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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씨수퍼 이승철 사장은 노조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연간 매출 5천만달러 목표를 향해 흔들림없이 나아가고 있다. “장사는 신의”라며 생존의 비결을 간단하게 정리한다. 사진 / 김윤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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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와 가물치
TV 베스트셀러극장의 드라마나 소설 제목으로 쓰면 딱 어울릴 듯하다. 아씨 수퍼 이승철 사장을 말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단어들이다.
눈살을 찌푸리거나 손사래를 치는 대신 웃는다. 뜻밖이다.
“하긴 그 얘기를 빼면 나한테서 뭐가 나오겠어요.”
아픈 곳을 찌른다 싶어 은근히 조심스러웠는데 그게 아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노조 문제야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곧 좋게 결말 날 것이고, 가물치 사건은 내가 정말 뭘 모르고 저지른 잘못이라 벌금내고 종결됐으니 뭐 아프고 자시고 그럴 게 없지요.”
2002년 7월 50명의 라틴계와 10명의 한인 등 60명의 직원들이 부당해고를 주장하면서 그때부터 노동자 지원단체와 더불어 아씨마켓 불매운동을 펼쳤다. 피켓시위는 4년째가 되는 요즘까지도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아씨수퍼하면 노조문제가 연상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가물치 사건. 수입이 금지된 살아 있는 가물치를 항공편으로 들여와 판매한 혐의로 2년전 적발돼 지난해 5월 벌금형과 3년간의 보호관찰 판결을 받은 일이다. 4반세기 동안이나 식품 유통의 현장에서 뛰어온 마켓 대표가 어째 수입규정도 몰라 그랬을까 라는 점에서 한동안 회자된 해프닝이었다. 아씨수퍼와 이승철 사장으로선 들춰내봐야 도무지 즐거울 리 없는 이야기이다.
소비자들과 직접 맞대야 하는 리테일 비즈니스의 최전선인 식품 유통 마켓을 운영하면서 위 두가지 사건은 치명적일 수 있었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둘 중 한가지 일만 겪어도 주저앉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HK 갤러리아, 한남, 가주, 플라자 등 남가주지역에서 깊숙하게 텃밭을 일군 대형 마켓들의 견제가 끊이지 않는 시장 아닌가. 그런데도 경쟁에서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앞에서 달려가는 일만 남았다는 선두주자의 여유까지 배어 있다..
“원체 때리느니 얻어 맞는 게 편한 체질입니다.”
요즘도 마켓 2층 상가 분양권을 놓고 또 한차례 소송이 들어갈 참이니 좀체로 편할 일이 없을 터인데도 줄곧 “편안해요”라고 말하는 여유의 근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풍파를 겪고도 운영이 잘 되는 건 누구보다 소비자들이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 아닙니까. 마켓이야 소비자들이 계속 와주면 그게 다지요.”
별난 노하우나 비법이 있는 게 아니었다. 기본에 대한 믿음이었다.
“온갖 여건이 어려웠지만 적어도 소비자에게 만큼은 신의를 지켰다고 자부합니다. 가짜는 가짜라 생각하고 말하고, 진짜는 진짜라 생각하고 말하면 인정해주지요.”
98년 아씨수퍼를 오픈하고 소비자들에게 믿음을 받고 있다고 느끼기까지 1년 6개월 정도 걸렸다고 한다. 아씨수퍼는 문을 열었을 때부터 야채와 생선이 강한 마켓으로 입소문이 나더니 지금껏 그같은 평은 흔들림이 없다. 지난해 6월 헤럴드경제와 한길리서치가 LA한인 소비자 성향 조사를 했을 때도 아씨수퍼는 야채와 생선을 사기 위해 일부러 가는 마켓 1위로 꼽혔다. 마켓별로 주·부식 거리의 장단점을 비교할 때 야채와 생선이 앞서면 그걸로 이른바 ‘게임 끝’이다.나머진 대체로 납품된 물건들이지만 야채와 생선만큼은 마켓업주가 소비자를 존중하는 의식을 갖지 않고는 퀄리티를 유지할 수 없는 아이템들이다.
구매담당 시절 어느 마켓 업주가 70센트에 넘겨준 물건의 가격표를 4달러 99센트로 적어 놓고 팔더니 떨이세일한다며 99센트 가격표로 고친 뒤엔 물건이 없다고 손님을 돌려보내는 수법을 쓰는 걸 봤다고 한다. 기가 막혔다. 절대로 저런 식으로 장사하지 말아야 겠다고 작정한 계기가 된다.
물건이 다 떨어지면 그제서야 싸게 파는 세일을 하는 따위를 마케팅이라고 표현하는 걸 질색하는 이 사장이다.
“소비자를 상대로 잔꾀를 쓰면 금세 들통 나지요. 오래 못 가요.”
약아 빠진 장사속보다 소비자가 찾는 물건이 없으면 안된다는 구색갖추기에 보다 신경 써야 한다는 마켓운영의 지론을 편다. 가물치 사건만해도 구색을 맞추려다 보니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할머니 한분이 오셔서 산후조리하는 며느리한테 먹일 건데 산 가물치 없냐고, 마켓에 그런 것도 없냐고 하시길래 들여왔지요. 그땐 규정이고 뭐고 살필 겨를 없이 찾는 물건 빨리 갖다 놓자는 생각 뿐이었지요.”
2년 동안 산 가물치를 판매한 금액이 1만2천여 달러. 벌금액은 10만달러였다. 구색 맞춘 값 치곤 호되게 치른 셈이다.
그래도 그런 자잘한 소비자 만족을 위한 노력이 쌓인 게 아씨수퍼의 생존력일 법하다.
“지난 몇년 동안 여러가지 장애를 넘어오면서 직원들의 결속력이 단단해진 걸 느껴요. 사장이 밉다고 뛰쳐나간 직원들이 어려울 때 먼저 찾아와서 발 벗고 뛰어주기도 해요. 소비자들이 인정해주고, 직원들이 정을 잃지 않으니 뭐가 걱정이겠어요? 중요한 건 늘 신의 아닙니까.”
뚝심 보다 믿음이었던가.
■ 이승철씨는
76년 메릴랜드에서 창업한 식품유통기업 ‘리 브라더스(Rhee Bros,Inc.)’ 이승만 회장의 막내동생이다. 85년 4형제 중 맨 나중에 미국으로 이민, 8년여 동안 리 브라더스의 구매 분야를 담당하면서 미주 시장에서 식품 유통업의 잔뼈를 키웠다. 91년부터 LA지역을 자주 왕래하게 되자 동부지역에 집중해 있던 리 브라더스 산하 유통체인의 서부지역 확장을 모색한 끝에 지난 98년 LA코리아타운 8가와 옥스포드 코너에 있던 퍼시픽벨 건물을 임대, ‘아씨수퍼’를 시작했다. 강원도 강릉 출신. 미술대를 다니며 화가를 꿈꾸었지만 형들의 강권(?)에 밀려 비즈니스맨으로 길을 바꿨다. 은퇴하면 고향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겠다는 생각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부인 오동희씨와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 황덕준 / 미주판 대표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