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인경제의 ‘구원투수’를 기다리며

 

지난 11월 21일은 한국이 외환위기, 이른바 ‘환란’을 당한지 꼭 10년째 되는 날이다.  1997년 이날 한국경제가 ‘부도’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이 신청되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경제계 전반이 ‘외압’에 의한 구조조정을 겪으며 IMF의 ‘신탁통치’를 받았다. 동남, 동화 등 5개 은행이 퇴출되고 금융권에서만 15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현대, 대우그룹 같은 대기업까지 무너지는 한파 속에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었다.
지난달 한국의 언론들은 앞다퉈 환란 10주년을 점검하는 심층 진단을 내놓았다.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세월 동안 겪은 급격한 변화상을 각종 경제지표로 짚어보면 일시 ‘민족의 자긍’ 마저 느낄 수 있다.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은 2.5배 증가했고 7천달러로 곤두박질쳤던 1인당 국민소득도 2만달러에 육박했다. 바닥을 드러냈던 외환보유액은 중국, 일본, 러시아, 대만에 이어 세계 5위 규모로 늘었다. 또 지난해에는 사상 최초로 수출 3천억달러를 돌파했고 종합주가지수(코스피)가 2,000포인트에 안착했다. 세계화의 기치 아래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면서 외국인의 국내 투자비중도 급증했다. 놀라운 기적이다. 숫자상으론 그렇다.
 그러나 경제의 그늘은 과거보다 더욱 싸늘하다. 소득격차의 확대로 인한 중산층의 붕괴와 빈민층의 양산, 계약직 근로자의 확산에 따른 노동시장의 양극화,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유행어를 만든 청년 실업 등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첩첩이다. 저성장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부분의 진단들은 IMF 체제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성장동력을 잃은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제2의 외환위기로 비화될 것이라는 경고로 이어진다. 외환위기 이듬해 달러당 1,420원으로 환전, 미국으로 ‘망명’ 온 필자도 작금의 900원대 환율을 보노라면 눈물겨운 격세지감이다. 당시 “마누라 빼고 다 바꾸자”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화두처럼 나도 ‘다 바꿔’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오늘의 한인경제를 돌아보자. 10년전 한국과 유사한 병리현상을 진단하는데 그리 어려움이 없다. 우선 그동안 한인경제의 혈액을 공급하던 한인은행들이 ‘돈맥경화’에 걸려 있다. 4대 한인은행의 지난 3분기 부실대출 규모가 모두 7,000만달러에 이르렀다. 돈을 꿔간 채무자들이 3개월 이상 돈을 갚지 못해 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는 악성채권들이다. 수익이 급전직하로 추락해 주가도 반토막이 나 있다. 월급쟁이로는 평생 구경도 못할 숫자의 거금을 떼이고 있는 대형 은행들은 구조조정 없이 영업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언필칭 자구책이라는 인수합병(M&A)도 주주끼리 계산기만 두들기느라 지지부진하다. LA 한인경제의 ‘실물’인 자바시장이 신음하고 있으며 부동산과 융자 그리고 변호사와 회계사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혹한의 겨울에 대비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쓰나미’는 한인 가정의 주방까지 침투하고 있다. 한국의 ‘외환위기 10년’에 대한 반성은 한인타운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경제의 펀더멘털이 든든하다던 당시 강경식 부총리의 눈가림 발언이 새삼 기억난다. 이곳 미국땅에선 누가 한인경제의 기반을 논할 것인가.
‘미국 주류 경제보다 나중에 쓰러지고 먼저 일어난다’는 한인경제의 끈질긴 생명력도 이젠 전설 속으로 묻히고 있다. 그만큼 경제 규모가 커졌음일까. 때마침 한해가 저무는 이달 13일 오전 LA무역관과 본보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경제 전망 패널 토론회’는 이런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우리는 한미 FTA와 무비자국가 지정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지만 이를 잘 잡아 튼튼한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외압’없이 스스로 재도약을 기약할 수 있다. 한인경제의’구원투수’가 필요한 때다.

박명복 취재팀장·부국장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