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은행이 지난 3월 양 호 전임행장이 전격 사퇴한 이후 8개월여만에 최고운영책임자(COO)겸 행장대행이던 민 김씨를 승격시켜 사령탑 공백을 메꾼 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무엇보다 그동안 고질적인 과제로 지적돼온 한인은행계의 세대교체를 위한 물꼬를 텄다는 점이다. 20년이 넘는 성장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커뮤니티 은행 자체적으로 전문경영인을 내놓지 못한 한인은행계는 그만큼 내부 인재 육성에 인색한 곳이라는 고정관념의 울타리에 스스로 갇혀 있었다. 물론 이같은 장벽은 상장 4대은행 가운데 내부 육성의 첫 사례로 꼽히는 육증훈씨(한미)에게서 나타났듯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 때문에 생긴 것일 수도 있다. 나라은행이 민 김 행장을 발탁한 것은 그같은 틀을 깨고 한인은행계의 자체적인 인재발굴과 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평가받을 만한 결정이다.
특히 한국까지 통틀어서 한인사회 최초의 여성 은행장을 탄생시킨 것은 일종의 사회적인 장벽을 무너뜨리는 ‘사건’인데도 이를 실행한 것은 미국사회에 깊은 뿌리는 두고 있는 이종문 이사장이나 은행감독원장출신인 하워드 굴드 이사 등 결정력있는 이사진들의 열린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둘 만하다.
최초의 여성 행장이면서 보기 드문 내부 승진 사례라는 점은 민 김 행장에게는 과제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앞으로 나라은행의 선장으로서 순항해야만 한인은행계의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내부 인재 발굴과 남녀구분없는 능력위주 인선이라는 대세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외부영입에 눈길을 돌리는 한인은행권의 행장선임 관행이 변화할 것이냐는 숙제가 민 김 행장의 어깨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두번째로는 이미 금융권에서 기정사실로 여기는 타 은행과의 합병을 염두에 둔 선택이라는 점이다. 나라은행 이사진도 당초 행장 선임의 방향을 외부영입에 두었던 게 사실이다. 타인종 은행권의 베테랑 인사(중국계 미국인)를 후보로 선임, 은행감독국의 승인 절차를 밟으려는 단계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나 커뮤니티 은행으로서 타인종 행장이 가질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한인사회와의 괴리감이 가장 염려스러웠을 법하다. 무엇보다 합병 작업을 추진할 때 영입 행장에 대한 처우 문제가 적이 부담스러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막판에 이를 철회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내부적으로 실무적인 역량을 발휘한 민 김 행장의 경우 설사 합병이 된다해도 기존 실무 네트워크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합병 파트너가 소문처럼 한미은행이 될 경우 대외(손성원행장)및 실무(민 김 행장)의 투톱체제로 경쟁력을 몇배로 높일 수 있다는 장기전략적인 측면까지 계산했을 때 민 김 행장의 선임은 나라은행 이사진으로서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설사 차선책이었다 해도….
■ 민김 신임행장은 누구?
나라은행의 민 김 신임행장은 미주 한인사회 금융계에서만 25년 가까이 잔뼈를 키워왔다. 나라은행 2대 행장이었던 벤자민 홍(현 새한은행장) 행장에 의해 발탁되기 전 한미은행에서 10여년 동안 론 오피서와 지점장, 부행장 등 요직을 거쳤다. 95년 나라은행으로 옮긴 뒤 수석 부행장과 크레딧책임자(Chief Credit Officer)를 거쳐 2003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승진, 오늘에 이르렀다. 벤자민 홍 행장이 물러나고 홍승훈 행장과 양 호 행장 등을 영입하는 과도기적인 시기때마다 실무진들을 추스려 은행조직을 안정시키는 위기관리 역량을 발휘, 일찍부터 여성 행장 1호감으로 지목돼왔다. USC에서 사이언스와 경영학을 전공했다. 부군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기준씨이다. |
이상빈기자 / L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