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원 행장 은퇴 이유 따로 있나


▲ 27일 기자회견에서 손성원 행장(가운데)이 리차드 이 이사장(오른쪽), 윤원로 이사와
함께 퇴임 사유를 밝히고 있다.

ⓒ2007 Koreaheraldbiz.com

손성원(62) 한미은행장의 돌연 사퇴와 관련 뒷배경과 차후 행보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은퇴한 윌셔은행의 민수봉 전 행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27일 기자회견에서 손행장이 밝힌 중도 사퇴 이유는 3가지이다. 첫째는 개인적인 이유이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싶다는 이야기다. 또 뱅커로서의 오랜 경험을 대학 강단에서 후학들에게 전하겠다는 것이 둘째이며 세번째로 꼽은 것은 고국인 한국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첫번째 사유는 돌연 은퇴한 배경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상투(?)적인 것이어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또 대학 강단에서 선다는 것도 갑자기 은행을 떠나는 이유로는 합당하지 않아 보인다. 또 어느 대학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한 점도 그렇다. 두가지 이유가 설득력이 적은 것은 윌셔 민수봉 전 행장의 은퇴와는 모양새를 달리하기에 더욱 그렇다. 민 행장은 영업실적 악화 및 주가 하락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형식의 ‘인책성’ 퇴임으로 평가돼 손 행장의 사퇴와는 다른 모습이다.

기자 회견장에서 행장 3년의 공과를 밝히면서 손 행장은 취임 때부터 추진했던 리저널뱅크(Regional Bank)의 기반을 닦아 놓았다고 자평한 것은 사퇴 이유가 발표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은퇴의 진짜 배경에는 세번째에 무게가 실린다. 금융업계와 한미은행 내부에서도 손행장의 한국행을 감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으로 간다면 두가지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하나는 한국 유수은행의 행장으로 ‘모심’을 받는 것이다.

한때 한국의 국민은행장 이동설도 나돌았으며 ‘중량급’인 손 행장의 경력으로 보아 한국 국책은행이자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장으로의 천거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은행장들과의 연배로 보면 손 행장은 나이가 많은 편이어서 시중은행장으로서는 한국적 정서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장 자리가 더욱 가까운 시나리오다.

손성원 행장은 2006년초 월스트리트저널에서 ‘경제전망이 가장 정확한 이코노미스트중 한사람’으로 꼽은 인물이다. 그는 미국 백악관 수석경제관과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클라우드대학교 총장, 미국 웰스파고은행 수석부행장을 역임했고 한때 FRB 이사 후보로도 거론될 정도로 경제 분석에 탁월해 주류 금융계에서도 거물급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또하나는 LA한미은행장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어떤 형식으로든 차기 이명박 정부와의 합류이다.

손행장의 한국행에 대한 ‘아니땐 굴둑’은 한국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지난 11월 한나라당에서 경제 고문으로 위촉됐다는 보도였다. 그러나 당시 손 행장은 “정치는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정치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자로서도 동남아와 중동 러시아에는 강해도 미국에는 약한 편이어서 미국 특히 금융경제에 해박한 인물이 필요한 실정이어서 손 행장을 미리 낙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일단 행장직을 떠난뒤 주변 정리할 시간을 가지라는 ‘언질’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손행장은 한국에서도 이젠 스타급 굴로벌 금융인이다. 한국의 은행장이냐 입각이냐 청와대 특보냐…. 호사가들의 입방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명복 기자

[손성원 행장 누구인가]

1944년 서울에서 은행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손 행장은 17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5세로 플로리다주립대를 거쳐피츠버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MBA를 수료했다.

손 행장은 1973~1974년 닉슨행정부 경제자문위원회를 거쳐 현재 웰스파고은행과 합병한 노르웨스트은행에서 행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웰스파고 서열 3위인 부행장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에 오르며 국제적인 명성을 날리다 지난 2005년 1월 한미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WSJ 경제전망조사에 참여하는 이코노미스트들 가운데 유일한 상장기업 경영자인 손 행장은 2001년 블룸버그통신과 2002년 블루칩, 2006년에는 월스트리트저널로부터 ‘가장 정확한 경제 예측가’로 꼽혔다. 국내에서는 외환은행과 국민은행의 행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특히 1990년대 초에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 맞서 금리 인하를 이끌어내며 걸프전 이후 미국과 세계 경제 회복에 큰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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