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가 대폭 완화된 외환거래 규제 방안을 내놓았다.
지난해 7월 개인의 거주용 해외부동산 취득 한도를 30만달러에서 50만달러로 완화한 이후 이를 100만달러로 확대한 1월 이후 2개월도 지나지 않았다.
정부가 이처럼 외환 거래 자유화에 속도를 더하는 것은 만성적인 외환 초과공급으로 인한 구조적인 외환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고 ‘쏠림 현상’ 등을 방지할 수 있도록 외환시장의 규모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부는 이미 외환 거래 자유화 계획을 최대한 앞당긴다는 방침을 밝혔다.
◇넘쳐나는 외환 해외로 유도
정부의 외환거래 규제완화 방안의 가장 큰 목적은 국내에서 넘쳐나는 달러를 해외로 돌려 환율하락 압력을 줄여 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는 연평균 250억달러의 외환이 초과 공급되고 있고 경상수지도 수출의 안정적인 증가세로 2003년 119억5,000만달러, 2004년 281억7,400만달러, 지난해 165억5,900만달러 등의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올 2월15일 현재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7월과 올 1월의 외환거래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2,163억8천만달러를 기록해 2,000억달러를 웃돌고 있다. 풍부한 외환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외환의 과도한 초과 공급은 외국환평형채권.통화안정증권 발행 등 국내 통화와 외환정책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환율 하락을 유발, 수출 중소기업을 압박한다.
내수가 확실하게 살아나지 않은 상황에서 환율 하락은 수출에 치명타가 된다.
◇개인 거주용 해외부동산 취득 전면 자유화
정부는 지난해 7월과 올 1월에 이어 이번에도 외환의 수요 증대를 위해 외환이 해외로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대폭 풀었다.
우선 개인의 거주용 해외부동산 취득은 전면 자유화했다.
특히 해외 거주 후 국내로 귀국할 경우 귀국일로부터 3년 이내에 거주용으로 취득했던 해외부동산을 처분토록 한 제한을 폐지해 거주용으로 취득한 해외부동산을 무기한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개인의 해외직접투자 한도(1,000만달러) 역시 폐지했고 외환거래에 대한 국세청 통보 대상도 축소하는 한편 투자목적의 해외부동산 취득도 내년 이후 단계적으로 허용 할 계획이다. 부담없이 외환을 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또 비거주자(외국인)에 대한 대외채권 회수의무 조건을 건당 10만달러 초과에서 50만달러 초과로 상향 조정해 중소기업들이 건당 50만달러 이하의 수출대금을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해외에서 운용할 수 있는 길을 터 줬다.
아울러 자원개발과 해외투자에 대한 금융지원을 강화하고 실버타운.호텔.의료기관 등 서비스형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도 상반기 중에 마련, 넘쳐나는 외환이 해외에서 생산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외에 통화별 매각(매입) 초과액의 합계액이 전월말 자기자본의 20%를 초과하지 않도록 제한한 외국환포지션 한도도 30%로 상향 조정, 외환시장 거래 규모 확대를 유도할 방침이다.
현재 한국의 일평균 외환거래 규모는 200억달러로 무역거래액 대비 5.4%에 그쳐 홍콩 22.4%, 싱가포르 43.7%, 일본 25.1%, 미국 23.3%, 영국 108.9% 등에 비해 절대적으로 왜소하다. 해외거래 규모가 작아 환율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다.
◇외환 수급 불균형 해소 기대
정부의 추가 외환거래 규제 완화 방안은 수급의 불균형 해소라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해외 부동산 취득 실적은 월 평균 4.3건에 141만달러에 그쳤지만 올 1월에는 13건에 480만달러, 2월1~20일은 25건에 838만달러 등으로 늘어나 규제가 완화될 때마다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개인의 주거용 해외부동산과 직접투자가 전면 자유화되고 외국증권 투자대상 제한이 폐지되는 등 투자대상이 확대되면 외환수요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자원개발 및 해외투자에 대한 금융지원 강화는 외환의 수급 균형 뿐 아니라 안정적인 해외자원 확보에 도움이 되고 서비스형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은 해외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국내 자본을 통해 흡수,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외국인들이 원화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주식상장, 증권발행절차 등을 개선하면 국내 금융시장의 위상 제고와 발전을 유도할 수 있다.
◇편법 해외투자.리스크 확대 우려
하지만 외환거래의 자유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면 과다한 외환 유출과 편법 해외투자가 야기될 수 있고 외환시장 확대와 함께 리스크 부담도 늘어날 수 있다.
실제 해외 여행비 지출, 유학.연수비 지출, 해외이주비와 재외동포의 재산반출 등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부동산 투자와 직접투자 규제가 추가로 완화되면 외환의 국외 유출이 과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또 중소기업들이 비거주자에 대한 대외채권 회수의무 완화를 악용, 50만달러 이하의 수출대금을 받아 신고하지 않고 투기적 목적으로 해외부동산을 취득하는 불법.편법도 우려된다.
50만달러 이하의 수출은 작년 기준으로 전체 수출의 56.3%에 달할 정도로 많다.
재경부는 이런 우려에 대해 관세청이 수출액과 대금 회수액을 비교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금융감독 당국과 협의해 조사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금융감독이 50만 달러 이하 수출에 대해 일일이 검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외환시장의 거래 규모가 늘어나 외환시장이 확대되면 시장 전체의 리스크도 커질 수 있고 외환포지션 한도 완화가 외환리스크 관리 능력이 취약한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부정적일 수도 있다. 아울러 부유층의 해외 부동산 취득이 급속하게 늘어나면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 등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우려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