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대표 한식점 ‘전원식당’ 폐업…고향의 맛 집밥,추억 속으로

전원폐업알림인스타그램
전원식당의 전용원 사장이 폐업을 알린 인스타그램

28일 오후 2시 무렵. 전원식당이 있는 쇼핑몰 옆길에는 NBC의 뉴스중계차가 서 있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너댓명이 줄을 서서 테이크아웃을 기다리고 있다. 식당 안은 TV뉴스팀이 촬영하느라 부산하다.

앞치마를 두른 주인 전정례씨가 주방에서 나왔다. 눈매가 퀭하다. 오랜 단골이지만 식구같은 정을 나눴던 사이라 그랬을까. 금세 눈자위가 축축해진다.

“엄청 울었어요. 26년이 어디 짧은 세월이여?”

전원식당폐업ATIMES
전원식당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전한 LA타임스 인터넷판

지난 26일 전씨의 아들이며 공동사장인 전용원씨가 인스타그램으로 폐업을 알렸다. 하루 뒤 LA타임스가 인터넷판에 큼지막하게 기사를 올렸다. ‘LA의 베스트 한식당 중 하나인 전원이 영영 문 닫는다’는 제목이다. 몇시간 뒤 전정례씨의 폐업인사를 담은 동영상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되자 8000명이 넘는 네티즌이 흔적을 남겼다.

“신문 방송 여러 곳에서 인터뷰왔어요. 우리가 이렇게 사랑을 받았던가 싶어 깜짝 놀랐지”

1986년 미국으로 건너온 전정례씨는 LA 한인타운의 한 사우나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며 고된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손님들로부터 손맛을 인정받았다.그 사우나는 전씨가 만든 집밥같은 식사를 하러 일부러 찾는 손님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1994년 한인타운 8가와 베렌도길의 허름한 몰 한구석을 빌려 식당문을 열었다. 주차공간이 넓어 얻은 그곳에서 눈에 잘 띠는 노란색 바탕의 간판을 내걸고 시작한 식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단숨에 유명세를 탔다.

찌개와 조림, 구이, 볶음, 보쌈 등으로 구분한 메뉴와 텃밭에서 기른 풋고추와 상추,호박 나물 등에 이따금 전씨의 고향 서산에서 가져온 어리굴젓 등으로 상차림한 밑반찬은 밤낮으로 일하느라 고향의 맛을 잊고 있던 이민자들에게 어머니가 해준 듯한 집밥의 향수를 고스란히 안겨줬다.

10여개 남짓한 테이블인지라 줄 지어 기다리는 시간을 감수하며 찾는 전원식당은 타인종들에게 한식이 어필하기 시작한 10여년전부터는 LA타임스 등 주류매체에 단골로 소개되며 비한인 손님도 늘어났다.

23년 동안 자리했던 곳이 재개발로 아파트를 짓게 되자 2016년 5월부터 5개월 가량 휴업하기도 했지만 3년여전 웨스턴길의 쇼핑몰 내에 다시 문을 열고 작년에는 미쉐린 가이드의 별(★)도 받았다.

한때 아들에게 식당 운영 일체를 넘기고 따로 반찬가게를 하던 전씨가 다시 전원식당 주방으로 돌아온 게 2년이 채 안됐다. 지난 3월 중순 이후 코로나19에 따른 실내영업이 금지된 지 벌써 넉달이 넘었다. 테이크아웃하러 오는 단골손님들을 위해 문은 열었지만 급여보호프로그램 대출(PPP)에 의존하는 것도 한계에 도달할 무렵 밤새 도둑까지 들었다.

렌트비와 식재료비, 인건비 등 고정비는 크게 줄지 않았지만 매상은 코로나19 이전에 비하면 10%나 될까 말까한 상황이 이어져 지쳐가던 참에 도둑질까지 당하고보니 맥이 풀릴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을게다.

“날마다 피를 흘리는 기분이었어요. 당분간 아무 생각없이 쉬고 싶네요. 다시 문을 연다거나 다른 걸 한다거나 그런 생각조차 아직 안해봤어요”

전씨의 아들 용원씨는 모친이 만든 전원식당의 밥 덕분에 학교를 다니고 장가를 가 딸까지 얻었지만 지치고 피곤한 표정이 뚜렷하다.

정말 다시 안할 거냐는 물음에 전씨는 두팔로 X자를 만든다. 그래도 아쉬운 단골손님들이 “좀 쉬었다 다시 하세요”라며 부탁같은 추궁을 거듭해댄다.

“나만 당하는 게 아니고 세상이 이렇게 만들어지니 어쩔 수가 없네요. 코로나가 언제 없어질지도 모르겠고…”

허다한 식당과 스몰비즈니스가 문을 닫는 일이 새롭지도 놀랄 소식도 아닌 코로나19 시절에 ‘전원식당’의 폐업은 커뮤니티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일개 작은 밥집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일상의 한켠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황덕준 기자

전원전정례사장
전원식당 전정례 사장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폐업인사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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