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프로미식축구 NFL을 비롯 야구의 MLB,농구의 NBA,아이스하키의 NHL,골프의 PGA 등 프로스포츠가 판을 치는 나라다. 1년 내내 각 종목이 돌아가면서 TV와 신문 등 각종 매체를 장식한다. 올해 슈퍼볼에선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무패 신화를 기록하면서 뉴욕 자이언츠를 꺽고 19승 전승으로 롬바르디 우승컵을 안을 지에 3억 인구의 이목이 집중됐었다. 어느 팀이 무슨 기록을 세웠으며 어느 선수가 몇 점을 올렸고 그 당시 우승은 누가 했는가 등 화제가 끊임없이 솟아난다. 미국인들의 일상에서 스포츠와 관련된 이야깃 거리는 생활화돼 있다. 역사가 길지 않은 미국으로서는 프로스포츠가 만들어내는 온갖 자잘한 기록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 나름대로 가치있는 역사를 새겨 간다. 또 그게 자부심화돼 있다.
우리네 정서로는 LA에 사는 한인들 중에서 1988년 LA 다저스가 월드시리즈 우승팀이었다는 기록을 몰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LA 출신 미국인들은 그것도 모르면서 LA에 살 자격이 있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심지어 짧든 길든 미국인들은 자신들 주변에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는 자동차,주택 ,도로 등에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동네 유적지로 보전하는 경향이 보편화돼 있다. 다운타운의 마틴 루터 킹 목사 거리나 유명 스포츠 선수의 이름을 딴 거리이름이 흔한 까닭이다. 기껏해야 200~300년 밖에 되지 않은 유물들이 도시 곳곳의 박물관을 채우고 있으며 그나마 오래된 것은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가져온 것들로 소장하고 있는 그 자체가 큰 영광이라며 자부하고 있다.
이런 미국인들의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의 숭례문은 거의 신화나 전설에 가까운 상징물로 보인 모양이다. 한국에 파견된 CNN,ABC,AP 등 미국의 대형 미디어의 특파원들은 통상 숭례문을 배경으로 뉴스를 전하곤 했다. 한국을 찾은 미국인들에게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은 숭례문은 서울 시내의 항로를 알려주는 등대와 같은 존재였을 법하다. 가장 한국적이어서 한국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했던 숭례문은 고국을 떠나 해외에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도 무한한 자긍심의 상징이었고, 아시아의 허브로 성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에 숭례문은 없다. 1.5세와 2세들에게 대한민국의 국보 1호는 숭례문이라고 가르쳤던 게 허구가 될 지경이 됐다. 거창하고 위대한 유물에만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부여했던 한국인들에게는 이번 숭례문의 소실이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큰 아픔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역사적 가치의 흔적에 소홀했기 때문에 이번 상처는 오래토록 아물지 못할 것만 같다.
LA 한인타운에도 한인커뮤니티의 이민 100년사를 상징하는 다울정이 세워져 있다. 한인보다 동네 주변의 히스패닉들과 홈리스들의 쉼터로 전락해 버린 다울정이다. 비록 역사성이나 문화재적인 가치는 없을 지 언정 한인들에게는 소중한 의미가 담겨져 있는 한국 전통양식의 조형물이다. 지금 한국에선 숭례문의 관리 소홀를 따지는 시비가 끊이질 않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다울정도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아무런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화재나 재난 발생시 책임 소재를 따지는 단체들의 시비가 일어나기 전에 안전관리의 제도적 장치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 미주 한인 이민 역사를 상징하는 다울정의 존재에 한인들의 귀와 눈이 모아질 때다.있을 땐 모르다가 사라지고 나면 가슴 시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미주본사 취재팀 부장 김윤수