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칼럼] 청경우독의 지혜

‘맑은 날은 밭을 갈고, 비가 오는 날에는 책을 읽는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숙부와 함께 지내게 된 제갈량(제갈공명)은 젊은 시절 10여년을 시골에서 지내며 청경우독(晴耕雨讀)하였다 한다. 대서사극 삼국지에 이 글귀가 얼핏 흘리듯 고사성어(故事成語)로 남아 있다. 그 오랜 우독(雨讀)의 세월은 훗날 촉(蜀)나라 유비의 간청을 받아들여 삼국의 통일을 도모하던 명장의 지혜로 빛을 발했음은 물론이다.

비록 제갈량이 허구의 인물이고, 먼 옛날 이야기하듯 낡은 고사를 되짚을지언정 ‘맑은 날은 밭을 갈고, 비가 오는 날에는 책을 읽는다’는 그 짧은 글귀에 담긴 깊은 뜻은 정수리에 꽂히는 벌침과 같이 따끔하다.

이 글귀가 떠오를 때마다 오늘 내가 보낸 시간을 되짚어보곤 한다. 햇빛이 좋은 때를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밭을 갈았는지, 또 비가 오는 날이면 기꺼이 언제고 다시 햇빛이 비추는 때를 준비하는 기회로 삼았는지 말이다.

힘겨운 시간은 더 길게 느껴지기 때문인지 2007년은 유난히 긴 1년이 아니었나 싶다. 어딜가나 불경기라는 푸념이 그치질 않았고, 취재랍시고 기사거리를 끄집어내려 애쓰는 내 모습조차 스스로 안쓰럽게 여겨질 정도였다. 너나없이 일하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불경기 타령은 어린 시절, 내 부모님의 푸념으로 시작해 지금껏 수그러든 적이 없다. 어쩌면 호(好)경기라는 개념은, 불경기인 지금의 눈으로 십수년 전을 거슬러 ‘언제가 그나마 좋았던 때 아닌가’하며 아쉬움을 토로할 때나 거론되는 말일런지도 모르겠다.

지난 해 여름을 지나면서는 부동산회사들의 텅빈 사무실을 보며 누가 알려주기에 앞서 불경기를 실감하곤 했다. 부동산회사의 큐빅 데스크가 텅빈 건 물론, 알짜 에이전트들이 차지하고 있어 웬만해서는 비어있지 않던 룸까지 줄지어 비어나갔다. 불경기가 상투적인 푸념의 선을 넘어섰다는 반증이다.

우기에 접어든 부동산업계를 떠나 전업하는 에이전트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부동산 경기가 안좋으면 어디든 경기가 좋을 리 없을텐데도 고난의 시간을 피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싶다. 수십만달러에서 많게는 수백만, 수천만달러의 막대한 재산을 다루는 전문가라면 지금 시기에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게 마땅하다.

지금 활동하는 에이이전트들은 대개 경력이 5년 안팎이어서 숏세일이나 차압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10여년 전 지금보다 훨씬 강도높은 차압바람이 불어닥쳤던 이후로 전에 없던 호경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10여년 만에 닥친 부동산 불경기에 다붙어 공부하고 경험을 쌓는 기회로 삼으려는 몇몇 에이전트들이 눈에 띤다. 업계 알짜 중의 알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연의 힘을 거슬러 내 뜻을 이루려 할 때의 힘겨움을 피하고 자연이라는 대세와 가장 순리롭게 조화하며 뜻을 펼칠 날을 준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청경우독(晴耕雨讀)’ 네 글자의 조화가 어느 고사성어보다도 아름답게 여겨진다.

나영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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