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 커뮤니티에서 하기환씨는 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꼽혔다. 유명한 만큼 악명도 높았다.
“그랬지요? 시비의 소용돌이마다 늘 내가 있었지…”
오랜만에 만난 하씨는 전혀 부인하지 않았다.
한인회장을 지낸 4년 동안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 윌셔-코리아타운 주민의회 제명 소동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잡음 속에는 대체로 하씨의 이름 석자가 포함돼 있었다. 왜 그렇게 싸움 한복판에 있을 수 밖에 없을까, 지겨울 법도 한데 말이다. 꼭 한번 묻고 싶었다.
“남들이 힘으로 누르려고 하면 끝까지 싸우려 하는 편이지요.”
그가 말하는 억누르려는 힘이란 언론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다. 인간적인 모욕을 주는 경우일 때는 말할 나위도 없다.
언론이 단체를 쥐고 흔들려고 한다고 느꼈을 때 그는 남들처럼 굽히지 않았다. 맞대거리로 나섰다. 목소리가 달리자 스스로 주간신문을 만들어 자신의 입장을 고스란히 전하기도 했다. 적당히 타협하고 협력하면 좋았을 터인데 성격적으로 그러질 못했던 모양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좋은 게 좋다,라는 겁니다. 똑바로 잡아나가지 않으면 뒤틀리는데 뭐가 좋은 게 좋겠습니까.”
그의 반발심리는 성장환경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 의사였던 부친이 워낙 완고하게 다스렸다. 성장기의 아들은 끓는 피를 주체하기 어려운데 부친은 당신이 정한 틀 속에 가둬 키우려 했다. 권위에 대항하고 반발하는 습성은 그때부터 생겼을 것이라고 하씨 스스로 추정한다.
하씨는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편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여기저기서 부르고 커뮤니티 활동에 자신이 낄 자리가 생기는 것은 적이 많은 만큼 지지자도 많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를 서포트하는 사람들은 대개 ‘골수’ 하기환 팬입니다. 아무리 싸워도 인간적인 모욕감을 주는 일만 아니라면 언제든지 스스럼없이 만나고 교류를 이어가지요. 나름대로 내가 의리는 있는 편입니다.”
커뮤니티의 힘이 목표
도대체 하씨가 목표하는 바는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이 갑자기 생긴다. 욕 먹고 적이 생기는 커뮤니티 활동에 그토록 집착하는 까닭 말이다.
“우리 한인사회의 경제적 역량에 비해 정치적 파워는 여전히 약한 현실을 고치고 싶은 겁니다. 4·29 폭동이 일어났을 때 한인사회에선 전화 한통 걸어서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지요. 뼈저린 경험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커뮤니티의 정치력 신장이 그의 궁극적인 방향이다. 얼마든지 파워를 키울 수 있는데도 결집되지 않으니 그가 목소리를 높이는 셈이고, 그의 목청이 열리면 시끄럽고, 시비가 따랐겠다 싶어진다.
“나도 영락교회 신자이지만 우리 한인사회의 연간 교회 헌금액이 아마 2억달러 규모는 될 겁니다. 그 0.5% 만 정치력 키우는 데 활용하면 뭐든지 얻어낼 수 있는데 그게 안되거든요. 한인들이 천국 가는 데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커뮤니티의 힘을 기르는 데 인색한 이유를 모르겠어요.”
몇해전 하씨는 시와 카운티 주, 연방정부 등에 속한 정치인 25명에게 1인당 2만달러씩의 정치기부금만 모여주면 한인사회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룰 수 있다는 관점에서 가칭 ‘폴리티컬 액션(Political Action)’이름의 단체를 만들려하기도 했다.
이제 즐길 차례
여러차례의 법정소송을 비롯,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인회장 임기를 두차례나 연임하고 2004년 물러났을 때 섭섭했을까, 후련했을까.
“4년이나 했으니 섭섭할 건 없고, 시원했지요. 굽히지 않고 소신껏 해냈다는 자부심도 느꼈고요.”
이른바 커뮤니티의 공직인 단체장을 그만 둔 뒤에도 하씨는 이곳저곳 모임과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15년째 활동하고 있는 라이온스클럽 멤버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98년부터 맡고 있는 코리아타운 경찰후원협회라든가 주민의회 등을 통해 꾸준히 커뮤니티 발전의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연간 150여일 가까운 시간을 여행으로 보낼 만큼 한결 여유로운 일상을 되찾은 것은 이제부터 퍼스널 펀(Personal Fun)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겠다고 작정했기 때문이다.
황덕준 / 미주판 대표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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