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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코 철강 백영중 회장이 산토 도밍게즈 본사 집무실에서 의욕적인 모습으로 신제품개발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 김윤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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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달전 패코 철강 백영중 회장은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있는 한 와이너리에서 철강업계 CEO들과 만찬을 겸한 회동을 했다.
그 자리에는 한때 구멍가게에 불과했던 회사가 지금은 오히려 패코 철강 보다 수십배나 규모를 키운 철강회사의 대표도 있었다.
“그 회사 사장에게 어떻게 장사 했길래 회사를 이토록 키워낼 수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어. 그의 비즈니스 방식은 한마디로 내가 해왔던 것과 정반대였다고나 할까…. 나는 제품의 최종소비자요, 실 수요자를 왕처럼 대접하면서 판매를 해왔는데 그 친구는 자재를 승인하는 엔지니어나 관공서 담당 공무원들을 상대로 관계를 해서 미국 전 지역의 납품 라이센스를 다 받았더군. 말하자면 나는 고객에게 팔았는데 그는 고객이 아닌 사람에게 팔았던 거지.”
백 회장은 그 회사 사장과 얘기를 나눈 뒤 문득 ‘이제 장사하는 방법이 달라진 세상이 되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변화하는 세상을 우리가 팔 걷어부친다고 따라잡을 순 없지. 젊은 사람들이 해야할 때가 온거야.”
기실 미국내 경량 철골 시장 부문 1위를 달려온 패코 스틸도 이미 수년전부터 장남(넬슨)과 차남(데이빗)에게 경영을 맡긴 터이다. 창업주가 이끌어온 30여년 동안의 발전단계를 성공적으로 보내고 바야흐로 차세대가 새로운 차원의 변화에 맞서고 있다.
“작년까지는 3년 내리 회사가 적자를 기록했지. 그래도 내년 정도면 다 만회될거야.”
아이빔에 주름을 내는 기발한 발상으로 강도를 높이고 무게를 가볍게한 주름잡이 아이빔 이후 패코철강은 철제 아이빔의 테두리에 나무를 덧붙인 목재용접빔(WSB)을 개발, 연간 35만톤 수요의 1억5천만달러 규모에 이르는 미국내 미니빔 시장을 공략하는 선봉으로 내세우고 있다.
백 회장은 차세대 경영 시대에 한발 물러선 채 재정지원에 치중하고 있지만 패코 철강의 시장 주도권에 대해서는 추호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
“사람은 유한하지만 회사는 무한하지. 정직하고 성실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이길 수 있어.”
일흔일곱 희수(喜壽)의 노구에도 철강만큼 단단하게 보이는 구릿빛 얼굴을 지닌 백회장은 지난 99년 펴낸 자서전 ‘나는 정직과 성실로 미국을 정복했다’의 키워드를 다시 끄집어 냈다. 원칙없는 생존경쟁의 논리가 판 치는 험난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백회장의 성공을 위한 지침은 그의 눈빛만큼 강렬하다.
■ 죽더라도 정직하라
패코철강은 창업 초기 일본 스미모토산 철골유통으로 시작, 3년여만에 미국 서부 7개주 시장의 50%를 장악했다. 그토록 빨리 자리잡은 바탕은 고객을 단순히 물건을 팔 대상으로 보지 않고 ‘나의 전부’라고 여긴 백 회장의 영업철학이었다.
어떤 고객?상대하든 물건이 좋다고 말하기 보다 고객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해서 최대한 충족시켜주기 위해 애썼다.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저 사람이 나를 믿도록 해야한다”는 생각만 하며 뛰어 차근차근 신용을 쌓았다.
“당신같은 한국인이 뭘 하겠느냐는 식으로 의심하기 일쑤였으니 단 한번도 실수하면 안된다는 각오로 약속은 꼭 지켰어. 그런 식으로 신뢰가 쌓이니까 내가 이 가격이 최종이라고 하면 믿기 시작하더군. 설사 직원들이 실수로 100달러짜리를 110달러를 받고 팔았을 때는 10달러를 반드시 돌려줬지.그렇게 하면 그 고객과는 다음부터 말이 필요없는 관계로 발전하지.”
물건 값 싸고, 약속 잘 지키고, 거짓말 안하니 백회장이 판매하는 철골을 사지 않을 고객이 없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와 정직은 서로 안맞을 것같지만 내 경험으론 안그래. 고지식할 정도로 정직을 지키다보니 신용이 자산이 미국사회에서는 그게 성공의 지름길이 되더군. 사업을 잠깐 하고 그만 둘 게 아니고 끝까지 승부를 볼 생각이라면 마지막 승리는 결국 정직해야 얻지. 일생을 두고 이긴다는 말은 일생을 두고 정직하면 성공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거든.”
어느 한 순간 거짓말을 하면 비즈니스를 살릴 것같은 순간에도 정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백회장은 단호하게 답했다.
“죽더라도 거짓말하지마.”
■ 성실과 창의는 기술의 어머니
백 회장은 엔지니어로서 월급장이 시절부터 새 기술 개발에 탁월했다. 그가 갖고 있는 특허품만 5개나 된다. 그 라이센스를 통해 들어오는 로열티 수입만해도 연간 수십만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당당하고 정직하게 살려면 기술이 있어야해. 그 기술을 익히려면 부지런해야하지.내가 별다른 재주가 있어서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게 아니야. 남 보다 더 잘해보려고 밤잠 안자고 다른 생각 안하고 부지런하게 고민한 결과일 뿐이지.”
백회장이 말하는 기술의 범위는 광범위한 것이다. 기계를 다루는 기술만이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기술,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능력을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그 기술은 창의성과 성실성이 만들어낸다는 것이 백회장의 지론이다.
“흔히 아이디어가 좋아서 성공했으니 운이 좋다고들 하지.하지만 사람들에게 뭐가 필요할까를 늘 몰두하고 고민하는 과정없이 성공하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는 없어.아이디어가 나오더라도 숙련될 때까지 끊임없이 파고드는 부지런함이 있어야해.”
백 회장은 주변에서 돈 많이 벌었다는 사람들을 한번 살펴보라고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어떤 기술이든 갖고 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열정, 그리고 거의 동물적인 부지런함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백 회장은 흥사단에서 배운 도산의 정신을 숭배한다. 정직과 성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도산의 3계명은 곧 패코 철강의 기업정신이기도 하다.
■ 비전 그리고 남은 꿈
백영중 회장은 패코철강이 미국 경량철골 업계에서는 최고라고 자부한다.아칸소주 히크맨에 있는 15만 스퀘어피트 부지의 생산공장과 LA를 비롯, 오리건주의 포틀랜드, 애리조나주 피닉스,텍사스주 휴스턴과 댈라스, 조지아주 사반나,일리노이주 시카고, 플로리다주 탬파 등 미 전역에 8개 물류기지를 갖고 있는 패코의 제 2단계 도약은 세계적인 종합철강회사라는 목표에 걸려 있다.
장남과 차남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만 패밀리가 주도하는 가업형 시스템을 분야별 전문가 영입을 통해 본격적인 전문경영체제로 바꿔나갈 계획이다. 기업 공개를 염두에 둔 것임은 물론이다.
그는 지난 99년 미국의 대표적인 회계법인 ‘ 어네스트 & 영(Ernest & Young)’이 주관하고 CNN· USA Today ·나스닥·시티뱅크 등이 공동 후원해서 해마다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기업인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기업인(Entrepreneur of The Year)’에 선정됐다.
한국인으로서 전국 단위의 이 상을 받은 이는 백회장이 유일하다. 이 밖에도 수없이 많은 비즈니스 관련 상을 받았다.
“돈도 많이 벌었고, 상도 받을 만큼 받았다”는 백회장에게 더 이상 남아 있는 꿈은 없을 듯하다. 적어도 기업가, 사업가로서는 그렇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가족을 북에 두고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그에게는 늘 통일 조국의 북한 땅 평양에 도산의 이름을 딴 대학과 안창호 선생의 동상을 세우는 꿈이 따라다닌다. 도산의 정신을 믿고 따랐기 때문에 얻은 결실과 보람이 도산대학을 통해 후세대에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 창업하라
백영중 회장은 짧은 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마친 뒤 자신의 저서 ‘나는 정직과 성실로 미국을 정복했다’를 들려보내면서 “이 책에 있는 내용을 한인사회의 청년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지난 99년에 펴낸 백회장의 자서전 가운데서 창업에 관한 조언을 요약,정리해본다.
젊은이들이여, 창업하라
70년대 초반 작은 철강회사에서 월급쟁이로 일하면서 기술 개발품으로 그 회사에 수백만달러를 벌게 해주면서 나도 당시로선 꽤 많은 연봉 3만달러의 수입을 가졌다. 그런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회사를 세운 것은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10여년전 심장 수술을 두어차례 받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도대체 동맥경화에 걸린 줄도 모르고 사업에만 몰두하면서 일흔 나이가 되도록 줄기차게 달려오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단언하건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나는 일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확인했다고 본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한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 순간을 확인하고 고객들이 준 신뢰에 보답하면서 보람을 느꼈다. 그 뿌듯함과 보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려는 노력이 그토록 사업에 몰두하게 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내 경험상 창업정신의 핵심은 ‘남과 다른 일을 해보겠다’는 도전정신과 ‘불가능은 없다’는 낙관정신이다.
내가 부산 피난 생활에서 대학에 들어가겠다고 한 것이나 미국유학을 생각했던 것, 직장생활 때나 사업을 할 때 여러가지 기술과 특허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대충 따라가지 않고 뭔가 나만의 세계를 개척해보겠다는 도전 정신이 바탕이었다.꼭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도전정신은 필요하다.
세일즈맨이 자기만의 서비스 노하우를 만들어가는 것, 학문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내놓은 이론과 다른 세계를 구축해보겠다는 것, 어느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해도 그런 정신이 충만하면 그것이 바로 창업이다.
젊은 시절 나는 늘 ‘불가능은 없다,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일이 안된 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스스로 채찍질했다. 그게 엄청난 힘을 주었다. 어떤 식의 창업이든 남의 길을 쉽게 따라가지 않겠다는 선택이기 때문에 처음 겪는 장애물도 많고 고독한 시련도 찾아온다. 낙관정신이 없으면 이런 길을 끝까지 갈 수 없다.
창업은 사회를 풍성하고 윤택하게 한다. 창업은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상품과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많은 젊은이들,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자기 실현의 기회를 준다.창업이 권장되고 지지받는 사회, 창업이 활발한 사회는 항상 활기가 넘치고 신진대사가 왕성하다.
꼭 회사를 차리는 창업이 아니더라도 도전과 낙관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면 모든 것을 발휘할 기회, 열정과 능력을 온전히 불태울 수 있는 행복한 기회를 갖게 된다. 그 소중한 행복을 내 뒤에 오고 있는 젊은이들이 함께 누렸으면 싶다.
■ 패코 스틸은
주로 아이빔(I-beam)을 생산 유통하는 철강업체이다. 이동주택(Manufactured Housing·Mobile Home)·이동식 주택차량(RV)의 받침대나 창고형 공장 등 철제구조물에 쓰이는 아이빔 가운데서도 자체 개발한 특허품 ‘주름잡이 아이빔’과 ‘목재 아이빔’ 등이 주력품목이다. 미국내 경량 철골 시장의 60% 를 차지하고 있으며 연간 매출 1억 5천만~2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아칸소주에 생산공장이 있으며 LA 캄튼 인근 란초 도밍게즈에 물류본부와 본사가 자리하고 있다. 회사이름은 창업자 백영중 회장의 영문 성씨 Paik과 회사를 뜻하는 컴패니(Company)의 머리글자를 땄다. |
■ 백영중 회장은
1930년 평안남도 성천에서 3남 2녀의 장남으로 출생 1949년 평양 제1중학교 교원 생활 1950년 단신 월남 1952년 연희대 입학(물리학) 1956년 흥사단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오리건대) 1959년 인디애나 공대 토목공학과 졸업 1962년 LA 소재 슐레 스틸 입사(볼트공법 Paik’s Knee개발) 1971년 마크 크레스트 기술 부사장(세계 최초 Welded I-beam 개발) 1974년 패코 엔지니어링 (PACO Engineering) 창업 1980년 주름잡이 빔(Corrugated I-beam) 개발 발명 특허 획득 1982년 LA시 선정 ‘올해의 아시안 기업인(Asian Business Man of The Year) 1989년 전문기사 명예의 전당(National Professional Engineering Hall of Fame) 가입 1990년 미국내 경량철골 유통 1위 기업 1999년 전미 ‘올해의 기업인 (Entrepreneur of the Year)’ 선정 2003년 KBS 해외동포 특별상 2005년 연세대 명예 경영학 박사 2006년 인디애나 공대 명예 공학박사 |
황덕준 / 미주판 대표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