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시운(時運)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업적인 아이템을 특정한 시기에 때를 ?맞춰 내놓아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다면 자주 언급되는 말이다. 시운이라는 하나의 단어 속에는 ‘타이밍(Timing)’이라는 시기적인 요소와 ‘럭(Luck)’이라는 비논리적인 요인이 결합돼 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비즈니스에서 타이밍과 운이 결합하면 이건 거의 천하무적의 백전백승이다. 저스트 유에스에이(Just USA)라는 진 웨어 브랜드를 앞세워 이른바 패션 진 업계에서 거의 독보적인 기업으로 꼽히는 저스트 팬마코(Just Panmaco, Inc.)의 정주현 사장은 유난히 “타이밍이 좋았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20년전 통칭 청바지로 불리는 진 종류의 의류 매뉴펙처러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한인 소매상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생산과 공급라인이 절로 연결되면서 오늘의 사업적 기반을 이뤄냈던 것을 설명하면서 “아, 그때 진짜 타이밍이 좋았지요.” 라는 말을 짙은 대구 사투리 억양에 서너차례나 실어냈다. 섬유업을 해온 집안 배경을 따라 81년 뉴욕으로 파견됐다가 83년 LA로 옮겨 봉제 등을 배운 끝에 창업을 하면서 선택했던 아이템이 청바지, 진이었다. “당시엔 한국 사람 가운데서 아무도 진을 만들지 않았지요. 워낙 미국기업들이 대규모로 진 시장을 석권하고 있을 때니 자영업 수준에서 감히 생산이건 유통이건 엄두를 낼 수 없었지요. 같은 한국인들이 리테일이라도 많이 하고 있어서 진을 소화해준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리테일샵조차 없었으니까…” 남들이 하지 않는 이유를 알면서도 정 사장은 진을 택했다.자본이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유태인 의류업자들 가운데 극소수가 천의 수축력을 내세운 스트레치 진을 하고 있는 걸 벤치마킹했다.한국인 업자로는 유일하게, 처음으로 스트레치 진을 만든다는 명분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청소년층이 신장력과 수축력이 생명인 스트레치 진을 선호하기 시작한다는 당시의 시장 트렌드를 간파한 그의 안목이 우선이다. 사업체 이름을 ‘바지를 만드는 회사(Pants Making Company)’라는 의미를 딴 팬마코라고 지은 것부터가 그같은 안목과 독창성이 배어 있다. “스트레치 진을 잘 만들어도 주류쪽 공급선을 뚫는 게 큰 일이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자고나면 하루에도 서너곳씩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리테일샵이 생기는 거예요.”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새벽에 눈을 뜨면 눈꼽 떼고 세수할 시간조차 아까워” 곧바로 공장으로 달려나갔다. 공장 문만 열면 돈이 쏟아져 들어온다는 느낌일 정도로 “돈 버는 재미 때문에 잠 자는 시간이 아까웠다”라며 웃는다. 그만큼 그의 사업적인 선택과 판단은 히트, 그것도 주자 만루 상황을 싹쓸이하는 적시타(Timely Hit)였다. 한국사람으로서는 유일한 스트레치 진 생산자였으니 5년 정도 시장을 독점할 수 있었고, 그같은 선점 효과는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정 사장은 진 의류 비즈니스를 20년 넘게 해오면서 여타 사업자들과 동떨어진 두가지 특별함을 갖고 있다. 허다한 다운타운 한인 의류업자들이 의존하는 중국 동남아 등지에 이른바 현지 생산 수입선이 두고 있지 않다는 게 그 하나요, 매뉴팩처링이 커지면 으레 손대게 마련인 직영 매장 운영, 다시 말해 자체 유통망을 만들지 않았다는 게 그 두번째다. 스트레치 진으로 호황을 누리며 번성한지 5년여쯤 되는 시점에서 그도 고민을 했던 부분이다. 내실이냐, 확장이냐의 갈림길에서 그가 택한 것은 전자였다. “섬유건 의류건, 미국 시장에서는 규모를 키우기만 하면 다 죽어버렸다는 선례들을 중시했던 거지요. 나같은 제조업자가 섣불리 규모를 키웠다가는 그 보다 더 큰 규모에 가차없이 나가떨어질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는 여기서 ‘자기현실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다시 말해 분수에 맞게 경영하자는 판단을 했다는 얘기다. 90년대 후반부터 너나 할 것없이 원가절감과 가격 경쟁력을 이유로 중국 등지로 생산라인을 개설할 때 그는 오히려 미국내 자체 생산라인을 과감하게 줄여버렸다. 쏟아져 들어올 수입물품들에 대비하지 않고 생산라인을 그대로 가동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재고는 쌓일 터이고, 생산시간은 줄어들어 기술이 축적된 인력을 내보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여기서도 정 사장의 내실경영의 묘미가 돋보인다.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가 택한 것은 원가를 낮추는 가격에 포인트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디자인에 승부수를 두었다. 진의 패션화가 수입생산품에 맞서는 유일한 무기라고 확신했던 것이다.결국 거꾸로 가격을 더 높이게 되는 셈이다. 고급화 전략이다. “내수가 수입산에 맞서는 길은 패션 밖에 없습니다. 수입산은 패션 경쟁력에서 결코 우리를 따를 수 없다고 자신했지요.” 의류 매뉴펙처러로서 그 만큼 연구와 개발에 정열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평은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술이 있고,믿어주는 고객이 있으면 디자인과 패션으로 얼마든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내놓은 ‘인디고 식스(Indigo Six)’는 고급화한 패션 진의 선두주자이다. 프리미엄 진이야말로 정사장에게는 블루오션인 셈이다. 황덕준 / 미주판 대표겸 편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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