하던 부모의 사업체를 도우며 비즈니스 감각을 키운 황 대표는 처음엔 모자 품목을 다루다가 1992년에 콜로시움을 설립, 로고 라이선스 어패럴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창업 25년째가 되는 올해 매출목표가 2억달러. 미국내 동종업계에서 톱3 중 한곳으로 꼽힌다. 한인 1.5세대 경영인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비즈니스를 하는 주인공으로 꼽힌다. 금융과 부동산 등 여러 분야에 투자하는 ‘큰 손’으로도 알려져 있다.

6년전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시작한 여성 피트니스 의류라인은 팝디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영화배우 리즈 위더스푼, 맨디 무어, 캐샤 등 할리우드 연예계 스타들의 전문 트레이너로 유명한 애쉴리 보든(Ashley Borden)이 직접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는 협업(콜레보레이션)을 통해 경쟁력을 높였다. 또 중고가 데님사업에도 투자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엣지마인(대표 강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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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마인의 강창근 회장(앞줄 왼쪽서 다섯번째)과 비영리단체 관계자들이 엣지마인 본사 대강당에서 ‘Kang Dream Foundation’ 이 주관한 기금 전달식을 가진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1990년대 초반 의류 소매로 시작해 이제는 미국내 주요 대형 유통업체와 활발한 거래를 유지중인 엣지마인의 강창근 대표는 직원에 대한 아낌 없는 투자로 유명하다. “내 일처럼 일하는 직원들 있어 성공했다”는 그의 말처럼 25만SF에 달하는 에지마인 본사에는 170명이 넘는 직원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1994년 저가로 출발한 의류 브랜드 라인은 이후 차츰 다양화해 이제는 고급 백화점에서 자체 브랜드로 만날 수 있는 업체로 발돋움 했다.

유사한 매출 규모를 보이는 타 업체에 비해 직원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제품 개발과 생산 및 거래처 관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다양한 방식으로 직원들의 복지에도 힘쓰고 있어 타 회사 근무자들에게 종종 부러움을 사고 있다. 물론 근무 강도가 높다. 최상의 결과물을 내야 급변하는 유통 환경에서 밀려나지 않기 때문이다.한국과 중국 등 해외에도 진출해 판매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것 역시 타 업체 보다 한발 앞선 행보로 볼수 있다.

수많은 한인타운 단체장들로부터 참여를 권유하는 러브콜을 10년 넘게 받고 있지만 강 대표는 샌패드로패션마트 협회장을 한차례 연임해 4년간 활동하며 업계를 위한 봉사만 이어왔다.

당시 처음으로 자체적으로 기금을 마련해 장학사업과 비영리단체를 돕는 행보를 시작했고 회장이 바뀐 현재까지 샌패드로패션마트 협회는 이런 사회 환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계기로 강 대표는 2013년 자선단체인 ‘Kang Dream Foundation’을 설립해 매년 20여개 비영리단체에 지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첫해 2만5000달러로 시작한 기금 역시 매년 꾸준히 늘려 지난해에는 10만 달러를 넘어섰다.

●액티브USA(대표 단 리)

LA다운타운 한인 의류 상권 중 가장 핵심인 샌패드로패션마트 협회장을 맡고 있는 액티브USA 단 이 대표는 한인 커뮤니티의 아픔과 위기 극복의 산증인이다. 이제는 한인 의류업계에서 손에 꼽히는 큰 업체로 성장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현재 업계에서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이 대표의 지난 25년간의 과정을 보면 쉽사리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다. 1987년 미국에 이민와 5년간 밤낮 없이 힘들게 사업을 일궈 장만한 의류 공장이 1992년 4·29폭동으로 전소됐다. 당시 한인 피해로는 가장 컸다.

재기의 원동력은 그동안 쌓은 신뢰와 정직한 사업 운영이었다. 당시만해도 현금 거래가 대부분이다 보니 자연히 세금 보고나 사업체 안전을 위한 보험 가입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던 때 였다. 하지만 이 대표는 성실하게 세금 보고도 하고 만일을 대비해 보험도 가입해 놓았다.

성실하게 세금을 낸 덕분에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통해서는 30년 간 4%대 이자로 50만 달러를 지원 받았다. 사업 재기의 밑거름을 마련한 셈이다.

공장이 전소돼 외상 거래 내역이 다 탔지만 그동안 거래처와 쌓은 신뢰로 미수금 역시 상당수 회수했다. 그 후에도 특유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성실한 사업 운영으로 해 마다 규모는 커져갔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2009년 말 또다시 위기가 찾아 왔다. 주주로 참여했던 새한은행에 감독국이 증자 명령을 한 것이다. 이 대표가 주도해 투자 유치에 나서 단기간에 6000만 달러가 넘는 증자에 성공,은행을 회생시켰다. 결과적으로 성공했지만 몇달간의 과정은 말 그대로 드라마틱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은행이 문은 닫는 것은 단순히 주주들 뿐 아니라 한인 커뮤니티에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 할수 있어 투자 유치에 주력했고 이후 새한은행은 안정적으로 운영되다가 윌셔 은행에 합병됐다. 이후 윌셔은행은 나라은행과 중앙은행이 합병돼 생긴 BBCN뱅크와 한차례 더 합병해 이제는 나름 규모를 갖춘 한인 은행으로 거듭났다.

당시 미래은행과 아이비은행이 문을 닫아 새한은행 마저 문을 닫게 되면 자칫 한인 은행들이 도미노처럼 더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았던 상황이었다. 액티브USA 단 이 대표는 “의류 뿐 아니라 어느 비즈니스라도 위기는 반복된다”며 “중요한 것은 사업을 유지하면서 쌓은 신뢰나 정직과 같은 각 업체의 특성에 맞는 기초 체력이 있어야 결국 위기의 순간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타이밍(대표 김보환)

LA다운타운 한인 의류업계에서 가장 오래된 업체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 타이밍이다.

1989년 김보환 대표가 설립한 이 업체는 가장 시장 규모가 큰 주니어 라인으로 시작해 이제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브랜드를 갖춘 업체로 성장했다.규모가 큰 1세대 의류인 답게 소규모 의류상부터 초대형 의류 체인과 주요 백화점까지 왕성하게 거래하고 있다.

역사도 오래됐고 업계에서 부러움을 살 정도로 규모도 커졌지만 김 대표는 여전히 판매 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과거 작은 옷가게부터 멕시코 등 중남미가 주 고객이었다면 이제는 대형 리테일러들과 끈끈한 거래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팔린 만한 물건을 적절한 가격에 납품한다는 원칙을 지켜며 30년 가까이 해 온 의류 사업의 철학을 바탕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과 모바일로, 중남미에서 미국내 주류 유통망과 해외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판매망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몇년간 최악의 불황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현재 한인 의류상권을 30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 규모는 100배 이상 커졌고 거래처만 봐도 미국내 주요 유통 체인들로 늘어난 것을 보면 업계의 미래는 어둡지 만은 않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30여년간의 LA지역 한인 의류 역사를 보면 주기적으로 흥했다가 구조조정을 거치고 또 다시 흥하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회사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하나씩 개선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최근 유통 환경 급변에 따라 결제 대금 회수의 안정화를 위해 거래처의 신용 상태를 미리 확인하고 있다. 큰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주문을 받기 보다는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해 나가는 것이 유통 격변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가는 방법이라는 것이 30여년간 업계를 지켜 온 김보환 대표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로 볼수 있다.

단리-김보환(왼쪽 1,2번째)
왼쪽에서부터 액티브USA 단 리 대표와 타이밍 김보환 대표

●아이리스(대표 김영준)

아이리스 김영준
아이리스 김영준 대표

1세대로 분류되는 아이리스 김영준 대표 역시 한인 의류인들의 땀과 눈물이 섞여 있는 샌티 골목 좌판 출신 중 한명이다. 김 대표는 지난 30여년간 충분한 초기 자본 없이 근성과 뚝심으로 현재의 아이리스를 일궜다. 아이리스는 버티컬 생산 방식으로 효율을 극대화 업체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 4곳과 캄보디아에 2곳의 생산 공장을 자체 운영하며 제품 기획부터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직접 챙기고 있다. 공급 중간에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자연히 경쟁 업체에 비해 생산 비용을 현저히 낮출수 있다.

자체 공장이지만 가성비를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현지에 있는 기존 봉제 공장을 활용하고 있다.

생산 설비 구축과 초기 운영 비용을 김 대표가 투자하고 실제 운영은 현지 전문가에게 맡기는 구조다. 생산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며 중간 마진을 챙길 필요 없다 보니 자연히 생산 단가를 저렴하게 책정이 가능하다. 또한 매년 생산을 위해 여러 공장을 찾을 필요도 없어 능률도 높아지게 된다.

안정화된 생산력을 바탕으로 LA본사에서는 소재와 디자인을 차별화해 흔히 말해 “팔릴만한 제품”을 디자인하고 세일즈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다.

김 대표 역시 최근 미국내 유통 상황이 우려스럽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업계의 미래는 밝다고 단언했다.

김 대표는 “최근 세계 최대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자라에서 포에버21의 성공 사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처음으로 LA의류 업계에 담당자를 파견해 현황 파악을 하고 갔다”며 “전세계적으로 봤을때 제한된 공간에 1500개에 달하는 의류업체에서 1만명에 육박하는 제품 개발 인력이 매일 수만개의 디자인 샘플을 만들어 내는 곳은 LA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LA한인의류업계가 주 거래처가 이제는 미국내 대형 유통 업체를 넘어 유럽 등 전세계로 뻗어 나갈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이리스 김영준 대표는 “암울해 보이는 현재 상황과 시장을 더 넓힐수 있다는 희망이 공존하고 있지만 결국 노력하는 업체만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규모가 큰 업체에 아무래도 유리해 보일수 있지만 급변하는 유통 환경을 보면 정해진 답은 없듯이 각 업체가 특성에 맞게 줄일건 줄이고 과감하게 투자는 늘려가는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구스 매뉴팩처링(대표 구우율)

 

구스매뉴팩처링
구스매뉴팩처링 구우율 대표가 미싱을 직접 점검해보고 있다.

구스 매뉴팩처링 구우율 대표는 한인 봉제업계의 롤모델이다. LA다운타운의 봉제공장으로 시작했다. 하청업을 하면서 의류제조업체로 성장했다. 그리고 주문자생산방식(OEM)에서 자체 브랜드를 런칭했다. 이제는 자체 매장을 설립해 토털 패션업체로 거듭나며 끊임없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1978년 시작했으니 올해도 햇수로 40년을 맞았다. 정직하고 근면한 구 대표의 업무 스타일 답게 품질이 워낙 좋아 갭 알마니 익스체인지 등 대형 의류업체의 하청업을 도맡아 했다.

끊임 없는 도전 역시 구 대표의 특징이다. 수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2000년도 초반 당시 프리미엄진의 대표격인 디젤의 창업자였던 아드리아노 골드슈미드를 소개받았다. 그를 통해 구 대표는 새로운 프리미엄 청바지 AG진의 제의를 받았고 구 대표는 또다시 도전을 했고 이제는 성공의 길로 이어졌다.

현재는 ‘AG’와 ‘빅스타’ 등 세계적인 프리미엄 진을 생산 및 유통하는 글로벌 데님 기업으로 올라섰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생산 설비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1대당 20~30만 달러에 달하는 레이저 장비만 10여 대 가량 운영중이다. 재봉틀 역시 주기적으로 각 공정에 맞는 최신제품으로 교체하고 있다. 또한 1000여 대 가량의 재봉틀을 예비로 준비해둠으로써, 생산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장비는 즉시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청바지 생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인 세탁(워싱)에 필요한 장비는 몇 년전 기존 제품 보다 물과 화학물질 사용량을 절반 이상 줄여주는 혁신적인 제품으로 대부분을 교체했다.

여기에 한 번 사용한 물은 별도의 자체 정수 시스템으로 걸러 재사용하며 물 절약에도 동참하고 있다. 또한 세탁 후 제품을 말릴 때 발생하는 열기를 전기로 전환시키는 발전 장비도 도입, 본사에서 필요한 전력의 상당 부분을 이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어패럴 전문지인 어패럴매거진은 지난 2015년 어패럴 부문 혁신 기업으로

선정한 바 있다. 미국과 유럽, 중남미 중심의 시장 구도는 지난 2015년 초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등 중화권으로도 넓어졌다. 구스 매뉴팩처링 구우율 대표는 “40년전과 비교 할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많이 변했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정직이 바탕이 된다면 비즈니스는 꾸준히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션Q(대표 김정환) 제목 없음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로 도약한 포에버21을 제외하고 이제는 한인 운영 의류 소매 체인 중 가장 매장수가 많은 업체로 분류되는 패션Q의 김정환 대표는 30년 가까이 이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120개 가량으로 매장수를 늘린 패션Q는 업계에서는 결제도 빠르고 큰 문제 없이 유지되는 우수한 바이어로 분류된다. 업계와의 상생이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어찌 보면 쉽지만 거래 과정에서 보면 쉽게 만나기 힘든 바이어 중에 한곳이라는 이야기다. 패션Q는 다소 독특한 매장 운영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타주에까지 영업망을 갖춘 패션Q는 고정 매장과 함께 임시 매장을 병행해급변하고 있는 유통 환경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의류 체인으로 분류된다. 임시 매장은 주요 소매 상권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에 나름 규모가 컸던 백화점을 비롯해 의류 매장이 파산이나 구조 조정을 위해 폐쇄한 매장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건물주 입장에서 중장기간 계약할 새로운 세입자를 찾기까지 최소 6개월 안팎에서 길게는 2년 넘게도 기간이 필요한 점을 활용한 전략이다. 싼 임대료로 중장기 세입자를 구할때까지 빈 매장을 쓰는 방식이다. 건물주 입장에서 어차피 비어 있는 공간에 임대료도 받고 그 사이 새로운 세입자를 찾을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기기는 상생 구조인 셈이다. 패션Q는 제품을 구매하는 의류 도매업체 뿐 아니라 건물주와도 나름의 상생 구조를 만들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들어 의류를 비롯해 대형 리테일러들이 잇따라 규모를 줄이거나 파산 상태에 이르면서 패션Q입장에서는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일정기간 비어 있는 매장을 사용할 수 있는 또다른 기회가 생기고 있는 셈이다. 물론 오프라인 의류 판매 부진은 패션Q에게도 위기 요소다. 하지만 새롭게 문을 여는 정식 매장 또는 임시 매장 주변 상권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에 맞는 제품 구성과 보다 적극적인 지역 내 마케팅을 전개한다면 낮은 매장 임대료에서 생긴 경쟁력을 매출 확대라는 결과로 이어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여가 시간을 테니스협회에서 운동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김 대표는 남가주 단국대학교 동문회장으로도 봉사하고 있다.

조이아(대표 데이빗 리) LA다운타운 패션 도매 상권에서 한인 중 가장 큰 규모로 액세서리를 취급하는 조이아 브랜드를 운영중인 데이빗 리 대표가 좌판에서 사업체를 일군 신화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물론 비슷한 시기인 1980년대 말 이른바 샌티 골목에서 유사한 형태로 사업을 시작한 일부 1세대 의류인들 기억속에는 여전히 생생하게 자리잡고 있지만 대부분의 한인 의류인들에게는 그저 대형 액세서리 도매 업체로 알려져 있다. 이 대표는 바닥부터 사업체를 일군 사업가 답게 꼼꼼하게 일처리로도 유명하다. 고객 한명 한명을 만났던 경험이 도매업체로 이어져 결국 리테일에서 팔릴 만한 액세서리를 비롯한 잡화 제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만들어 공급해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 여전히 사업에 대한 왕성한 의욕을 발휘해 본업인 액세서리 이외에도 다운타운 의류업계와 한인타운의 주요 도매 및 리테일 상권에 건물 임대업도 하고 있다. 관리 중인 건물 중 식당 등 일부 업체는 직접 운영까지 도 맡아 해 ‘일중독’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최근 몇년간의 행보를 보면 자칫 문을 닫을 수도 있던 의류 체인 ‘러브컬처’의 운영을 맡아 어림잡아 1000만 달러 가까이 재투자해 매장 회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개인이나 회사의 영리 목적도 크겠지만 업계 전체로 봤을때 연간 3000만 달러 이상을 구매해주고 있는 바이어 한곳이 문을 닫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언론과의 접촉을 자제하고 있는 것 역시 이 대표의 특징이다. 칭찬에 인색하고 없는 말도 만들어 빠르게 퍼지는 업계 특성상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나가는 기사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여전히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저스트USA(대표 정주현)

452ee517c0bc2LA지역 한인 의류 역사에서 중요한 한축을 담당했던 청바지 부문에서 저스트USA를 빼 놓고는 이야기를 이어가기 힘들다. ‘데님의 전설’이라는 업계의 평가 처럼 정주현 대표는 판매망 늘리는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 받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청바지 생산은 최적의 공장을 찾아 최고의 제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만들어 선보이다 보니 저스트가 만든 청바지가 매장에 걸려야 전체 매출이 오를 수 밖에 없다는 불문율을 일찌감치 만들기도 했다. 제품이 경쟁력이 높다보니 자연히 판매처도 빠르게 늘었고 매출도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회사를 무리하게 키우기 보다는 탄탄하게 30년 가까이 운영해 온 것이 정 대표의 전략이었다. 또한 계란은 같은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투자의 기본 원리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 분산 투자를 했고 상당한 성과도 거둔 것으로 알려진다. 사업이 안정화된 2000년대 초반부터는 LA한인상공회의소 회장과 미주한인상공인총연합회 회장, LA한인축제재단 회장 등 한인 커뮤니티를 위한 다양한 봉사도 해왔다. 성공한 사업가 답게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도 마치 사업체를 운영하듯 임기동안 추진력 있게 활동을 전개해 해당 단체의 위상도 크게 높였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한인타운내 주요 한인 단체에서는 충분한 역량도 발휘하고 차세대 발굴에도 힘을 쏟았지만 정작 의류 관련 단체와는 아직 인연이 없다는 데 있다. 정 대표는 10여년간의 한인 단체 봉사를 한 후 3년 전 다시 본업인 저스트USA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3년여간 정 대표는 회사의 더 큰 도약과 함께 차세대 전환에 집중해 왔다. 이런 노력 덕에 이제는 업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2세 전환을 진행하고 있는 업체로 손꼽히고 있다. 정 대표는 “인위적으로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보다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 흥미를 찾고 차츰 업무를 늘려가면서 결국 회사 운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단계별 접근 방법을 만드는 것이 차세대 전환을 위한 1세 의류인들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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